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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흔하다

이것은 나의 기록입니다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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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에 삽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과 사처럼 거창한 경계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경계에 산다고, 나도 경계에 산다고, 다르겠지만 전혀 다르지는 않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 마음 끌리는 풍경에서 경계를 발견하고는 합니다.

하늘과 땅, 강과 육지, 빛과 어둠, 낮과 밤.

완전하게 나눌 수 없는 현상과 사실과 사상과 생각을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너무 흔합니다.

경계가 문제겠지요.

내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는 정도를 경계삼아 발을 담그고 있다 슬그머니 빼고 말겠지요.

경계 역시 사람마다 기준, 범위가 다를 텐데 책임에 있어서 누군가는 몹시 관대하게(거꾸로 가혹하게) 경계를 설정해두겠지요.


사람이란 게, 인간이란 게, 그런 거다.

알지만, 그래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자꾸만 흔해집니다.

게다가 그런 거라뇨.

그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구에게 건네는지도 모를 혼잣말을 어느 경계에 던져 봅니다.


그건 당신 책임입니다.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삐뚤어진 탓에 삶을 생각해도 이런 생각만 듭니다.


책임지지 않는 삶이 너무 흔하다는.


책임이 없으면 삶이나 죽음을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책임지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 아닌가요.


겁이 납니다.

웃고 있을까 봐.


제 손으로 숨통을 조여 살해할 때만 살인이 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법이 그러하다면 세상은 법부터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죽음을 허락하고 있군요.


생물학이나 의학 기준에서 호흡하지 않는, 심장이 뛰지 않는, 의식이 없는 죽음 말고도 죽음은 몹시 흔합니다.

그 죽음을 당신 역시 여러 번 경험했을 테지요.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흔한 데다 더 흔해지는 이유입니다.


한숨을 대신해 씁니다.

한숨만 쉬고 있을까 봐 손을 움직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너무 흔하다고,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흔하다고,

그 마음이 죽을 때 함께 죽어버리는 책임지지 않는 마음이 너무 흔하다고,

그런 얘기라도 늘어놓아야 했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순간에도 절망을 떠올립니다.

경계가 그렇잖아요.

희망만, 웃음만, 당당함만, 강함만, 그럴 수 없잖아요.


경계에서 생각합니다.

오늘은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하나라도 덜 흔했으면.


다행인지, 아닌지 책임에서 영원히 자유로워진 사람에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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