어쨌든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들을 지나며 다가가고 있는 목표다. 그것이 내가 아침마다 일어나고, 인쇄소에 나가고, 룅렌 양 맞은편에 앉아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 같은 그의 시선을 여덟 시간 동안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 토베 디틀레우센의 '청춘'
나는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빈 화면에 움직이는 커서를 본지도 꽤 오랜만이다. 내 생각을 쓰는 것이 낯선 상태로 '나의 삶'을 글로 표현하려니, 어색하다. 1년 전부터 SNS를 끊었더니, 이제 정말 내 생각이 담긴 글은 단 세 줄에서 다섯 줄도 쓰지 않게 됐다. 그나마 직장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요약하는 수준의 글일 뿐이다.
‘왜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글을 쓰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스스로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걸까. 고집을 피우는 걸까. 다만 나는 글을 쓰지 않아도 잘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늘 마음 한구석에는 쓰지 못하는 패배감이 맴돌고 있다.
근래에 남편이 디스크 통증으로 무척 힘들어한다. 통증은 밤에 유독 심해지는데, 엉덩이서부터 다리를 타고 오는 저릿한 감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있지만, 차도가 느리다. 병원에서는 통증이 심할 때 붙이라며 패치를 주었는데 남편이 그것을 붙이자,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겁이 나서 바로 떼어버렸다고 한다. 느린 차도에 답답해하고, 하루 종일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에 기분이 나빠 짜증을 부리면서도, 왜 그 패치를 떼어버렸을까. 그리고 어찌하여 온몸이 떨리도록 고통스럽다는 주사를 다시 맞으러 갔을까. 엄지손가락의 지장만 한 패치 하나로 오랫동안 괴롭히던 저릿한 통증이 사라지고,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고 여겨졌단다. 그리고 몸이 주는 신호(통증)에 따라 몸을 조심할 수 없게 될까 봐 겁이 났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아픈 주사를 맞고 나서도 한동안 불편한 저릿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통증처럼 나를 자극하는 불편한 신호인 것 같다.
'안 쓰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거야.'
잊을만하면 내게 찾아오는 불편한 신호는 이런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신호에 무감각해지는 그날이 오면 나도 남편처럼 덜컥 겁이 날 것 같다. 그간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운이라도 좋은 날이면, 글을 쓰게 되고 아주 잠시 마음에 들만한 결과가 나오는 나날도 있었던 게 아닐까.
최근 상담 및 심리치료 강의를 듣고 있는데, 심리치료 이론 중 하나인 '현실치료'에서 '우울'은 자신이 선택해서 일어난다고 해석하는 개념이 있다. 즉 "나는 우울해."를 "나는 우울함을 선택하고 있어."라고 보는 것이다. '우울은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 도움 요청'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돕도록 이끌기 위해 선택한 것이란 관점이다. ‘우울’이 과거의 상처 혹은 외부 요인으로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걸리게 되는 병이라고 여겼던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현실 이론’의 이름만큼이나 과연 현실적이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이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면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게 희망처럼 들리지만, 나로서는 하나의 변명거리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나를 들여다보자면, 내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든지, 이로써 느껴지는 패배감에 한동안 슬퍼지는 것도 결국은 내 선택에 의한 것이란 거다.
결국 나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내가 쓰는 순간, 해결할 수 있는 것인데, 이토록 복잡하고 무겁고, 고통스럽다. 나의 선택과 행동의 몫, 그 몫을 나는 앞으로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어쩌면 잘 해왔으면서도 글에 대해 들이는 마음이 커서 괴롭고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 있겠네요.”라고 하시던 교수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돌이켜 보면 나의 첫 글쓰기 또한 고뇌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푸른 평지를 발견하여 신나게 달리듯이, 넘어져도 배시시 웃고 마는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은 매주 토요일 아침 동시를 쓰게 했다. 나는 스프링이 달린 무지 종합장에 자유롭게 시를 썼고, 시 한 편에 어울릴만한 그림도 그렸다. 그렇게 완성한 시를 엄마에게 보여주면, 엄마는 마음에 드는 몇 구절을 소리 내어 읊어주셨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느냐’며 달고 단 칭찬도 얹어주셨다. 그로 인해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었고, 칭찬까지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 뒤로 꽤 많은 시간 동안 글쓰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해, 나는 엄마의 병상 옆에서도 글을 읽었고, 편지를 썼다.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엄마의 가슴 옷깃 속에 넣어드린 편지에도 사랑과 영향력을 담은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학부를 졸업하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그 다짐이 무색하게 글을 쓰지 않고 보낸 날이 많았다. 하지만, 글쓰기는 내가 견디지 못한 것들을 쏟아내고 싶었던 순간마다 함께 했다. 때때로 나를 너무 무겁게 만든 것도 글이었다. 그 많은 고뇌를 뒤로하고, 지금도 삶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가볍게 훨훨 날아가듯 쓸 날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사는 동안에도 글 쓰는 것을 지탱하며 살 수 있으면 다행이리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