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작은 책방을 열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버릇 하나가 문득 툭 불거졌다.
뒷 이야기, 더 정확히는 결말이 궁금해서 마지막 페이지 언저리를 들춰보는 거다.
그래서 만화, 연재소설, 무협 소설을 읽던 시절에도 완결된 걸 읽기에 골몰했다.
이 버릇을 잊고 지낼 수 있던 이유는 읽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었고, 읽을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 버릇이 다시 불거졌다는 건 읽는 속도가 느려졌거나, 읽을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 된다. 사실 어느 쪽인가 하면, 둘 다다.
나는 공주에서 가가책방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한다. 큐레이션 책방을 지향하고, 적은 종수를 취급하더라도 판매하는 책은 다 읽고 소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아이러니한 건 책방을 열고 난 후에 독서량이 더 줄어들었다는 거다. 절대량으로는 부족하지 않지만 어쩐지 읽을 시간이 부족하기만 하다. 읽는 양과 쓰는 양이 비례하는 편이라 읽기만큼 쓰기도 지지부진하다. 자꾸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마음만 급해진다. 결과, 지금 읽는 부분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 부분을 펼쳐보게 된다.
우스운 건 읽는 책마다 마지막 장만 읽어서는 도무지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다. 자연히 조금 더 앞까지 읽어보게 되고, 그러다 몇 페이지씩 읽게 될 때도 있다. 그렇게 적당히 이해가 됐다 싶어 지면 다시 읽던 자리로 돌아가서 이어 읽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전에 읽어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다시 읽는다. 종종 미리 읽어둔 결말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어쩔 수 없이 적당히 건성이 되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결말이 궁금해서 미리 읽어보는 버릇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큰 셈이다.
예전부터 한결같은 버릇도 있다. 책을 읽다 다른 생각에 빠져드는 거다. 읽던 책을 덮고 메모를 하기도 하고, 몇 걸음 거닐기도 하고, 제법 오래 산책을 할 때도 있다. 이 버릇은 읽는 흐름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감상을 쓸 때도 한몫을 담당한다. 부작용보다 효과가 큰 셈이다.
책을 읽다 떠올리는 생각이 꼭 책 내용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에 떠오른 생각은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공간에 관한 거였다. 99% 목재로 만든 이 공간은 바닥은 새로 짓는 한옥에서 쓰고 남은 판자와 리모델링을 위해 철거하는 현장에서 구해온 각재로 만들었다. 당연히 길이도 제각각에 굵기도 달랐다. 덕분에 짜 맞추는데 한참 고생했다. 얼룩얼룩한 무늬의 합판만 새것이고 다른 나무들은 '쓰레기' 혹은 '폐기물'로 분류해서 불태워질 운명이었다. 살짝 그을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최고의 읽기 명당자리로 활약하고 있는 걸 보니 내 손으로 만들어 놓고 또 뿌듯함을 느낀다.
앉아서 책을 읽던 공간에서 떠올린 건 쓸쓸한 생각이다. 분명 어딘가에 활용될 수 있었지만 버려져 사라진 '없는 것'의 기분에 관한 거였으니 말이다.
문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없는 책방 = 깔리지 못하고 땅 속에 묻히는 보도블록의 기분 = 살아서 베어진 것도 억울한데 무엇이 되기도 전에 불태워질 운명이 된 나무판자의 기분이라는 등식이다. 읽는 사람이 없는 고전, 보는 사람이 없는 명작, 쓰는 사람이 없는 명품 같은 거랄까.
2020년에도 가가책방은 고전 함께 읽기를 계속해야지.
오랜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함께 나누고 즐기기 위해.
고치기보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더 효율이 높고, 수리보다 신축이 싸다고 해도 오랜 것은 오래된 대로 복제 불가능한 가치를 품고 있다고 믿기에.
거창하게 들리지만 심각해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올해 목표 하나는 가뿐하게 읽고, 가볍게 쓰자로 정했다.
쓸쓸한 채로 남지 않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자.
하나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버리기다. 관심을 끊어버리면 쓸쓸할 일도 없다.
다른 하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기다. 어떻게 다가갈지, 어떻게 하면 친근해질 수 있는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남지만 권할만한 방법이다.
작은 책방은 작아서 여력도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공간도, 책도, 할 수 있는 것도 적다. 하지만 반대로 작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그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발견해 가는 데 시간을 들여야지.
작은 책방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쳐야겠다.
가가책방에는 작은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 종종 급식소를 찾은 고양이 곁에 다가가 앉아서 경계심 없이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기를 즐긴다. 어딘가 비슷한 걸 할 수 있는 책방이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유일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