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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유나 Jul 17. 2023

1억 인생 전환점

영글 | 영국유학, 그리고 5년 후 2023년

2018년 1월, 1억이 모였다. 학자금 대출과 전세 대출 일체를 상환한 순수 저금액이었다. 경제적 자립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달려온 20대가 끝날 때였다. 그제서야 애증의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늦었다는 두려움이 없었다. 지난 10여년 노동으로 떳떳하게 벌어온 돈의 과정과 결과가 왜 이제서야 공부를 시작하는지 모든 이유를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열아홉살 수능 이전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통틀어 시간을 아무리 거슬러 돌아봐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공부는 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앞으로 내 인생에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문이과로 나뉠 때나 대입 원서를 쓸 때 그 당시 나의 모든 결정의 기준은 덜 하기 싫은 쪽이었다. 그렇게 선택을 이어가며 적당한 성적에 맞춰 적당히 졸업해도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를 모르면서도 공부는 따라 하던 삶의 습관은 대학까지 지속되어 최소한의 학점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무섭도록 유지시켜줬다.


공부 그 다음 삶의 순서는 자연스럽게 돈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돈을 버는게 우선이라고 믿었다; 1억이면 되지 않을까. 그만한 돈이면 풀타임 직장인에서 풀타임 학생으로 신분전환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해외 취업이나 이민을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았다. 2018년 1월 퇴사 다음날부터 주5일 영어 수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정말 5년이나 영국에 살 각오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직장 생활 1-2년 쉰다고 문제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쉬고나면 3n살인데 여차하면 신입사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대도 괜찮았다. 어린 나이 부족한 내공으로 진급하면서 씁쓸한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큰 역량을 가져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렇다면 쉬고 나서 다시 사회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최고 가치가 영어와 글로벌 경험 두가지라고 판단했다.


"유학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나서 필요한 걸 살펴보니 졸업 학점이 간신히 최소 기준에 맞았다. 결과적으로 옛날 어른들의 말이 옳았다. 그 성적을 맞춰놓지 않았다면 늦은 유학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 몇 년을 더 사용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준비된 돈이 있어 학비와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 성적과 준비된 돈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 중 영국으로 출국일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었다. 9개월 기숙사를 결재하고 실전 영어를 영국식으로 준비해야 한다며 온갖 법썩을 떠든 끝에 2018년 9월, 멘체스터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2023년. 지난 5년동안의 결과로 석사 졸업장을 얻었고 직장 생활을 할 만큼 영어 실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파운드 효도를 할 수 있을만큼 다시 자립적 경제 생활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학부과정 4년을 통해 평범하다고 믿었던 삶이 사실은 평범 이상의 혜택이었다는 걸 배웠다. 부모님 집에서 근처 국립대로 통학하던 나는 동기들을 통해서 훨씬 더 나은 수능 성적을 받고도 전액장학금을 선택하는 경우의 수를 배웠고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경우의 수를 배웠다. 부모님의 신용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먹고 사는 생활비를 스스로 벌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가 얼마나 평범 이상인지 알게 되었다.


영국에서 2021년 11월 석사 학위가 확정되기까지 4년동안 나는 대한민국에서 삶이 평범 이상의 혜택이었다는 걸 배웠다. 대중교통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일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배웠고 의료 기관과 법률 자문에 접근이 당연하도록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배웠다. 걷기 귀찮다며 한 정거장 거리 지하철을 타면서 인터넷 연결이 끊이지 않는 사회 인프라가 얼마나 평범 이상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 나의 영국행 계기가 되었던 유학과 관련해, 전 국민 수험생의 80%가 대학을 가는 한국인의 교육열은 2022년 18세의 37.5%만이 대학을 가는 영국인에게 얼마나 사치스럽게 보이는지를 배우고 놀랐다.




영국 유학비용은 모든 사람이 부담을 느낄만큼 충분히 비싸다. 그런데 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 전세 제도가 있어 영국 대학 학비만큼 큰 규모의 돈 거래를 하는게 보편화 되어있고, 그로인해 사람들이 기회 비용 가치를 따지는 걸 자연스럽게 한다. 영국에서 2만 파운드는 평범한 개인의 1년치 생활비에 맞먹는 아주 아주 큰 금액이다. 졸업해서 당장 구직 활동을 해보면 안다. 무경력 졸업생이 연봉 27k job을 구하면 괜찮게 본다. 런던에서 30k 이하를 번다는건 내 삶의 질에 중요한 부분을 타협해야 하거나 가족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인걸 - 내 경험은 그렇다.


물론 내국인 등록금은 절반에 해당하지만 애초부터 대학 자체를 감당할 수 없는 비싼 일로 여겨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도 많다. 회사 사람들을 봐도 졸업 후 10년째 학자금 대출 분활 상환 플랜에 있을 정도로 학위 비용을 크게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학자금 대출로 학업 기간 생활비 보조까지(가족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대출) 받다가 취업 후 일정 소득이 생긴 순간부터 급여에서 대출금이 일정% 상환이 이뤄진다. 소득이 없으면 학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학위에 그만한 돈을 쓸 가치가 있나"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사회에서 나는 3n년 평생 처음으로 내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왜 정규과정을 통해 "공부를 학교에서 해야 하나" 의문을 처음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오던 생활 혜택이 사라진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만큼,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하던 근원적 가치관들에 질문받으며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억으로 인생을 바꾼게 아닌가." 결론에 다다랐다. 지금의 나는 5년 전과 절대 같지 않다. 그야말로 모든 사고 방식이 다시 정립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있다. 부모님은 속상해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만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고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낸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하거나 해외생활을 했더라도 지금 같은 내면의 성장을 이뤄냈을까 생각하면, 나는 아닐 것 같다. 영국의 고등교육 체계로 인해서, 정규 시스템 안에 제공된 사회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떤 부분이 현재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비교하는 일은 부끄럽다. 현재의 기준에서 말도 안되는 생각을 일일이 적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2023년의 시선으로 나의 영국 유학은 이러했다고 다시 쓴다.



To be continued...

글과 사진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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