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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유나 Jul 29. 2023

경제적 독립 다음 정신적 독립

영글 | 해외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생각

해외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읽고, 나의 이야기를 이어쓴다.



영국에 도착하고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피드백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도 성숙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돋보였다. 어쩜 운이 그렇게 좋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유학생으로 다시 학생 신분을 가지다 보니 나이가 어린 그룹과 어울려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10대 당시 형성했던 선한 가치관들을 계속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들 스스로도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섞이기 시작하는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좋은 생활만 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목표했던 9개월을 다 채우기 전에 향수병이 크게 왔다. 영국행을 결정하고 실행한 그 순간부터 나의 삶이 두려워질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는 했던 것 같다. 내가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 겪은 환경적인 요소들은 외국에서 자고나란 다른 사람들과 다를테고, 고민의 범위와 해결의 시기도 달랐을 게 당연하지 않은가. 무언가 생각했던것과 다른 상황이 왔을 때 만난지 얼마 안되는 사람에게 어떤 일로 지적을 하는 건 나에게 굉장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입 밖으로 말을 내뱉고 행동하기까지 걸린 사고 과정을 이해하려고 가장 먼저 노력하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내가 그 사람과(혹은 단체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놓친 것이 있진 않았을까. 그러다 주변의 반응에 예민해지고 한국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는 비교를 하게 되며 영국에서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두고온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지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불면증이 올 정도로. 다행히 적절한 도움을 받아 잘 치료하면서 깨달음이 왔다; "정신적 독립을 해야 할 차례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어도 흘러갔던 한국에서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덕분에 내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타인에 의지하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정말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른이었다.



첫번째 노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를 나의 외부 소통 시간이라고 정했다. 이메일 답변과 SNS 블로그 응답 등까지 모두 소통 시간 안에만 해보자. 나는 팝업 알람이 뜨면 즉시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라 짧은 간격으로 자극을 쫓다보니 의미 없이 app과 app 사이를 오가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요리와 빨래, 청소 등 먹고 사는데 필요한 모든 일은 저녁에 한다. 소통과 비소통시간 이렇게만 나눠도 이메일 광고 링크를 따라가 서핑하거나 친구와 수다 등으로 소비하는 자극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게까지 스스로 소통시간을 제한하지 않지만, 여전히 훈련 습관이 남아있어서인지 따지고보면 그렇게까지 asap 응답할 일은 없다고 사고 방식이 변했다. 그리고 요즘 하는 노력은 자기개발 시간을 아침 7시부터로 배정하여 일정한 생활 루틴으로 하루에 더 많은 "나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다른 노력은, 내가 하루에 섭취하는 음식의 양을 규칙적으로 정했다. 아침 시간에 미숫가루 또는 시리얼을 우유와 먹고, 하루 한끼는 한식으로 푸짐하게 한상 차려먹는다. 보통은 저녁에 요리를 하고 점심에는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것을 데워먹거나 라면 또는 샌드위치 등으로 간편하게 대신한다. 물은 하루에 1L를 마신다. 런던 근교에는 H mart이외에도 Starry mart도 있고, 시내에서는 슈퍼맨 마트 등 한식 재료 주문 배송이 가능한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사오기 전 (런던이 아닌) 동네에서는 근처에 중국계 오리엔탈 마트가 크게 자리잡고 있어 거기서 온라인 주문을 하기도 했다. 라면이나 과자류는 구할 수 있는 종류가 꽤 많은데다가, 양념 베이스들도 브랜드나 용량 선택에 제한이 약간 있을 뿐 무엇이나 기본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다. 특히나 요즘은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며 안정된 '함께하는 저녁식사' 루틴이 자리잡았고 장보는 것도 생활비 지출도 합쳐서 맞춰가려 노력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아침 점심을 각자 알아서 먹고 저녁은 번갈아가며 요리한다. 패턴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지는 한두달 정도, 얼마 안되었다. 그렇게 규칙적인 식습관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체지방 15%까지 감량, 중장기적으로는 10%까지 도전하려고 한다. 결국 나의 신체가 건강해야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질량도 늘어나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의 몸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무언가 이상이 있을 때는 정신적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래서 해로운 감정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독립 다음으로 "정신적 독립"을 이뤄나가는 중이다.



앞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돈을 벌고 모으는 직장인의 삶을 열심히 살았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며 보통의 인생 2n년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대한민국 20대 모두가 1억을 모으는게 당연하지 않고, 해외 유학을 갈 수 있는 여건은 특별하다는 걸 자각했다. 내가 그만한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반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나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덕분이다. 남편이 있다거나 아이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온전히 나만 생각해서 내린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는 있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들을 스스로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는 나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외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며 주변인과 연결이 잘 안되는 한계를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터득했다. 인생이 바뀐 순간이 찾아온 영국이 그래서 참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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