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부친상을 치르며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지지난 주 일요일 새벽,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부고를 알릴 시간이 촉박했다. 어찌어찌 장례식장을 급히 마련하고서, 오전 11시가 넘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알리지 않을 생각도 했다. 가족과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상을 치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을 혼자서만 치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 이마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발인이 화요일로 잡혔으니, 조문할 시간은 사실상 일요일과 월요일 단 이틀뿐이었다. 게다가 일요일이었으니 지인들이 문상을 오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첫날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주로 문상을 왔다.
내가 법조인이라 지인들 대부분도 법조계 사람들이다. 몇몇은 직접 조문을 왔지만, 대부분 근조화환을 보내오거나 온라인으로 부의를 표했다. 사정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로 조문을 가도 상주를 배려해 오랫동안 있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나 역시 부고를 접할 때마다 직접 문상을 갈지 고민한 적이 많았다. 직접 찾아가 문상할 정도로 가깝지 않다면, 화환이나 부의금으로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상을 치르면서, 부의금이나 화환도 물론 고마웠지만, 직접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네고 더 나아가 오랜 시간 곁을 지켜 준 사람들이 훨씬 더 고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물질적 도움을 넘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준 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많은 부의금이나 화려한 화환을 보내와도 직접 와준 이들의 존재감만큼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힘들고 슬픈 일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는 결국 그 사람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나 대신 혼자 온 조문객들의 말벗이 되어준 상사도 있었다. 그것도 이틀 연속으로, 상주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분의 배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반면 당연히 조문을 올 것이라 생각했던 지인이 오지 않았을 때 섭섭함도 작지 않았다. (물론 상중에는 정신이 없어 누가 왔다 갔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문자 한 통은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겼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내 평소 처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나도 내 편의와 편리를 위해 소중한 관계를 소홀히 한 적은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웠다. 상을 치르는 동안 모든 관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