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_N.H.클라인바움
오래 전 영화로 보고, 책으로도 읽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꺼내 읽었다. 마침 독서 모임 '일독수다'에 함께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지만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퇴색되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주제, 지극히 단순하지만 치열한 인물들의 갈등과 고뇌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느낀다. 틀에 박힌 교육 제도, 입시를 위한다는 명목에 자유를 박탈당한 아이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닌 모든 성취는 실패로 규정해 버리는 고리타분함. 100년 전에도, 7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지금까지도 왜 성공의 모습은 그토록 판에 박힌 채 달라지지 않는 걸까. 왜 아직도 오래 전 이야기들을 읽고 문제를 자각하며, 울분을 느껴야 하는 걸까.
이야기는 여전히 큰 울림을 남겼지만 불편함도 느껴졌다. 우선 책의 서문 격의 글이 치명적이었다. 뻔뻔하게도 '이 책을 읽기 전에'라는 제목을 달고서 한다는 게 스포일러다. 그냥 스포일러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는데, 담아둔 내용이란 게 이 소설의 결정적 장면들과 그 장면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 들이다. 게다가 이 글을 쓴 이는 개인도 아니고 출판사 '편집부'다. 노골적으로 독자를 하향 평가하는 시선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가 주요 독자라고 상정한 소위 '청소년'들이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을 할까봐 혹은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은 걸 알아차리지 못할까봐서 말이다.
큰 착각이고 아이러니다. 개개인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어야 하고, 개성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의 시작에 앞서 기준선을 제시하다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가장 절실히 느낄 한계를 담아낸 이야기에서 핵심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상상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이 소설이 영화를 원작으로 해서 쓴 거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됐다. 작가가 여성 언론인 출신이라는 사실도. 영화와 가장 다른 장면이 '낙스'가 '크리스'에게 초대 받은 파티 장면이라는 사실도(청소년 권장 도서에 들어갈 장면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견과 원작인 영화에도 없는 이 장면을 써넣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영화나 책을 통해 보고 읽었을 이 이야기는 월튼이라는 기숙형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의 명문 대학을 칭하는 이름, 아이비리그에 매년 다수의 졸업생을 진학시키는 명문 고등학교로 규칙이 매우 엄격했다. 대한민국에서 SKY 대학에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가 명문이라는 이름을 얻고, 어떻게든 그 학교들에 자녀를 진학시키려는 부모가 있듯 미국도 별로 다를 게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꿈, 의지와 무관하게 진로가 정해지고, 미래의 직업과 삶까지 선택되어 있었던 거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이 학교에 키팅 선생이 부임해 온다. 오래 전 월튼을 졸업한 수재로, 그의 수업 방식은 파격적이고 독특했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살라고 가르치고, 획일화의 위협을 경고하며, 아이들이 자신이 진정 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준다. 아이들은 그런 키팅 선생의 가르침에 매혹되어 이끌리지만 교장과 학부모들은 키팅을 경계한다. 아이들 중 유난히 키팅의 가르침에 크게 감화되는 게 닐 페리다. 월튼 최고의 우등생, 아버지가 바라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억압된 영혼에게 처음으로 자율과 자유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 키팅이었던 거다. 닐과 친구들은 오래 전 키팅 선생이 활동했던 비밀 서클 '죽은 시인의 사회'를 부활 시킨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부회원에 머물다, 죽고 나서야 비로소 정회원이 될 수 있는 기묘한 모임.
아이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로서 시를 읽고, 지으며, 자신들의 꿈과 소망을 찾아 간다. 그러나 그들의 꿈과 소망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흩어져 버리는 거다.
아이들이 경험한 거대한 슬픔과 압도적인 부조리에 맞선 경험이 갖는 의미는 당장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음 사람들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슬픔을 겪어야만 하는 필연성이 있다고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부조리에의 공감, 변화의 필요성은 더디더라도 세상을 크게 바꾸는 힘이 된다.
가진 게 많거나 적음과 무관하게 사람은 누구나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 한다. 잃을 수 있는 여지는 상상도 싫어하고,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사랑한다. 세상의 부조리에 공감하고 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음에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없다.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없다. 기존 사회 구조에서 상위에 위치한 사람들은 자신을 믿고 따르면, 간단히 말해 순종하면 자신들의 세계에 받아주겠다고 회유한다. 타인을 희생시키는 걸 도와주면 그 자신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을 꼭 '나'와만 하는 건 아니다.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이들을 이용해 그들은 자신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알맹이를 얻어 간다.
바꾸기 위해서는, 변화하기 위해서는, 달라지기 위해서는 저마다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선장이 되어 자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누구나, 무엇을 위해서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captain! oh, my captain!
우연이지만 내가 쓰는 아이디는 captaindrop이다. captain + drop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만든 거다.
물방울의 대장.
이 소설로 하면 물방울의 선장인 거다.
이 물방울은 눈물일 수도 있고, 땀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내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 삶의 선장으로서, 주도권을 쥐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내고자 한다.
닥쳐올 파도를 겁내지 않게 되기를, 현명하고 용감하게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카르페 디엠, 내 인생 최고의 날, 오늘을 위해.
덧붙임) 영화와 소설 중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영화를 추천하는 바이다. 원작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