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멸종 시나리오의 시작은 어디일까

유발 하라리 방한 강연에 대한 짤막한 단상

by 가가책방

사피엔스, Sapiens.

Homo라는 단어와 결합하여 현생 인류가 속하는 '슬기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 말.

이스라엘의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 박사의 책 제목.


유발 하라리 박사의 책을 읽지도 않았고, 토막 수준도 안 되는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강연만 '듣고', 그의 책과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적는다는 건 사실 무리하고 또 무리한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문득 곱씹어보게 된 강연 내용에서 떠오르는 바가 있어 기록하고자 한다.

지금 기록하지 않는다면 어제 아침 출근을 위해 면도를 하며, 세면대 앞에서 떠올린 문장을 잊어버린 것처럼 아주 까맣지 않아 더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상황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연에서 유발 하라리 교수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날에, 그것이 200년인지, 2000년인지 사실 숫자는 큰 의미 없이, 틀림없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원인이 될 것인지를 확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와 그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무용한 인류의 발생, 즉 잉여 인간들부터 그 존재 의미를 잃어버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고, 문득 떠올리게 된 건 우연히 '플레이어가 적다'는 지점에서였다. 데이터와 기술을 독점하는, 그것이 가능한, 앞으로는 더욱더 심각해질 불균형이 앞으로의 '기업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이 문득 궁금해졌던 거다.

지금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해석하여 활용하고 있다. 마트의 상품 진열에서부터 광고까지 데이터가 되지 않는 것이 없고, 활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현재 이러한 기업들이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이유는 당연히 '이윤의 추구'다.


이윤의 추구에는 자연스럽게 경쟁이 뒤따른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적다면?

그다지 경제의 구조나 배경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은 편은 아니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때의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담합이다.

국제 사회의 제재나 심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담합해버린다면 사실상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나 능력을 갖고 있는 단체나 국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 하나는 무한 경쟁이다.

이런 상황이 될 가능성은 완전 담합의 가능성에 비하면 극히 적을 것 같지만 무한 경쟁의 구도로 돌입하여, 단 하나가 남을 때까지 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 및 목적은 이윤의 추구라는 것이다. 담합을 하든 경쟁을 하든 일정 수준까지는 이윤의 추구가 목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몇 안 되는 플레이어들이 완전 담합과 동시에 무한 경쟁에 들어간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까?


생각이 여기에 닿았을 때 떠오른 것은 조지 오웰이 그려낸 디스토피아, <1984>의 모습이었다.

1984의 세계관을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이 세계는 유라시아와 오세아니아, 동아시아의 세 강대국이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하며, 각국의 구성원들은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고단함에 시달린다.

'텔레스크린'이라고 하는 줄일 수는 있지만 끌 수는 없는 방송 도구인 동시에 감시 수단은 구성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한다. 국가와 체제는 유지되지만 개인의 삶은 없는 세계, 그것이 1984의 세계인 것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 강연에서 언급된 '적은 플레이어'는 이들 세 강대국을 떠올리게 했다. 이들 강대국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윤의 추구나 경제와 기술의 발전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 모두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기술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통일 역시 지향하는 바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소모전을 계속하고 연합국을 바꾸기는 하지만 어느 한 국가를 멸망시키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경쟁과 다툼 속에서 끊임없이 쇠퇴와 퇴보를 거듭하는 사회, 발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조지 오웰의 퇴보를 계속하는 세계가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크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간단히 적으면 어느 지점,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기업들이 더 이상 이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가 없는 절대 우위의 구조에서는 이윤의 추구가 의미를 잃어버린다. 이미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이 얻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이 없는 세계?

