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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분노거래소"

18 - R12: 비밀, 단서들, 분노거래소

『어둡고 캄캄한 터널에서 몇 줄기 빛이 보이는 그 느낌. 실체를 알아 가면 알아갈 수록 더 멀리 날아가는 단서들. 머리가 복잡하다.』




“이것이‥”

“보시는 대로 맞습니다. 분노 거래소가 생기고 사라졌던 원인들이죠.”


의문의 여자가 남긴 자료들. 그녀의 일기장. 피 묻은 검은색 카드. 거래증서.
그리고 분노를 거래하였던 사람들의 최후가 기록된 K의 노트.


“분노거래소는 엄연히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러게 믿고 있는 것 뿐이지요. 방금 전의 당신처럼. 한 때 저도 사는 게 너무 괴롭고 힘들어 그곳을 방문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호기심도 들었습니다. 과연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사고 팔수가 있을까. 남의 감정이 내 것이 된다는 게 가능할까. 무엇으로? 과학기술로 아니면 심리치료로? 의문점이 많이 들었죠.”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그의 모습에서 J는 왠지 젊은 시절의 미스터 마가 자꾸 겹쳐 보인다. 딱딱 끊어지는 말투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무엇보다 말 속에 담겨져 있는 날카로운 면도칼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 불편함을 준다. 커피를 마시던 그가 자신의 노트북을 열어 오래된 기사 하나를 J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엽기적인 일가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타이틀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바로 분노거래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죠. 줄쳐진 곳을 보시면 가해자는 사형, 미스터 마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죠. 그의 딸은 지방의 한 고아원으로 보내어 몇 년을 지내다 한 재력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것이 세간에 알려져 있는 위 사건의 결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죠?”

“분노를 거래하던 사람들입니다. 제 노트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사건 이후로 분노를 거래하였던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큰 상해를 입게 됩니다. 아주 『우연한 실수나 사고』로 인해서 말이죠.”

“설마 미스터마가 아닌 다른 제3의 인물이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저도 그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누군지를 찾기 어렵더군요. 수사기록에 의하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중 생존자는 5명 중 3명뿐이었거든요. 이제는 2명이지만.”

“계속 들어볼게요.”

“분노거래소가 정확히 언제 세워졌고 또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이용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어렵사리 충격적인 정보를 소식통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 전에, 하나 약속해주시죠. 듣게 된 이후 당신 또한 제 일에 협조를 해주셔야합니다.”


역시 무언가가 있었군. 들어나 보자.


“그리 어려운건 아닙니다. 당신에게도 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되지는 않거든요.”

“얘기하세요.”

“분노 거래소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무엇으로?


“다시 그를 법정에 세워 영원히 사회로 나올 수 없도록 감옥에서 매장시켜야합니다. 분노거래소와 관련된 정보나 자료들은 윗분들‥아니 전부 폐기시켜버리고요. 그가 출소하고 나서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을 더 이상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또 모르잖아요. 거래한 나나 당신이나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그를 신고한다거나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은 자주 들었기는 하지만 분노거래소 자체를 없앤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딱히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첫 거래여서 그런지 신경을 쓰지 않은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고 자료를 살펴보니 심히 동요된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힘을 빌려 주시겠다 이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존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상식』 안에서는”

“상식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소멸시켜야 합니다. 이유 따위는 없어도 말이죠. 좋아요. 그럼 나도 당신에게 선물을 드리지요. 소식통이 전한 정보에 의하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미스터 마의 아내는 놀랍게도 살아있었습니다.”


말도 안 돼. 복부에 피가 철철 흘렀다고 여기 기록되어있지 않은가.


“저도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 못 했습니다. 복부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그것도 구조대가 나타나기 전 사라졌다는 말은 기어 나갔다거나 뛰어 나갔다거나 숨어있다 빠져나왔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의 힘으로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거나. 이 중 하나겠지요. 아무래도 그녀가 자기 딸과 남편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거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지금까지? 뒤에 무언가 더 있다는 건가.


“참고로 분노거래소는 원래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정신병원이었다고 합니다. 원장은 당연히 심리학과 교수였던 그녀가. 조수는 그녀의 남편인 미스터 마죠. 하지만 위치도 위치거니와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당연히 입소하는 사람도 없으니 운영이 힘들어 졌을 겁니다. 분노거래소로 명칭이 바뀐 것도 처음에는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한 일종의 홍보수단이었을 겁니다.”


왜 분노거래소로 이름을 지었을까. 정말로 홍보를 위해서였을까. 잠깐‥


-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분노를 제대로 없애는 방법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아니면 나약하고 병든 자신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원동력을 찾고 있다면? 거래하자. 전자에게는 분노해소를, 후자에게는 변화계기를 제공해주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자. -


“J씨. J씨. 제 얘기를 듣고 있긴 합니까?”

“…알겠습니다.”

“뭐를요.”

“분노거래소라고 명칭을 바꾼 이유를요”

“그게 무엇입니까?”

“모든 정신병은 인간의 감정 중 『분노』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분노를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풀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우울증이나 조울증, 심지어 싸이코패스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지죠. 


적절하게 분출하는 스트레스나 분노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이롭다고들 흔히 말하잖아요. 그런데 마음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그러한 분노들을 표출하지 않으면 결국 사람은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미스터 마도 아마 그러한 맥락에서부터 시작한 듯 보입니다. 그가 말하길…”


<J는 K에게 자신이 상담을 받았을 때 미스터 마가 해주었던 분노거래소의 존재이유를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렇단 말이죠?”

“네. 당신이 말한 분노거래소가 원래는 정신병원이었다면, 설립목적 또한 이에 연관되어 있는 건 당연하겠죠. 궁극적으로 자신의 치료이상론을 시험해보기 위한 마루타들을 끌어 모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역시 부르길 잘했어. 그녀가 가진 치료이상론을 펼치기 위해 분노거래소를 설립했다는 가설, 신빙성이 갑니다. 분노를 활용하여 사람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본능적 욕구를 일깨워주는 치료…오묘하군요.”

“확실히 그녀가 살아 있다면 어딘가에서 이와 비슷한 행위를 또 다시 저지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이미 분노거래소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K씨. 당신은 누구에게 분노를 거래했습니까. 또 어떻게 이런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물어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알려줄 때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대신 이것만은 확실히 답변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다시 이곳 앞에서 보지요. 같이 갈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 모든 걸 알려 드릴 것이니 오늘은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허세부리기는.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걸로 만족해야하나. 

내일 그곳으로 가봐야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좋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먼저 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생각 할 게 있어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J의 표정이 어둡다. 고민이 많은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몽블랑을 나선다.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그의 모습을 K는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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