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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Dec 08. 2024

정치하는 마음

전두환과 노태우의 세계가 반복될 것인가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놀랍고 안정적인 민주주의국가입니다. 이승만에서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통령 개인의 영달, 정당의 당리당략, 특정 권력을 쥐고 국가를 좌우하려는 시도를 현명하고 단호하게 물리쳐서 이룬 오늘입니다. 무고한 생명이 무도한 학살에 스러지고 또 쓰러져도 지치지 않고 싸워 기어코 바로 잡은 숭고한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 오늘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유력한 정치인이나 철혈의 군인이 아니라 나와 다름없는, 보통이고 평범한 얼굴의 시민들이었습니다. 다만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단지 평범해서 더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거리로 나섰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모두가 정치를 할 필요는 없기에, 정치를 잘 알 필요도 없기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의 삶을 사는 데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정치하는 마음.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변할 거라고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소위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상식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정치하는 마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본성을 숨겼던 걸까요 아니면 정치라는 독약이 순수했던 사람을 물들여 변하게 하는 걸까요.  세상 더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성공한 인물들이 다 가진 후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한 번은 도전하는 정치라는 세계. 정치는 곧 권력이라는 공식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과 정치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 어떤 성공보다 더 가치 있게 보이는 걸까요. 모든 정치인이 흑화 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 정치에 몸담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며 비판하던 사람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걸 본인 말고는 다 알 수 있을 만큼 변해버리곤 합니다. 성공한 정치 입문자처럼 보이는 이들 중에 정치인이라는 권력자의 자리를 떠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 세계가 너무 끔찍해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그들은 말이 없습니다. 왜 그 세계를 떠났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며 뭐든 이뤄줄 것처럼 약속을 남발하던 정치인과 유권자를 만날 때마다 읍소하며 한 표를 부탁하던 인물들이 당선된 후에는 소국의 왕이나 황제처럼 군림한다는 이야기는 흔해빠졌습니다. 막말은 보통이고 보복도 서슴지 않으니 이런 무도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또 그 사람을 지지하고 자신들의 대표로 세워줍니다.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 밖의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놀음에 휘둘리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결말들이 흔합니다. 


 2024년 12월 7일의 풍경도 그랬습니다. 

영부인의 특검 표결은 198대 102로 부결됐고,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탄핵 표결은 투표 정족수 미달로 불발됐습니다. 그 시간 국회 의사당 앞에는 탄핵가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퇴진과 구속을 외치고 있었고 광화문에서는 우리의 승리라며 탄핵 부결을 축하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 안에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인도 있었을 겁니다. 특정 세력의 우위, 승리가 이익과 직결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익이나 이해와 무관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어느 쪽이든 특정 세력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고 거리로 나섰지만 그걸 정치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드물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생계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신념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정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친구가 그렇다고 해서 거기 있었을 겁니다. 정치하는 마음은 그 사람들을 이끌고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이 먹고 있었을 겁니다. 어떻게 믿게 할까, 어떻게 부딪히게 할까, 어떻게 싸우고 다투고 갈라지게 할까. 

 2016년 겨울과 비슷하지만 더 혹독한 갈등의 소용돌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더 목소리가 높아진, 더 과감하고 더 과격해진 가짜 학자, 가짜 목사, 가짜 대표, 그 이름을 하나로 이익으로 똘똘 뭉친 정치인들이 있었습니다. 학자가 정치에 매진하고, 목사가 정치에 목소리를 높이고, 대표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이용하는 나날. 갈등하고 다투는 사람들을 보며 웃고 즐기는 그들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탄핵에 찬성했던 한동훈 당대표는 그 노선을 질서 있는 퇴진으로 선회했다며 그 이유를 국민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국정을 운영하기 위함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발표의 순간을 보는데 문득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질서 있게 퇴진하면서 자신의 권력과 정권을 고스란히 인수 인계 했던 신군부의 성공한 쿠데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정권은 진행형이며 쿠데타 역시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졌습니다.


