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

by 오월


혹시, 임종을 앞둔 사람의 낯빛을 아시나요?


죽음.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공포심을 느낀다.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는 종교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믿는 편이지만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 모두 존중한다.

우리가 죽음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어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먼저 가는 데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식 속에 죽음은 멀리 있는 것으로 여긴다.

내가 선택하는 죽음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노년층의 죽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연세는 많지만 아직 정정하신 외할머니, 환갑을 넘기지 않은 엄마, 최근에는 나이가 많다 할지라도 다들 젊게 지내서 그런지 나이와 얼굴이 매치가 안되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처음 약국에 입사했던 스무 살, 꼬박꼬박 방문하셨던 환자분이 계셨다.

꾸준히 방문해 처방전으로 받아야 했지만 오실 때마다 밝은 표정으로 들어와서 직원분들과 이야기하시고, 수고가 많다며 박카스를 구매해 돌리시곤 하셨다. 아프다며 직원들에게 성질을 내는 환자분들과 다른 행보에 직원들 모두 그 환자분을 좋아했다.(미리 말하지만, 절대 간식 때문이 아니다.)

단골이셨던 환자분은 지팡이 없이 두 발로 잘 걸어 다니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셨다.

살이 오르셨던 뺨도 점점 빠지고, 낯빛도 점점 새까맣게 변했다.


새까맣게 변했다는 것이 여름에 피부가 타서 그을리는 수준을 생각하면 안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그분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서 오세... 요....."

언제나 밝게 웃으셨던 인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살이 쪽 빠진 몸, 살이 빠지니 눈만 툭 튀어나와 보였다. 얼굴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푸석한 피부와 움푹 파인 눈두덩이가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팀 버튼의 '유령신부'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 같았다. 피부가 창백하지 않고 새까맣게 변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뭐랄까, 죽음이라는 존재가 뒤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난생처음 보는 죽음의 형태에 공포를 느꼈다.


"전에 자주 오시던 분 기억나? 매번 박카스 사주시고"

주임님들이 이약기를 나누셨다.


그분 결국 돌아가셨대


죽음의 색을 처음 보았다. 누군가의 죽음 소식이 자주 들려올 나이는 아니지만, 죽음 이후의 잘 정돈된 모습과 죽기 직전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이후에도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영아, 그때 그 어르신 기억나? 몸에 힘도 없으시고 그랬잖아"

노인일자리 청소를 마치신 후 의자에 앉아서 잠깐 눈을 붙이신 어르신은 마치 숨을 쉬지 않는 듯, 고요히 잠들어계셨다. 아무리 불러 깨워도....

실례되는 말이었지만 이후 있어진 소식들을 듣고 '저 어르신, 곧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일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죽음은 막연하고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두렵다.

사후세계가 존재할까, 죽으면 다 끝날까? 남겨질 이들도 생각이 난다.

죽음을 늦춰주는 문턱에, 나는 거기 있었다.


생과 사.

뭔가 생은 단순하다. 단순히 목숨이 붙어있는 상태이기만 한 것 같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생이나 삶이나 같은 의미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삶은 생에 비해 느껴지는 무게감이 다르다.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그 모든 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잘 살아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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