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년에서 예비 사회복지사로, 울면서 다짐하다(4)
1주일에 하나씩 올리니까 30화면 벌써 반년은 넘었다 그치?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는 내 의지에 감탄해. 그것도 한 권이 아닌 세 권이나 30화를 넘겼으니까.
좀 버겁긴한데 명확한 목적이 있으니 브런치북 수상 여부를 떠나 계속 연재할거야.
그럼 언젠간 알아주겠지, 조명받겠지.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똑같았다. 어르신을 만나 폐지나 박스 줍는 거 도와드린 뒤 인사하고 집으로 가는 루틴이었거든. 30분도 안 돼. 그런데 어르신이 내게 무언가를 주었다는 게 달랐다면 달랐을까?
"학생, 잠깐만"
먼저 말을 거신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기껏해야 키는 몇 이냐, 어디 살고 무슨 학교 다니냐 이 정도였다. 깊이 있는 이야기는 잘 안 하려 하셨기에 나도 어르신에게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다. 궁금은 했다. 어디서 사시고 가족관계는 어떠하며 왜 폐지나 박스를 주우시는 지. 근데 내가 어르신이라면 그런 질문들이 자칫 무례하게 느껴지거나 부담될 것 같더라. 그러니 서로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는 상태였어.
그렇기에 어르신이 날 불러 세운 건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긴장됐지. 혹시 뭐 잘못했나 싶어서. 아니면 '이제서야 마음을 좀 더 여시고 나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려나?'하는 일말의 기대감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두 예측 모두 빗나갔다. 한참을 바짓주머니를 뒤지시더니 나에게 건네시는 꼬깃꼬깃한 천 원.
당황했다. 그리고 받을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지. '왜 주시려는 걸까'부터 '어르신도 형편이 어려우신데 어떤 의도에서?'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거든. 정중히 거절했다. 받을 수 없다고, 돌려드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랬더니
"얼른 받어. 공부하는데 배고프잖아. 빵이라도 사 먹어. 많이 못 줘서 미안해"
벙쪘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어르신을 도와드린 게 아니다. 그런데 많이 못 줘서 미안해라니. 더구나 본인도 하루 끼니 떼우기 어려울텐데 나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다니.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하면 저 어르신이 폐지를 줍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든 마음. 사회복지는 커녕, 자원봉사 경험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던 내게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돌이켜봐도 신기하다. 한 두차례 더 거절의 실랑이(?)을 벌이다 끝내 어르신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천 원, 2024년 현재도 가지고 있다.
이후 어르신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일부러 새벽까지 기다리거나 전봇대 주변을 서성이진 않았다. '곧 나타나시겠지'하는 막연한 기다림으로 내 삶에 충실했었지. 그런데 보이지 않으셨다. '설마?'하며 잠깐이지만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접었다. 분명 다른 곳에서 뭘 하시든 건강하게 계시겠지라는 믿음이 내 불안한 마음을 채웠다.
위의 사례가 내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된 계기 중 하나긴 하다. 큰 지분을 차지함에도 결정적인 건 사실 다른 쪽에 있었지. 어르신과의 만남 이후 벌어진 일이었어. 어느 대학,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하는 시기에 눈물의 다짐을 하게 될 줄이야.
문학소년에서 예비 사회복지사로, 울면서 다짐하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