 스마트한 공무원이었던 사람들.

사회의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집행하는 이름을 짊어지고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변화, 변질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전에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던 거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그건 너무 비극적이니까요. 정치인의 자리에 선 순간, 어제의 나와는 결별해야 한다는 결심이 신내림처럼 내려오는 걸까요. 그래서 혈색 좋던 얼굴이 창백해지고, 곱던 머릿결이 거칠어질수록 입은 현란하고 화려한 언변을 담게 되는 걸까요. 어제 했던 말, 약속을 다 뒤집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 마디면 면죄부가 주어지는 세계라는 공감대라도 존재하는 걸까요. 

 

 오래전 세상에 나온 소설이나 이제 세상에 막 나오는 소설이나 정치인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게 그려지는 건 우연일까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 뜬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대통령, 총리, 장관들, 의원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져 보입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게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그 행위나 결정에도 선이 있을 거고 한계가 있을 텐데 늘 진화하는 정치인들은 자꾸만 그 한계를 초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가사의한 방향으로, 기상천외한 변화를 보여주는데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기이한 현상은 정치인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소위 지지자라고 하는 이들 역시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닮아서 그런지 더 기이한 논리와 주장을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별로 이해관계가 없어 보이는데도 결연한 신념으로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겁니다. 친위대, 내 편의 더러움을 모두 뒤집어쓰고 상대편의 폭력조차 감내합니다. 이것이 정치하는 마음일까요.


 정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에 뛰어들 필요가 없는, 정치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치하는 마음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나라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키고, 원칙과 법에 맞게 운영해 달라고 4년, 5년마다 정치인을 뽑는 게 선거임에도 마치 왕이나 귀족을 뽑는 것처럼 무슨 파벌이니 하며 몰려다닙니다. 정치가 그러라고 존재하는 거였나요.


 왜 부패한 권력은 늘 겨울에 시민을 거리로 불러내는 건가요.

생활과 꿈을 누리고 좇기에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소양과 감시를 요구하는 건가요. 원치 않게 쌓이고 단련된 정치적 소양과 감시 능력을 발휘해서 여론을 표출하면 무시하거나 조작이라고 몰아가는 건가요. 그렇게 모질고 비인간적인 강철의 심장과 얼굴을 가져야 한 몫을 해내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건지.


 나는 정치를 모르고 지내던 날이 좋습니다.

다투더라도 국회와 정부 안에서 다툼이 그치던 나날이 그립습니다.

듣기만 해도 공포스러운 계엄이니, 비상이니, 불편 감수니, 처단이니 하는 말은 싫습니다.


 정치하는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잔뜩 늘어놓은 글들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사실은…'하고 허심탄회하게 진심을 전해줄 정치인 어디 없습니까. 사랑하는 존재라며 자기 두 살이나 됐을까 싶은 딸 얼굴을 자신의 SNS 가득 올려놓고 책임져야 할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아빠는 비정한 심장을 가진 정치인인가요. 아니면 부끄럽고 참담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무력하고 무능한 정치인인가요. 그 자리가, 그 선택이 그 마음에 꼭 맞습니까? 도무지 정치하는 마음을 모르겠는 무지한 시민은 묻고 또 묻습니다.


 무도한 권력 역시 존중받고 존속되어야 하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입니까.

마음에 한점 부끄럼 없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정말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면 그게 정치하는 마음인 거니까요. 역시 정치는 싫습니다. 당리당략, 이합집산, 자기 한 몸과 조직의 안위만 보고 똘똘 뭉치는 게 정치라면 혐오스럽습니다. 부끄러움을 알라고, 느끼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시민은 잊지 않는다는 걸, 역사는 기억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전두환과 노태우의 세계가 반복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정치하는 마음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겁니다.


꿈도 꾸지마. 
진짜가 나타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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