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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Jan 29. 2021

해파리와 모차르트의 공통점

은 바로, 바로~. 그 정체를 잠시 후 2부에서 공개하겠습니다.

“아빠, 이리 와 봐요~.”

첫째가 부른다. 아까 전까지 세 아이에게 시달리다 간신히 소파에 몸을 던진 아빠였다. 

아빠는 못 들은 척. 


“아빠, 빨리~.”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아빠는 계속 못 들은 척 속으로 투덜거린다.

- 드러누운 지 10초도 안 지났거든!     


“아빠, 이리 와봐, 나랑 여기 좀 가자~!”

첫째가 거실로 달려 나와 아빠 손을 붙잡고 흔든다. 아빠의 표정에는 귀찮음만 가득하다.

- 아빠 좀 내버려 둬라. 제발.


정색한 채, ‘안 가, 귀찮아, 혼자 놀아, 좀!’, 하고 버럭하고 싶었지만, 아빠는 꾹 참는다. 

얼마 전 금쪽이가 나오는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했던 얘기들이 대뇌피질을 스쳤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말라고 했다.      


자, 심호흡.

아빠는 양반다리를 한 채 ‘이너 피스(Inner Peace), 이너 피스.’라고 중얼거리며 마음을 순화한다. 

그리고 첫째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향했다. 몸은 첫째랑, 영혼은 여전히 소파에 누워있는, 그런 기묘한 느낌을 받으며 좀비처럼 걷는다. 느릿느릿 말한다. “랑아, 왜~, 왜~.”

     

“아이, 빨리 와~ 봐~.”

잔뜩 기대감에 부푼 첫째의 목소리와 함께 부녀가 도착한 곳은 아빠의 책상이었다. 그 위에 무언가가 알록달록 그려진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아빠! 짠! 이게 뭐게?”

맞춰보라고 아빠에게 종이를 들이댄다. 

그림 속에는 여러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작은 얼굴이 다섯, 큰 바위 얼굴 하나, 아빠 이름이랑 첫째 이름, 그 옆에 하트 뿅뿅 셋. 

일관성은 없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그림임은 분명하다.      

바로 이 그림이다.


“아빠, 이게 누군지 맞춰 봐요~.”

첫째가 작은 얼굴들을 가리킨다.

“요건 엄마, 요건 랑이, 요건 람이, 요건 솔이, 요건……, 설마 아빠?”

조그만 입으로 귀엽게, “딩, 동, 댕!” 외친다. 

아니, 그런데 아빠는 인정할 수 없다. 이건 아니다. 아닌 것은 분명히 가르쳐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


“랑아, 이게 아빠라고? 아빠 머리가 왜 이래? 아빠 얼굴을 왜 뒤집힌 해파리처럼 그려놨어?”

첫째가 아빠의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왜, 아빠, 대머리잖아. 여기, 여기 앞이 훤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그린 거야.”

손으로 이마 부분을 반복해서 쓸어내리는 첫째를 보며 아빠는 절규한다.

- 아직 완전한 대머리는 아니거든!!!!!!

라고 강력하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린아이에게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 포기한다. 

그래도 칭찬해 줘야지. “그래, 참 자알 그렸네, 에휴.”, 한숨은 덤이다.     


칭찬받아 득의양양한 첫째는 다시 그림 속에 모차르트 비슷한 큰 바위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누구게?”

- 설마 이것도 나?

“음... 아빠?”

조그만 입으로 귀엽게, “딩, 동, 댕!” 외친다.

이 얼굴의 머리카락은 왜 해바라기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냐는 말에 첫째는 아빠의 얼마 없는 머리카락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서 있는 게 생각났댄다.

- 그래도, 이 정도는 양호하네. 아까 해파리보다는 낫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정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해파리나 모차르트나 둘 다 거절하고 싶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첫째가 아빠를 평소에 잘 관찰하여 그린 것에 따뜻함도 느꼈으니, 이만하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겠다.     


정신 승리한 아빠는 첫째를 힘껏 안았다.

첫째가 안긴 채로 아빠 품에 착 달라붙는다. 

안겨 있는 첫째의 귀에 아빠는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속삭인다.

“랑아, 그래도 아빠 아직 대머리 아니야. 아.니.라.고. 알았지?”

첫째가 흠칫한 것은, 기분 탓일까?




어린이집에서 금연 예방 교육을 받고 집에 와서 기억나는 대로 그린 첫째의 작품. 이렇게 실력이 좋아지다 보면 언젠가 아빠를 해파리나 모차르트가 아니게끔 그려 줄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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