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불량

시작하는 두려움

by 오월

열아홉. 첫 근무를 시작할 때 두려움으로 시작했다.

누군가는 '콜센터 근무는 악성민원 빼면 할 만하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할 만한' 업무는 아니었다. 계속 쏟아지는 수많은 정책과 자료, 꼬박꼬박 아침 조회 시간에 교육이 이어졌다. 나름 이해를 하기 위해 밑줄도 긋고 노력했지만 나에게 어려운 내용들이 가득했다.


나는 콜센터 업무와 맞지 않구나


누군가는 하대하는 직업군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경험해 본 입장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횡설수설 늘어놓는 고객의 말에서 핵심만 찾아내서 빠르게 업무처리를 해주는 능력은 아쉽게도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사이도 썩 좋지 않은 데다 업무 숙지도 잘 되지 않아 퇴사를 하고 약국에 입사하게 되었다.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누군가 쉽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 귀를 흘려들었다. 내가 그 입장에서 일을 해보지 않았기에 누군가 그냥 툭 내뱉는, “그거 쉽잖아? 딱 봐도 쉬워 보이더만~” 하는 말은 무시했다.

처음 업무 자료를 받았을 때 사소한 것들도 받아 적어 모니터 옆쪽, 책상, 벽면에 빼곡히 붙여두었다. 익숙해지면 메모지를 뜯어내고, 다시 잊어버리면 또다시 메모지를 붙였다. 오죽하면 그만 좀 적으라는 핀잔을 할 때에도 꿋꿋하게 메모를 했다.

나름 반복학습을 통해서 빠르게 업무 숙지를 할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 좀 적어라'던 동료분들의 핀잔이 이해도 되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적지 않아도 익숙해질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업장 분위기 상 매번 반복해서 질문할 수 없기에 당시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은 '메모' 뿐이었다.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처방전을 수기로 입력했다.

아차, 하는 순간 금액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비급여 항목인데 급여처리를 잘못하는 경우도 발생했고, 연고나 물약이 1g 단위로 이루어져 총량으로 계산해야 하는데 깜빡하고 계산을 놓쳐 잘못 처리하는 일도 있었다. 업무의 강도가 높았던 만큼 접수할 때부터 처방전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후 바코드 방식이 도입되니 그러한 실수는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고, 과거 나처럼 메모할 필요는 딱히 없었다.


나도 꼰대는 꼰대인가, 신입을 교육할 때 짜증 나는 순간이 있었다.

예전에 비해 업무가 쉬워졌는데 어째서? 동일한 내용을 몇 번을 알려줘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외용제가 무엇인지를 여러 번 알려주었고, 해당 약품은 개수로 투약되는 부분이라 횟수 무시하고 총량만 입력해 주면 된다고 수차례 이야기 했음에도 동일한 질문을 10번 이상 반복이 되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모르면 메모를 하는 태도라도 보여야 하는데 배우려는 태도 없이 '이거 맞아요?' 질문하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교육하는 내내 나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화만 내는 상사의 모습과 닮아져 싫었다.


“쌤, 왜 계속 물어보면서 메모를 안 해요?”

나는 그토록 내가 싫어했던 상사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먼저 입사해서 일한다는 이유 하나로 신입을 박박 긁었다. 혐오하던 직장 상사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닮아있다는 사실에 신입에게 더욱 날 선 말이 튀어나갔다.

분노하는 동시에 미안했다. 그럼에도 한번 내뱉어진 날 선 언어는 그칠 줄 몰랐다.


이후로도 수많은 신입들이 왔고, 약대 실습생도 왔다. 비교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들의 태도를 보고 이전 사람과 비교를 했다.

전에 왔던 실습생은 먼저 나서서 배우려고 열심히 질문하고 움직였는데 이번 실습생들은 의욕이 없네? 아니, 처방전 정리 업무 시작 전 다 끝나는 걸 무슨 3시간이나 걸려? 골무 사용법까지 알려줘야 해?;

사람이기에 비교를 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 또 한편으로는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배우려는 태도가 아니었다고.

나는 열심히 한답시고 일했는데 혹시 나의 모습도 저랬을까? 처음 시작은 언제나 두렵다. 처음 시작하는 업무도, 사람도 모든 것이 두렵다. 두려움을 대했던 나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퇴사했음에도 나를 여러 번 부르는 건, 적어도 나의 태도가 꽤 괜찮았다는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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