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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ug 29. 2023

나의 작은 정원

식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회복시킨다.

내가 기억하는 식물이란 어렸을 적 당신과 살던 집에서 붉은 동백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들에 물을 주던 당신의 모습에서였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집에서 홀로 남은 아버지가 작은 화분들을 대문 입구로 내어와, 볕을 쬐라며 줄지어 둔 모습도 그러하다.


자취를 시작하자 나는 방에 식물 하나를 들여놓고 싶었다. 작은 크기의 몬스테라를 들여와 2주 내에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는 설명서를 보곤, 혹여 뿌리가 상할까 진땀을 빼가며 분갈이를 했다. 몬스테라는 햇빛이 넉넉지 않은 내 작은 방에서 몇 개의 잎을 내어주며 잘 자라주었다.


시간이 지나 집을 꾸밀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나자, 화분이 많이 늘었다. 작은 고무나무, 저 멀리 열대지방에서 올라온 구아바 나무, 마치 바로크 시대 음악가의 머리카락처럼 꼬불거리는 바로크 벤자민, 작은 크기에 잎이 얼기설기 엉켜 있어도 벽 한 편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하트 체인과 거북이 등껍질을 닮은 프라이덱까지…


흙이 말랐는지 화분 언저리에 나무젓가락을 찔러 넣어 흙 속에 물이 얼마나 말랐는지 가늠해 보고, 잎이 쳐졌을 때는 아버지에게 얻은 작은 영양제 알맹이를 몇 알 뿌려준다. 눈여겨보면 어느새 작은 잎 대가 자라나고, 말려 있던 잎이 서서히 피어지는 모습에 절로 고마워진다.


한 식물 관련 책에서 읽은 덴마크의 식물 디자이너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식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회복시킨다. 식물에게서 회복을 얻듯,
식물도 우리의 에너지를 느낀다.
예컨대 식물에 물을 주며
‘너 참 아름답다’고 말하면 식물은 그걸 이해하고 더 좋아지는 거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에너지를 들인 만큼 식물은 근사한 답을 한다. 바람에 잎을 춤추듯 나부끼고, 눈에 띄게 키가 자란 줄기와 무수해진 잎들, 그리고 잎을 한껏 고개 숙인 모습으로, 가만히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고요히 응답해 주는 것에 힘을 얻는다.


어느 날은 식물에 물을 주며 당신이 쓴 편지를 떠올렸다. 당신은 그곳에 ‘너는 우리 집의 화초’라고 적었다. 그 시절 나는 고집을 피워 혼이 나는 일이 많았다. 꽃나무의 꽃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듯, 당신이 나를 혼내는 일은 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말이었다. 평소엔 글씨가 못 생겼다며 손 글씨를 적는 일이 드물던 당신이었지만 일기장엔 줄곧 나에게 당부하듯 손 편지를 썼다.


때론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에 마음을 기대고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가늠해 본다. 매일같이 집을 정리하던 당신의 손길과 이제는 당신이 없는 집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만든 아버지의 모습이나,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화분들을 한데 모아 바쁘게 물을 주는 나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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