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왜 미래가 걱정이 안 되지? 생각이 없어서 그런가?
안녕하세요. 북큐레이터 서동민입니다. '세상은 한 권의 거대한 책'이라는 말이 있죠. 종이나 전자 페이지에 텍스트로 존재하는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 어떤 순간에 던져진 사소하지만 곱씹어볼만한 질문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달의 질문]은 일상의 어떤 장면에 던져진 질문에 이어 붙여본 생각입니다.
의견, 또 다른 질문들 반기고, 환영합니다.
오늘 아침 서울에 첫 얼음이 관측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기를 찾아보니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을 지나 겨울 초입이라는 '입동'을 앞두고 있네요. 생각하기에 따라 가을을 만끽하기도 전에 겨울이 오는구나 하며 허허로울 수도 있겠고, 아직 잎이 다 지지 않았고 움츠리고 있을만큼 춥지도 않으니 무엇인들, 어딘들 못 가랴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단지 관점 하나를 바꾸는 거지만 그 하나가 모든 걸 바꾼다는 흔하지만 분명한 가르침이죠.
길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카페에서나 귀를 열어놓는 편입니다.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이어폰으로 크게, 오래 들으면 청력이 떨어질 수 있고, 차나 오토바이, 자전거나 사람과 부딪히는 안전 사고 위험이 있으며, 완전한 타인으로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달의 질문]으로 삼을 수 있는 질문을 발견할 수 있던 것도 다 귀를 열어둔 덕이었고요.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거나 끄적일 뭔가를 궁리하고 있었을 겁니다. 카페 한 켠에서 주고 받던 두 사람의 대화 일부가 들리더군요.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들리지 않다가 유난히 그 부분이 귀에 들어온 걸 보면 참, 운명적이랄까요. 그 질문이란 이런 거였습니다.
이 물음에 그치지 않고 바로 이어 의구심 섞인 답을 던지더군요.
이런 생각, 질문 던져본 적 있으세요?
이 질문의 키워드는 네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이 질문을 [이달의 질문]으로 정한 건 그 말을 듣는 순간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생각이 없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미래가 걱정되지 않았는가?' 그 생각을 조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미래를 걱정하게 하는 소식으로 넘치는,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만드는 요즘입니다. 걱정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하면, 좋은 회사에 가지 못하면, 좋은 도시, 동네에 살지 못하면, 좋은 차를 갖지 못하면, 좋은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노후에 대비하지 못하면, 심지어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면 안된다고요.
정말 겁나는 질문들 뿐이네요. 걱정할 수밖에 없고요.
먼저 "나는 왜 미래가 걱정이 안 되지? 생각이 없어서 그런가?"하는 물음에 답을 해봐야겠습니다.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거고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달라서일 거다."정도면 어떤가요.
'나는 왜 미래가 걱정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걱정해야 할만큼 갖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물론 먼 미래, 놓인 처지를 생각하면 저에게도 걱정할 필요가 있는 게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소유의 집이나 차도 없었고, 남다른 능력이나 경력을 갖추지도 못했으며, 나이들어 일할 수 없게된 이후, 노후를 위한 충분한 돈도 없었으니까요.
다르게 생각하면 다만 지금, 그런 걱정이 없을 뿐 언제든 생겨날 수도 있는 거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은 대부분 외부 요인에서 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들여다 본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불안의 근원처럼요. 버틀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나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속 고민과 해결책은 현재까지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마음을 비우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남들'의 소식을 매순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지니까요. 자연스럽게 가깝거나 먼 타인, 자기 스스로 세상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더 많은 걸 갖고자 욕망하게 되고, 충족되지 않거나 충족하지 못할 것 같을 때 걱정하고 불안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럼에도 미래를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더 큰 걱정을 해주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진심을 담아 조언하기도 합니다. '평균의 삶',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무엇이 평균, 어디가 보통이라고 분명히 그 지점을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대부분의 걱정은 '지금의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는 듯 보입니다. '미래의 나' 혹은 '주변의 사람들'을 의식하면서요. 지금의 나에게 조금 더 여유와 시간을 허락하는 건 어떨까요.
"나는 왜 미래가 걱정이 안 되지? 생각이 없어서 그런가?"
어쩌면 정말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다만 여기서 '없는 생각'은 미래에 대한 준비나 고민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타인 혹은 세상, 일어나지 않을 불안이나 좌절에 대한 부정적 생각일 겁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95%는 일어나지 않으며 나머지 5%에서 조차 3%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남은 2%에서도 일부만이 걱정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경험에 의해 그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신뢰할만 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걱정조차 하지 않으면 걱정이 너무 커져서 견딜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뭐든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결국 걱정하기를 선택한다는 거죠.
걱정하기 위한 걱정을 하는 데 보내는 시간을 재밌는 소설, 감동적인 작품, 인생의 지혜와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책 한 권과 만나는 데 써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