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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회복지사입니다만?

문학소년에서 예비 사회복지사로, 울면서 다짐하다(3)

이번주만 지나면 9월이다.

날씨는 지금처럼 습하고 더울 듯 해.


그래도 가을과 겨울은 분명 올테니까. 선선해지리라는 믿음으로 하반기를 기쁘게 맞이하려 한다. 어떤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 기대반, 걱정반이지만. 그래도 브런치에 매주 습작 올리는 건 멈추지 않을테야. 보기보다 꽤 손이 많이 가 이거. 그래서 매일같이 올리는 이름모를 작가들을 존경한다 진심으로.




어색하지만, 그런대로


어르신과 나는 잘 지내고 있었다. 영화 '배트맨과 로빈'처럼은 아니지만 '집으로'처럼의 관계는 나름 되어가고 있는 듯 해. 유대감이라는게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님을 잘 아니까. 섣부르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이 침묵을 견디지도 않았다.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치고 빠지는 전술을 이용했지.


그런 나의 노력을 어르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동안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날씨 이야기를 꺼내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든 내게 돌아오는 건 박스 저리 갔다 놓으라는 이야기였다. 머쓱한 채로 집어 든 채 천천히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는 우리. 기묘한 야행(夜行)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르신은 나보다 수단이 많으셨다. 자기 몸보다 큰 리어카를 끌고 올 때도, 어떨 때는 낡은 유모차를 가져오실 때도 있었기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최대한 수용량이 많은 도구 중심으로 반복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느릿느릿 걷는대도 거의 쉬지 않고 동네어귀를 순찰(?)하는 어르신. 한편으로는 체력도 그렇고 의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참, 직접 폐지를 수거해보니 나름 정보나 지식도 생겼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폐지에도 급이 있다. 근데 사실 고물상에는 무게로 값을 쳐주기에 가장 좋은 건 고철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가정집들에서 고철을 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버리더라도 동주민센터에서 발급하는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니 건들 수도 없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매물이 많고 수집하기도 용이한 폐지에 어르신들이 많이 몰린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책"이나 "잡지" 등 무게가 상대적으로 나가는 것들. 최우선 선호품인 만큼 이것도 빨리 발품 팔지 않음 누가 벌써 채간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과거에는 집에서 폐지를 모아 고정적으로 주는 곳도 있었다고. 우리 집이 그러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가정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의외로 그 빈자리를 대체한 게 바로 "박스"들.

택배가 일상화된 점도 있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풍조로 점차 바뀌면서 처치 곤란한 박스들이 생각보다 나오데? 동네마다 몇 개 안 되는 재활용 자원을 갖고 고군분투하는 게 바로 이들이다. 층층이 쌓아도 고물상에 갖다주면 "몇 천원 ~ 몇 만원"도 채 안된다. 오히려 조건이 부합된다면 노인 일자리 사업이나 공공근로가 훨씬 낫겠다는 판단이 들더라.

근데 나중에 자활복지 관련 조금 공부해보니 이것도 경쟁이 치열하더만. 조건도 조건이지만 꽤 까다롭다. 저들이 폐지나 고철을 줍고 싶어 줍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르지도 않을테고. 제아무리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또 개선하려해도 대상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배제되는 분들이 상당하다.

2. 시간대마다 수집하는 내용물이 다르다. 오전은 드물고 보통 활동량이 많은 오후나 늦은 밤이 되면 전봇대나 쓰레기 분리수거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분들이 보인다. 또 평일, 주말 가리지 않는다. 날씨의 경우 꽤 많이 영향을 받는데, 당연히 비나 눈 내리는 날은 강제휴업이다. 그나마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 혹은 가을이 확실히 움직이기 편해서일까. 출현빈도가 체감상 높은 것 같다.

3. 연령대도 그렇다. 편견일 수 있겠으나 한때 60~70대 어르신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점차 50대, 아주 드물게 30대로 보이는 분들도 지나가다 마주친 적이 있다. 사실 폐지나 고철을 수집하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그럼에도 물가가 계속 올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되는 시기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젊은 내게도 의미하는 바가 컸다.

4. 마지막으로 마개조된 도구들이다. 기본 세팅은 "리어카", "유모차"부터 시작하여 뒤에 미니 리어카를 연결한 3륜 오토바이, 자전거처럼 사륜으로 개조하여 운전할 수 있는 리어카. 유모차 형태인건 맞는데 전동 스쿠처럼 앉아서 끌도록 개조된 명명하기 어려운 뭐..그런 물건들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과연 도로교통법에 위반되지는 않나'라는 의구심과 걱정이 들긴 하나 구체적인건 찾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따로 개월 수를 세진 않았다. 그럼에도 어르신과 나와 관계맺고 조금씩 소통하며 지낸 건 1년도 채 안 된 듯 하다. 어느순간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어르신을 다시금 추억하며 마지막으로 만났던, 꼬깃꼬깃한 쌈짓돈 1,000원을 건네받은 그 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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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년에서 예비 사회복지사로, 울면서 다짐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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