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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이제 갑질 좀 해도 될까요"

#12. 늦은저녁

식사를 한다. 퇴근 때 사왔던 주전부리들과 술 대신 자주 먹는 콜라를 함께 곁들여 조촐하게 먹는다. 

그렇게 깽판을 쳐댔으니 배가 고프지. 언제 그랬냐는 듯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배가 부르고 나니 어지럽혀진 방안이 차츰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아, 이걸 또 언제 치우나. 귀찮다. 그래도 치워야겠지. 


주섬주섬 쓰레기들을 치운다.


 쓰레기들 중엔 나의 울분의 첫 번째 희생양인 옷장의 살점과 텔레비전의 뼈 조각들이 포함되어있다. 

분노의 뮬니르는 고이 책상 위로 모셔 놓았다.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한 쪽으로 대강 치운다.

 정리정돈 한지 30분이 지나자 그럭저럭 깨끗해졌다. 


“후, 씻자.”


화장실로 들어간다. 약간 후덥지근한 방안에 비해 으스스하게 서늘하다. 오늘따라 더 심하다. 


누군가 날 쳐다보는 것 같다. 불안한 마음에 거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얼굴은 눈물범벅에 입가엔 미처 닦아 내지 못한 콜라거품과 부스러기들, 잡아 뜯겨져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흡혈귀처럼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 


“훗.”


빙긋 웃어본다는 게 자꾸 한 쪽으로 입고리가 쳐 올라가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두 손바닥을 물에 젖서 살포시 얼굴에 갖다 댄다. 차갑다. 정신이 번쩍 든다. 


기계적으로 행동을 반복한다. 샤워기를 튼다.

약간은 미지근한 물줄기가 내 가슴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린다. 




가만히 서서 그 느낌을 몸으로 느낀다. 편안하다. 

화가 나고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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