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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바람에 마음을 식히며.

공주에서 작은 책방을 합니다.

by 가가책방
KakaoTalk_20190924_002934847.jpg 가가책방과 그림자

그림자에도 온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종종 궁금함을 품습니다.

여름 그림자, 봄 그림자, 겨울 그림자, 가을 그림자.

그림자를 보며 궁금한 적 없나요.

사진 속 그림자는 8월 끝자락에 남겨둔 흔적입니다.

그림자에서 온도가 느껴지나요, 느낀다면 몇 도쯤 될까요.

절기로는 가을이지만 더위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없던 날에요.

그날로부터 3주 남짓, 이제 밤바람이 제법 선선하고 새벽 공기는 차갑기도 합니다.

감기 조심하라는 인사가 어색하지 않은 가을밤에 씁니다.


차가워진 공기와 무관하게 요즘 제 마음은 몹시 뜨겁습니다.

하루, 한 주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고 보내고 또 보내고 있거든요. 무료함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지만 분주함은 또 분주 함대로 초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잘 나아가고 있는 건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불안을 느낍니다.

이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건 아닌지 살피는 시간을 자꾸만 생략하는 스스로를 알아차릴 때마다 불안이 자라는 걸 실감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뜨겁다는 말을 풀어 적으면 머리의 속도를 마음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하는 게 맞고, '그렇게'해도 되며, '저렇게'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고 그렇게 하며 저렇게 되어도 괜찮은지 좀처럼 안심이 되지를 않아서요.


공주에 작은 책방을 열었습니다.

가오픈만 3개월째죠.

앞으로 3개월은 더 가오픈 상태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소개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볼 생각이에요. 책방을 열었더니,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더군요.

아저씨가 아니라 '사장님'이라니.

얼마나 어색하던지요.


여담이지만 예전부터 "나는 대표 체질은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는 했습니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사업가와는 아주 멀고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사업가는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 그 망설임 들. 그 마음들이 마음에 열기를 부추기고는 합니다.


책방을 열고 거의 세 달, 몇 명이나 다녀가셨을까요.

적어도 200명, 많으면 250명은 다녀가셨던 듯합니다.

지방 소도시, 간판도 없이, SNS 채널만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후미진 길 어디쯤에 자리한 작은 책방 치고는 정말 많이 다녀간 게 아닐까 스스로 평해 보기도 하고요.

두 달 전에 시작한 북클럽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고, 새로 기획한 북클럽도 무사히 시작했고, 공주에 없던 책방에서 기획한 작가와의 만남도 성황리에 마쳤으니 성공적이지 않다고 할 수 없겠다면서 말입니다.

앞으로 글쓰기와 드로잉 클래스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니 그야말로 책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겠다는 속셈인데, 지금까지의 성공에 희망을 품었다가도 앞으로는 또 장담할 수 없다는 현실적 생각에 심각해지기도 하는 하루하루.


단순히 이러하고 저러해서 그러하다는 식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머리와 마음의 속도는 점점 더 차이를 벌려만 가는 듯합니다.

이 밤, 차가워진 가을바람에 마음을 식히며 이렇게 두서없이, 떠오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끄적이고 있는 이유죠.


책방에 와서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가는 사람들, 책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확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의 말을 듣는 대화와 경청의 시간들, 그 모든 시간과 만남, 인연이 소중하고 또 소중합니다.


책방을 찾아주신 분들이 던지는 질문 중 제법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어떻게 책방을 유지하세요?"라는 물음.

가장 고민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주는 분들의 마음이 그 힘이 될 걸 알기에, 그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고 되갚고 품을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책방을 연 것과 별개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이야기를 오래,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게으르고 귀찮음 많던 습관이 좀처럼 깨어지지 않아 마음이 더 분주해지고는 합니다.


혹시 공주에 들를 일이 있다면 '가가책방'도 찾아주세요.

직접 방문할 수 없다면 마음만 보내주셔도 고맙습니다.


이 밤, 제 그림자의 온도는 몇 도나 될까요.

추측하기로는 37.9도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아주 높아서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는 애매한 상태.

36.5도보다 1.4도 높은 아픈지 아닌지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 상태.

잘 견디면 면역을 얻을 수 있을 상태.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 주시길.


더하여, 미열에 시달리는 모든 마음을 응원하며.


KakaoTalk_20190924_002652281.jpg 어두운 후 가가책방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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