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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삶을 생각하고는 했다

이것은 나의 기록입니다

by 가가책방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쪽에 넣을지 아닌 쪽에 버려둘지 정해야 한다고, 그 기준을 세워보라고 한다면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해둔 게 있다.

어렵지 않은 문제다. 좋은 사람이 많은 걸 더 좋아하니까 굳이 어려울 필요가 없으니까.


물음.

"어느 쪽이 저녁 일까?"

조금 더 읽어볼 마음이 생긴다면 맞춰보고 시작해보자.

저녁노을.jpg
아침노을.jpg
아침 노을, 저녁 노을


정답은 뒤로 미뤄두고 다른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아침노을을 좋아한다.

하지만 저녁노을에 더 마음이 갈 때가 많다.

특별히 어느 쪽을 더 좋아할 이유가 없어서 조금 생각해 봤다.

아침노을을 좋아하면서 저녁노을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가 뭘까 하고.


일단 저녁노을이 더 극적이라고 느낀다. 붉고 붉어지다 기어코 검어지는 모습은 피를 닮았다.

피가 혈관에서 빠져나오는 상황은 대부분 비극이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문제가 있을까 염려하는 상황이 아니면 붉은 피는 상상 속에만 존재해도 충분하다. 붉은 피가 마르고 굳어지면서 검어지는 비극, 비극에 마음이 끌리는 편이라 저녁노을에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모른다.

아침노을은 시간이 갈수록 붉은빛을 잃는다.

그와 함께 따뜻함도 잃어버린다. 전구색에 가깝던 하늘이 주광색이 되어가는 과정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일할 시간이 됐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다르게 말해볼까.

저녁노을은 사회인, 학생, 타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해방의 표시 같다.

아침노을은 그 반대다. 단순한 개인 그 이상을 의미하는 시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표시 같다.

그냥, 문득. 소설 한 편이 떠올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작품.

천재라고 불린 작가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소설은 남겨진 사람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한 남편이자 아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여자 이야기다. 어쩌면 행복하지 않은 게 이상한, 삶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지도, 정신에 문제가 있지도, 다툼이나 분쟁도, 그날따라 유난스러웠던 징후도 없던 남자가 귀가 길에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 이유가 도대체 뭔지 지금까지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혹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 짐작 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

아무 이유가 없었기에 남자는 죽음을 택했을 거라는.


'죽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경우는 많이 봤다.

사람마다 다른 성향, 기준이 있을 텐데 그 모든 기준, 성향을 모두에게 적용한다면 세상에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흔하고, 공통된 이유가 많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도 많이 찾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다 이유를 듣다 보면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을 내놓기란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문제라고 할 수 있다면),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경우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산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인지도 모른다.


삶을 생각하지도, 죽음을 떠올리지도 않으면서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잠자는 시간.

그 시간 역시 삶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삶이 아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심지어 자신과 피로 이어진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해도, 훌쩍 죽음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으려면 그럴만한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게 더 그럴듯하다.


<환상의 빛>.

제목부터 '환상'이기에 어떤 빛인지 정의하기 불가능하다.

이유를 짐작하고 상상할 뿐, '이것이다'라고 결론 내릴 수 없다.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게 더 마음 편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아침노을을 좋아하면서, 저녁노을에 더 마음이 갈 때가 많은 데에 특별한 이유 같은 걸 찾을 필요는 없다고.

그런 걸 찾는 건 한가하고 여유로운 자의 시간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이렇게 되고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실 오늘 쓰고 싶던 주제는 '노을'이 아니라 '호흡'이었다.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단어들이 들락날락 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분명 다른 글이 됐을 텐데.


제목은 이렇게 쓰려고 했다.

"그만둘 수 없는 건 괴롭기 마련이다."

회사 생활이 괴로운 건 간단히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라거나,

가족이 괴롭게 느껴지는 건 가족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라거나 하는 시답잖은 얘기를 할 뻔했달까.


잘 쓰면 그래도 어중간한 글이 됐을 테지만, 오늘은 안 써서 다행이지 싶다.

보나 마나 묘하고 이상해서 결국 헛소리 범주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앉을 글이 됐을 테니까.


이미 다들 알아차렸겠지만 왼쪽 사진이 저녁노을, 오른쪽 사진이 아침노을이다.

마칠 때가 되어서 하는 얘긴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녁노을에 더 마음이 가는 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더 자주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는 아침노을을 더 자주 보기도 했지만 저녁노을을 더 자주, 압도적으로 많이 봐온 탓에 익숙해서 그런 게 아닐까.


익숙해지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좋은 면이 많다.

삶도 익숙해지는 게 낫다.

익숙해진 척이라도 하는 게 낫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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