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니 vs 날씨 스몰토크
영글 | 영국 사람들의 관계성
주제가 정해져 있다고 느꼈다. 어지간히 왠만큼 매일 보는 사이가 아닌 이상 ...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대화 본론에 앞서 간편한 내용을 주고 받는게 보편적이다.
한국에서 주로 통용되는 인삿말은 밥을 먹었는지 커피나 음료가 필요한지와 같은 안부 인사다. 주로 상대방의 지금 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보는 말들이다.
https://youtu.be/RlJr89hUnUM영국에서는 오늘 날씨가 어떠한지 대중교통 상황과 같은 사회 상황에 대한 말들을 먼저하는 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한국과 영국에서 각각 찾는 주제들이 서로 교차되는 상황이 드물다.
생각컨데 한국에서는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말하다 문제될까봐 개인의 오늘 하루가 편안한지를 주로 찾는 것 같고, 영국에서는 반대로 개인의 사생활 영역으로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피하려다 지겨울만큼 진부한 소재들을 반복하는 것 같다. 그러니 한국에서 나의 스몰토크는 밥을 먹었으면 무엇을 먹었는지와 같은 꼬리 질문을 이어가다 적당한 깊이에서 더 내려가지 않고 질문을 멈추고 닫는 방식이 예의라고 여겨졌다. 반면 영국에서 나의 스몰토크는 오늘 날씨를 보니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 같지 않나 하다가 그래도 더운 것보단 추운 날씨가 낫다는 것 같다거나 여름 휴가를 계획하는게 있는지와 같은 사적 영역으로 경계가 넘어간다. 기차 파업이 이뤄지는 주간을 앞두고 있다면 이어지는 일정 조율을 해야 하는지 등으로 부연 정보들이 더 이어질 수 있게 질문을 점점 더 열어가는 방향이 예의라고 여겨진다.
한국에서의 안부 인사나 영국에서의 스몰 토크 두 가지 모두가 본질적으로 같은 역할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렇게 다르게 느낄까? 사람들의 관계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한국에서 나의 안부를 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통된 조직에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이라던지 학교에서 친구나 회사에사 동료들이라던지 ... 그래서 대개는 무리 안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같이 묶여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한동안 나의 모든 대화 상대가 처음 보는 사람들일 수 밖에 없었고 지나치게 다양한 배경 환경들로 인해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벗어났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영국에서 그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내가 한국 사회에서 경험한 관계들과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인종이나 국적을 뛰어넘어 성별 정의도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같은 나라에 태어났어도 어떻게 지금 나와 여기서 만나기까지 과정은 무척 다르다. 특히 영국에서는 결혼과 이혼 같은 가정사에 대한 개방 정도나 데이트 중인 상대를 파트너로 주변에 소개하는 범위가 크다.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인정하는 가족 관계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있다. 성인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고도 공식적 제도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이혼에 대한 인식 또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간주된다. 그러니 스몰 토크로 주말 잘 보냈는지와 같은 왠만큼 흔한 질문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이 (이혼한 부모의) 아빠 집에 다녀왔다거나 이혼한 이후 요즘 데이트 중인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냈다는 등 저마다 사정이 섞여서 나오게 되는 걸 보았다.
그러니 상대방 개인에 대한 것으로 질문을 이어가면 그동안 경험이나 훈련된 소셜 역량에 벗어나는 요구를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스몰 토크가 스트레스로 이어질 만큼 어렵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How are you? 질문에 좋다는 한 마디 이상 대답을 잇지 못하는 스스로를 답답하게 느꼈다. 그런데 가만히 남들을 관찰하니 비슷한 계열의, Are you alright? 같은 첫 질문들에 단어 하나 good 또는 not bad로 대답하는 경우가 왕왕 보였다. 그들도 때로는 꼬박꼬박 대답하지 않을 질문이고 심지어 지나쳐가면서 외마디 질문만 남기고 가는 경우도 흔하더라.
결국 영국의 스몰 토크에는 동시간대에 같은 곳에 있다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날씨, 사회 현상 주제들이 개인 안부 인사만큼이나 주요하게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적 여유 상황에 따라, 질문을 받은 당사자가 다음 주제를 무엇으로 가져가고 싶은지 원하는 만큼 이어 붙이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은 주요 목적으로 한 대화를 이어갈 상대방과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기능에 충실하면 되는 일인 것을 깨달았다. 특히 처음 보는 사이라면 적당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 분위기를 예열하는 스몰 토크가 필수다. 그 외에도 친밀한 정도에 따라 스몰 토크 내용의 깊이를 유연하게 잘 조절하는 것은 사회생활에 정말 유용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뒤이어 함께 해야 하는 일에 지장이 없게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스몰토크가 아닌가 싶다.
글과 사진 by 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