그곳에는 퇴화와 퇴보가 동반될 것이 분명하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한다면 거기에 어떤 형태로든 기업의 영향이 작용한다면 그 이유의 핵심에는 기업이 더 이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스토피아 가운데 하나인 '매트릭스'의 세계를 떠올려 보면 매트릭스에서는 누구도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지속'을 '계속'할 뿐이다. 그것은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발전의 반대 상태는 답보가 아닌 퇴보다. 발전하지 못한다면 퇴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경쟁이라는 배경에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진화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더 이상 경쟁이 필요 없는 혹은 경쟁할 수 없는 세계가 도래한다면? 멸종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세계인 '터미네이터'의 세계는 조금 의미가 다를 수 있다. 물론 이 세계에서도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이 세계는 매트릭스의 세계와는 달리 '지속'이나 '계속'만이 목표가 되지 않는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기계와 경쟁한다. 기계는 지구를 생존시키기 위해 인류와 경쟁한다. 이 세계에는 '생존'을 건 대결이 존재한다.

매트릭스에도 그런 대결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알고 있다시피 매트릭스 세계에서는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캡슐에 고이 넣어두고 에너지원으로 쓰려고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처음의 이야기인 강연으로 돌아가 보자. 강연의 큰 주제는 AI와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기술의 발달이었다. 인류가 멸망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이외의 존재와의 경쟁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 호모 사피엔스 자신들의 결함 때문일까.

조금 길어졌지만 생각을 늘어놓고 나니 조금 정리가 된 기분이다.

'기업'이란 인간, 그것도 일부의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적인 '생산품'이다. 하지만 이 생산품은 반대로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넣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도 무한한 가능성을 말이다. 이것이 현재 인류를 '위협'한다고 하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구글 등의 글로벌 기업의 현주소다.


앞으로도 기업은 이윤을 끊임없이 추구하려고 할까? 그렇다면 그 이윤이란 것이 언제까지나 '돈' 혹은 '재화'의 수준에 머물까? 하나의 세계 혹은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기업은 그 이익을 좇을 것인가?

솔직히 나는 배운 바 일천하고 생각하는 것도 짧은 그저 평범한, 어쩌면 평범하지도 못한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이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생각이든 자유롭다고 느끼는 동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이야기가 얼토당토않고 말도 안 된다고 해도 알 바가 아니다. 내 생각이니까.

하지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200년 앞까지 생각할 것 없이 100년 후에라도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근원에 있는 조건은 기업이 더 이상 인간 개인을 통해서는 이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상이 도래할 가능성에 있다.

기계나 인공지능이 사회에서 인간의 역할과 영역을 대체하는 것은 인류를 멸종시키는 근본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류의 멸종이 '사멸'이라는 형태가 아닌 '변이'라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물론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영어 실력도 짧아 정확히 이해했다고 확신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는 이야기다. 만약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것이 된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호모'라는 접두어를 잃어버리는 형태가 아닐까 한다. 이 생각 역시 기업의 이윤 추구와 관련이 있다.

기업이 인간 개인, 각각의 개체로서의 인간으로부터 이윤을 얻을 수 없게 된다면 인류는 새롭게 구분될 것이다. 유전적 형질이 동일한 상태에서 인류를 칭하는 명칭이 변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매트릭스의 '인간 배터리'가 될지, 설국 열차의 뒷칸이 될지, 터미네이터의 혁명군이 될지, 1984의 형제들이 될지는 모르겠다.


감히 나는 예상해본다. 인류는 개인의 개성을 빼앗기고, 개체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짐으로써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잃게 될 것이다. 이 개념은 탈개성화나 몰개성화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진행될 것이고, 마치 하나의 부품 혹은 세포처럼, 지구 혹은 세계라는 유기체의 일부분으로, 태초의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회귀할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류 멸종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를 시작했는데 예언으로 끝나다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읽고 웃을 사람은 마음껏 웃어도 좋다.

일단 읽을 생각이 없었던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나 읽어봐야겠다.

책을 안 사려고 해도, 이래서 책을 사는 걸 멈출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이유로 사라질지, 그가 생각하는 교육이 내가 생각한 호모 사피엔스 멸종 시나리오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등.


결국 짧지 않은 단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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