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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

by 서영수

2월이 훌쩍 지나갔다. 며칠 있으면 3월이다. 세월이 빠르다고 말하는 건 이제는 너무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 시간 앞에서 모든 인간이 무력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삶이 늘 무언가에 쫓기듯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까. 하루에도 수많은 소식이 밀려오고, 놀랄 일들이 이어진다. 우리는 밀려오는 뉴스를 따라가느라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느낄 틈조차 놓치곤 한다.


불안은 언제나 전염성이 강하다. 사회적 위기이든 개인의 문제이든, 좋지 않은 소식은 빠르게 번지고 마음을 잠식한다. 화면 속 숫자와 속보에 시선을 빼앗긴 채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정작 내가 감당해야 할 하루의 몫은 뒷전이 되기 쉽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까지 끌어안고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고, 몸과 마음을 돌보고, 가까운 사람을 챙기며 하루의 리듬을 지키는 일. 거창하지 않지만 이런 반복이 삶을 지탱한다.


바깥이 소란스러울수록 내면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서두름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과도한 걱정은 마음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문태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절을 찾아가는 것은 어떤 큰 것을 얻으려는 목적에 있지는 않았다. 다만 내 삶의 속도를 잠깐 돌아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었다. 삶을 다소 느릿하게 살면 그만큼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삶의 속도를 ‘잠깐 돌아본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늘 앞으로 가는 일에만 익숙하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앞서기 위해 애쓴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산다. 속도를 늦추는 일은 뒤처짐이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선택이다.


꼭 절을 찾아가지 않아도 좋다. 동네를 천천히 걸어도 된다. 익숙한 골목을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다 보면,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 담장 위로 넘어온 나뭇가지, 무심히 열려 있는 창문 너머의 불빛.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내 속도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달려오느라 놓쳐왔던 장면들이다.


아름다움은 멀리 있지 않다. 대단한 성취의 순간에만 깃드는 것도 아니다. 잠시 멈추어 설 때, 숨을 고를 때,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삶을 느릿하게 살면 그만큼 넓은 시야를 얻는다는 말은, 결국 세상을 더 많이 소유하라는 뜻이 아니라 더 깊이 바라보라는 권유일 것이다.


계절은 여전히 제 속도로 흐른다. 내가 조금 늦춘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오늘 하루만이라도 속도를 늦춰 본다. 그러다 보면 놓치고 있던 삶의 결이 조용히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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