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안녕하세요. 북큐레이터 가가C입니다.
오늘은 연례 행사로 소설 <비둘기> 감상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괜히 마음이 꿉꿉할 때, 마치 잔뜩 찌푸리긴 했지만 좀처럼 비를 뿌리지는 않는 하늘이 며칠이나 이어지는 그런 날에 어울리는.
후각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장 그르누이라는 인물이 향수로 세상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그린 <향수>, "날 좀 내버려둬!"라고 세상에 외친 좀머 씨 이야기를 담은 <좀머 씨 이야기>, 영문 모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깊이에의 강요>.
일 년에 몇 번. 외골수 은둔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이 끌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둘기>가 끌린 건 지난 주였어요.
<비둘기>는 파리의 한 은행에서 30년 넘게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크게 바라는 것도, 달리 꿈꾸는 것도 없이 단조로운 평화의 맛을 음미하며 살고 있던 조나단 노엘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스물 다섯 이전에 자신에게 일어날 불행한 일, 놀라운 일, 극적인 일이 모두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며 이제 자기 인생에 일어날 큰 사건이라고 하면 죽음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날과 다를 것 하나 없던 어느 금요일 아침 '비둘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죠.
'비둘기 사건'이라고 해서 비둘기 떼가 습격을 했다거나, 누군가 죽은 비둘기로 테러를 했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진 건 아닙니다. 아침, 여느 때처럼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문을 열고 걸음을 떼놓던 그 순간에 문 앞에 앉아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발견한 것뿐이죠.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별로 크지 않은 데다 이빨도 없는 이 비둘기 한 마리의 등장은 30년 넘게 이어지던 조나단 노엘의 평온한 삶을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이제 잔금만 치르면 자신의 소유가 되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하루 종일 넋이 나가 있다가 죽음을 결심할 만큼요.
작은 판형에 100페이지 남짓되는 길지 않은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세상과 사람을 믿지 못하는 조나단 노엘이라는 인물인지,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피해자였을 부모님의 비극과 그 비극의 여파로 평생 정체 모를 불안에 시달렸을 어린 조나단 노엘에 대한 연민인지, 세상과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주변인으로 살며 스스로 소외되려는 태도에 대한 공감인지.
'확실히 이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단서는 있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나타나 알아차릴 수도 없는 묵직한 한 방을 먹이고는 무기력하게 쓰러진 나를 깔고 앉아 경치를 즐기듯 조소하는 미지의 적의 그림자를 비춰주듯 한 느낌이 그것이죠.
조나단 노엘이 자신을 작고 낡은 아파트에 가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안정감과 타인과의 교류를 최소화함으로써 지켰던 단조로운 평화와 '더 나은 삶'을 꿈꾸지 않음으로써 누릴 수 있었던 현재의 삶.
지금의 내 삶이 결단코 그의 삶과 닮아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은 물음과 그럴 수 없다는 답.
소도시의 삶은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때로는 몹시 소란스럽고, 그 소란스러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대도시의 삶도 다르지 않았군요. 다만 그때는 조용한 도시를 찾거나 완벽한 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는 게 달랐을 뿐.
오랜만에 2호선 내선 순환 열차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봤습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 어디에 도착했든 상관없는 역과 역들. 특별히 내려야 할 곳도, 가야 할 곳도, 맞춰야 하는 시간도 없이 낯선 타인들 사이에 섞여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
어느 아침, 방문 앞에서 마주친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자기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급기야 죽음을 결심한 남자를 구원할 수 있는 기적은 어디에서 올까.
얼마나 극적으로, 어떤 운명적인 사건이 절망하고 좌절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
단조로운 평화의 맛은 어떨지 상상해본 적 있나요.
맵고, 달고, 짜고, 감칠맛 나는 자극적인 맛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단조로운 맛이라니.
단조롭다는 건 예측이 가능하다는 얘기겠죠.
기대한 일은 벌어지고, 기대하지 않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 데서 느끼는 평화로움.
사실 여기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삶의 주도권을 어디에, 누구에게 줄 것인가?'가 아닐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바라지 않는 일은 피하거나 막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 않을지.
<비둘기> 속 조나단 노엘은 유난히 겁 많고, 부정적인 데다, 세상과 사람과 자신을 신뢰하지도 못하지만 이 두려움과 불신 역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약한 면이 아닐까요.
늘 약한 건 아니지만 종종 견딜 수 없이 약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고, 도망칠 수 있기에 도망치기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요. 하지만 영원히 도망치지는 않습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삶의 대부분의 순간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이 열리곤 하니까요.
<비둘기>에서 조나단 노엘에게 삶을 상기시키는 건 하나의 감각입니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건 아니라는 확신.
단조로운 평화의 맛을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요.
삶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이자 위기라고 생각했던 비둘기 한 마리가 30년 넘게 박제된 듯 경직되어 있던 조나단 노엘의 인생을 해방시키는 계기가 되었듯이.
이번에 <비둘기>를 읽은 느낌을 한 줄로 적어보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스스로 고통과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겁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달기만 하거나 짜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 걸 '맛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단조롭기만 한 삶은 결코 '평화롭다'라고 할 수 없겠죠.
결국 단조로운 평화의 맛이란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데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어느 날 찾아든 불청객을 환대할 필요는 없지만, 겁내고 도망치기만 할 필요는 없는.
<비둘기>를 읽고 쓰며 내린 이번의 결론이었습니다.
내년 혹은 다음번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는 또 어떤 얘기를 하게 될지 스스로도 궁금해하면서.
북큐레이터 가가C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