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운이다
가가책방을 찾아오는 사람 중에 책방을 꿈꾸는 사람이 많았다. 돌아보면 유난스럽다 할 만큼 '책방을 하고 싶다'거나 '해보면 어떨까 한다'고 하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나 역시 지난여름 책방을 열기 전까지 그런 마음이었고, 그런 꿈을 꾸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달라진 건 세상에 가가책방이라는 작은 책방 하나가 생겼다는 것뿐이다.
나는 책방을 지키는 자리로 옮겨왔고, 그들은 책방을 찾아다니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다.
책방을 열기 전까지 오랜 시간 '나의 책방'을 상상했다. 규모, 형태, 책의 종류, 위치,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 상상에 비해 책방을 만드는 과정, 책방을 만들고 난 후의 운영은 몹시 보통의, 현실적인 것이 됐다. 거창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은, 보통의 일. 책방은 그렇게 일상이 됐다.
책방은 매주 목요일에 쉰다. 보통 낮에는 쉬면서 돌아다니거나, 어슬렁거리거나 하고, 저녁에는 서울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는 한다. 종종 안 하던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예술가의 정원'에서 열리는 윤희수 작가의 작은 전시를 보러 갔다.
사진은 작품 중 하나를 찍어둔 거다. 나무 의자에서 자란 가지에 잎이 무성히 돋아나고 그 안에 작은 새가 잔뜩 깃들어 있는 모습이 좋았다. 저마다 다른 눈을 하고 있는 새의 얼굴, 표정, 생김도 인상적이다.
가가책방이 자리 잡은 공주는 작은 도시다. 하지만 경험의 가능성까지 작은 건 아니다. 거대한 전시는 좀처럼 열리지 않지만 작은 전시는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가능성이 작은 게 아니라 스케일이 다른 것뿐인 셈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전시장을 찾는 자신을 상상하는 데 만족하기도 한다. 늘 열리고, 언제나 있어서 새롭지도 소중하지도 않게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상상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거다.
가장 자주 하는 상상이 뭔지 물어보고 싶다.
지금쯤이면 이런 상상 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맛있는 걸 먹는.
유명한 누구를 만나는.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여행하는.
또, 무슨 상상을 했는가.
목요일은 책방이 쉬는 정기 휴무일이다. 하지만 특별히 문을 열어두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유난히 예고 없이 찾아오는,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많다. 평소라면 헛걸음을 했을 텐데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 거다.
그중에 기억에 남을만한 두 사람이 있어 조금 기록해두려고 한다.
책방을 찾은 손님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여행 중이신가요"다. 실제로 대부분, 90%는 "여행 중"이라 답한다.
가가책방은 외진 곳에 있고, 작기에 우연히 발견하기는 어려운 공간이다. 물론, 우연히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검색을 해보고, 위치를 특정해서 오곤 한다. 이번 사람들은 달랐다. 여행을 시작하는 방법부터 즐기는 방법까지 낯설지만 좋아 보였다.
두 사람은 문득 여행이 하고 싶어 졌단다. 터미널에 가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버스표를 샀다. 그 버스는 공주행 버스. 전날 도착해서 자고, 다음 날 밥을 먹고 배가 불러져서 3킬로미터 가까이 걸었다. 공주에 왔으니 책방이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고 왔다고 한다.
인상적이다. 오래전 한 번은 상상해봤을 방법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다니. 영화 속에서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비행기표를 사서 어디론가 떠나는 주인공을 본 기억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버스 정류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어디로 향하든 운에 맡기는 일조차 겁내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여행을 하고 있었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만끽할 수 있는 진짜 중의 진짜 여행을.
그런 여행, 나도 즐겨봐야지.
새해 목표를 세우는 시기다.
올해 계획 중 하나는 책방을 무사히 운영하기가 첫째.
다른 계획은 세울 계획 중이다.
어떤 계획들을, 목표들을 세우고 있는지 들려줬으면 한다.
책을 읽겠다.
여행을 하겠다.
돈을 벌겠다.
다이어트다.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계획과 목표들.
새해를 맞아 자존감을 높이겠다고 말하는 사람, 높이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들을 벌써 여러 명 만났다.
책방에서 자존감을 찾는 사람도 있는데, 가가책방에 그런 책은 없다.
자존감은 상상으로, 읽기만으로는 찾을 수도, 높이기도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떠나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경험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작은 성공들, 사소한 성공을 경험하기도 계획에 넣어줬으면 싶다.
절반은 운이다.
과장 없이, 거의 모든 일이 절반은 운이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게 될는지, 절반의 운에 걸고 책방 문을 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