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는 어느 아침이었다. 도로는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확성기 소리와 낯선 가사로 바뀐 노랫말이 어색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한때 익숙했을 멜로디도 상황이 달라지면 이렇게 불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씁쓸했다.
어쩌면 그 어색함은 노랫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무엇 하나 분명하게 붙잡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건너고 있다는 느낌.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내 삶 역시 저 노랫소리만큼이나 어딘가 맞지 않는 듯했다.
그날 아침 읽었던 에스겔서 7장에는 평강을 구해도 얻지 못하고, 환난에 환난이 더해지며, 지혜와 책략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죄악이 쌓인 시대를 향한 선언이었다. 그 말씀이 꼭 과거의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겨누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 경고는 시대를 향한 말이면서 동시에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몸에 좋은 약이 쓰듯이, 나를 바로 세우는 말은 대개 불편하다. 나 역시 조언을 구하면서도 이미 답을 정해두고 있었고, 결국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듣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경고가 더 아프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을까. 스스로는 억울해하면서도, 정작 내가 준 상처에는 둔감했던 것은 아닐까.
평강을 잃은 삶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소란스럽다.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작은 일에도 쉽게 날이 선다. 운전 중 끼어드는 차 한 대에도 무의식적으로 거친 말이 흘러나온다. 어차피 상대는 듣지도 못할텐데도 말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늘 비교했고, 더 앞서가려 했고, 더 많이 누리려 했다. 그러나 타인에게는 인색했다. 내 허물에는 관대하면서 남의 허물에는 엄격했다. 신앙을 말하면서도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변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자책의 끝에서 문득 한 작품이 떠올랐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이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자신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세상의 불행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불행이 결국 자기 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당당히 항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고백을 읽으며 나는 책을 덮지 못했다. 요조의 절망이 감정의 과잉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명할 수 없는 삶, 스스로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한 시간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을 지나왔다. 그래서 그의 독백은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 경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편 19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해 달라고, 숨은 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고의로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그 죄가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경고 뒤에는 언제나 돌아설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그동안 후회 없는 삶을 살지 못했다. 이제 와 완벽을 말할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지금부터 노력한다면,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일상에서부터 태도를 고쳐보려는 시도, 내 말 한마디를 돌아보는 습관,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를 먼저 비추어 보는 연습. 거창하지 않지만 그런 되돌아봄을 통해 조금씩 나는 성장해 가고 있다.
앞으로도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자책에 머무르지 않고 경고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더 정직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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