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삶 동안 어떤 선고를 기다린 사람
카프카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큰 어려움, 절망, 좌절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선입견일 수 있지만 그런 배경에서 보면 카프카의 거의 모든 소설은 극복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큰 그림자에 가려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독 '법'이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법과 아버지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 보면 납득되는 부분이 많다.
법 앞에서 보통의 인간은 한 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누가 어떤 근거와 권위로 자신을 심판하려 드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미지조차 법이 가진 속성이다. '내 편인 줄 알았던 법이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은 우리도 흔히 하고 듣는 말이고 그런 의외성이 법 앞에 다가가기 두렵게 한다. 법은 늘 우리 주위를 맴돌지만 결코 마주치지 않기를 빌어야 하는 불가해인 것이다.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72, 『변신 · 선고 외』는 카프카의 단편을 담았다. 잘 알려진 「변신」을 포함한 19편의 소설이다. 「변신」은 두 번째로 실렸고 첫 번째가 「선고」다.
「선고」는 결혼을 앞둔 게오르크라는 남자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며 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다 아버지와 다투다 뛰쳐나가 난간 밖으로 몸을 던진다는 이야기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소설에서 카프카와 카프카의 아버지가 얘기 나누는 어떤 장면이 그려졌다. 아마도 그들의 대화는 그런 식이었으리라. 모든 걸 알고 있고, 모든 걸 좌우할 힘이 있는 아버지와 그와 잘 지내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번번이 깨닫는 아들의 삐걱임. 아들에게 익사형을 선고하는 아버지와 그 선고를 듣고 뛰쳐나가는 아들. 아들, 게오르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뛰쳐나가는 것 말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잘못을 비는 것 외에.
「법 앞에서」는 이게 소설인지 메모인지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짧다. 세 페이지. 그 사이에 한 사람의 평생이 담긴다.
한 사람이 법 앞에 와서 들어가기를 청한다. 문지기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법으로 가는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문지가가 들여보내주기를 평생 동안 기다리다 죽는다.
무슨 의미일까.
문자 그대로 법이 그렇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프카와 아버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해석도 떠오른다. 법 앞을 지키는 문지기를 아버지의 방문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나는 이제 막 아버지의 방문을 두드리려고 그 앞에 섰다.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아버지 기분이 어떨까'
'혹시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건 아닐까.'
'막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날아갔다며 화를 내지는 않으실까'
온갖 질문들이 떠오른다.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서 있는 사이, 어느 때부턴가 안에서 자신이 문 앞에 선 걸 알아차린 아버지가 "들어와도 좋다"라고 말하기를 바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는 문 앞에 서서 내내, 기다린다. 그러다 결국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 나중에 다시 오자'며 돌아간다. 그런 일이 매일, 평생 반복된다. 아버지와 나는 언제까지나 마주하지 못한다.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의 때에 세상을 떠난다.
카프카는 아버지 앞에서 늘 작아졌나 보다. 우리가 법 앞에서 작아지는 것처럼.
왜 저들에게는 법이 그리 관대한지 내게만 왜 그리 가혹한지 묻지만 그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것처럼.
절망에 빠져 마지막 수단인 편지마저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카프카.
그의 법 앞에 선 마음을 오늘 실감하며.
그럼에도 다가가야지 한다.
두드려야지 한다.
불러봐야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