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그립다가 멈칫하는 순간

영글 | 영국의 다양성 존중

by 채유나

영국은 런던과 비런던 도시들 사이 발전 차이가 굉장히 크다. 지리적으로 주요 교통 거점에 해당하는, 맨체스터나 글래스고 같은, 몇몇 큰 도시들조차 런던권과 지방의 차이는 한국의 수도권 vs 비수도권 차이보다 불균형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인터넷 통신망은 런던에서조차 한국과 차이를 느끼기에 하물며 지방 도시들은 인프라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길거리는 당연하고 거주 지역에 따라 실내 안에서도 인터넷 연결이 좋지않을 때가 있다. 컴퓨터의 가정 보급률도 낮은 영국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한 가지 이상 제품군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 비해 팬데믹 기간 교육 공백 피해 가구 비율이 더 많았다. 행정 처리들은 어찌나 또 느린지 ...한국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는지,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에 밖으로 나와서야 아쉬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듯 앓다가도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다. 영국에서 서로 다른 기회가 주어진 삶들을 모두 포용하는 정책, 사회, 문화를 겪을 때다.



특히, 나는 공공 서비스 기관인 NHS England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근무하기 때문에 정부 조직과 연계된 기술 세미나에 참여할 기회가 정기적으로 있다. 최근 AWS Public Sector Day 행사에서는 영국 정부 홈페이지(gov.uk) 운영자의 기조 강연을 들었다. 구형 모바일 사용자 UX를 유지한다던지, 거주지 인터넷이 약한 사용자들을 위해 화면 로딩 데이터를 최소화 한다던지 ... 보편적 서비스 고민들을 듣다보니 느린 사회 운영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운영으로 바뀌어 들렸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전체가 조금이라도 늦어질까봐 구성원 개인이 투자해야하는 것도 많지 않던가. PC방 결제를 하면서, 개인 연차를 써 가며 행정 기한을 맞춰야 하던 경험이 흔한 사회이지 않던가. 과거의 ActiveX 사용 같은 것도 그렇다.


해커톤과 같은 아주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영역에서도 영국은 (특히 런던은) 워낙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와서 참여하다보니 상호 knowledge share를 통한 지식 확장 가능성이 크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수업이나 세미나 토론에 참여해했을 때는 한 가지 단일 의견으로, 주로 선생님이나 강의자의 입을 쳐다보며 지식 전달을 수용하는 태도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영국 사회는 또한 문화 생활 장소들의 운영 시간이 나누어져 있다. 겨울에는 4시면 해가 져서 어두워지는 거리에 맞춰 카페들은 문을 닫는다. 센트럴 런던 중에서도 가장 번화가 거리를 골라 가더라도 저녁 6시까지 문을 여는 카페가 드물다. 그러니 대체로 사람들은 아침 출근길에 커피를 사거나 오후 시간을 보내는데 카페를 이용하고 저녁이 되면 레스토랑으로, 펍(Pub)으로 이동한다. 공연을 보는 날이 되면 그제서야 밤거리에 사람을 만난다. 어디서나 새벽까지 클럽과 유흥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데 보편적이 아니기에 예외로 하자. 그러면 한국에서는 무얼 해도 밤 10시반, 11시 귀갓길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영국에서는 어느새 그 시각이 아주 특별한 날이 되는 생활을 하게된다. 그래서 종종, 한국을 향한 그리움에는 24시간 이용할 수 있었던 카페와, 저녁 식사 이후 술을 마시지 않고도 즐길 수 있던 만화책방 오락실 코인노래방 같은 것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그렇게 짧은 운영 시간 제약에 아쉬워 하면서도, 막상 들어가보면 해당 공간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을 가질 수 있어 반갑다. 카페에서는 오트밀크 코코넛밀크 등 Plant-based (non-dairy) 우유가 다양하다.



카페 디저트는 물론 식당에서 정식 메뉴들도 굉장히 다양한 옵션들로 주어져 있다. 비건/베지테리언을 위한 세분화된 사항들은 항상 주어져 있고 육류 또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중 선택을 질문 받는다. 양고기나 오리고기 취급도 많다. 흔한 햄버거 집에서 beef 대신 chicken을 고를 수 있을 때, 나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한국 생각을 멈출 수 있다. 햄버거라면 의례 소고기 패티가 얼마나 두툼하고 튼실한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진 않았던가.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며 비건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던가. 여럿이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는 주문 편의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메뉴를 통일 하기까지하던 내가 생각난다.



글루텐 프리, 락토 프리 등 알레르기 반응 없이도 순수한 나의 선호도에 따라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고수나 참깨를 빼달라는 요청은 아주 흔하다. 전세계 어느 메뉴를 접근하기 쉬운 영국에서 어딜 가나 이 정도 선택은 항상 할 수 있다.

음료 또한 카페에서 디카페인을, 펍에서 논알콜 선택을 할 수 있다. 커피와 술을 파는 곳에 들어가서 티(tea)를 선택할 수도 있는 자유는 으쓱하기까지 하다.



영국에서 다양성이란 남녀의 다름이나 피부색이 다른 인종 차이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장애에 대한 것과 빈곤에 대한 것도 그렇다. 모두의 다름이 자신의 불편을 만들더라도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다. 지역 사회 거주민으로 접속해야 하는 정부 홈페이지는 당연히 나의 오래된 구형 모델 기기에서 동작해야 하고 필요한 일을 하는데 나의 데이터 소모량이 크지 않아야 하는게 당연하다. 토론 문화는 서로 다른 배경이 주어진 삶들을 모두 포용하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어느누구도 표족하게 튀어나온 의견으로 돌을 맞지 않는다. 카페와 식당에서는 대표 메뉴/음료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게 다른 것을 바꿔 선택할 권리를 제공하고 단체 주문에 20분 넘게 걸리더라도 모두가 마땅히 기다림을 감수하여 원하는 메뉴를 가지게 한다. 한국을 앓던 나는, 이렇듯 다양성을 존중하는 영국 정책과 사회 문화를 지할 때, 흠칫하며 그리움을 멈추곤 한다.




글과 사진 by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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