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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유나 Oct 09. 2023

어른 학생의 매력

feat. 정재일 음악감독

런던 바비칸센터, 정재일 음악감독님*의 무대를 다녀왔다; 이런 사람을 장인(마스터)라고 하는 거구나 큰 울림을 얻었다.


판소리와 국악기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연주에 훌륭하게 섞어내는걸 듣고, 여러 분야에 폭넓게 쌓은 많은 지식과 경험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이런 효과를 낼 수도 있구나 감탄다. 왜냐하면 그 앞의 <기생충>, <오징어 게임> 메인 테마곡들과 또 달랐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크고 넓은 장에서, 수많은 갈래의 필드를 돌아다니며 배우고 실험해본 과거 이력이 종합적으로 정재일이라는 사람의 장르를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인물 프로필은 음악감독을 대표 직업으로 기재하였는데 본 무대는 (기존 국내에서 종합 무대 연출을 맡았던 공연과 달리) 작곡가로써 지휘자 감독을 별도로 두고 협연한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지난 일요일 관람을 계기로 프로필이나 그동안 작업하셨던 이력들을 다시 훝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자연스럽게 그의 나이와 인생 시기에 따른 작품들을 보았다. 남북한 정상회담 환송 공연이나 3.1운동 100주년 기념음원 제작, 5.18 40주년 기념식 등등. 우리나라 역사에 기념비적인 순간마다 내 놓은 결과물들이 국내에서만 소비되는게 아깝더라. 물론, 여럿 외교 정상회담에서 우리 음악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게 변형한 방식들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작업 의뢰 자체는 아마도 군대 복무를 계기로 국방부 등 정부 부처들과 인연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만 뛰어난 결과물로 증명하고 실력으로 획득해가는 과정이 무척 빛나 보였다. 어떤 한 분야에서 마흔에 달하는 어른이 될 때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으면 저만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나는 종종 스스로 너무 많이 다양한 곳으로 집중력이 분산되는 걸 경계하면서 지금 해야 할 일, 중요한 일이라고 구분한 상황에 몰입하는데 노력한다. 그런데 마흔의 정재일님을 보면서 이거 저거 다 해보다 끝내 하나로 대통한 결과가 저렇게까지 될 수도 있구나를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재미난 건 항상 너무 많고 인생에 모든 걸 할 수 없다며 아쉬워보이는 지금의 나는 결국 이해의 깊이가 얕은 문제가 있다. 갈래마다 얕게 뻗어놓은 안테나들을 거기서 그치지 않고 꾸준히 개발해나가다보면 정말 멋있게 지식과 경험이 대통합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외국에 나와니 당장 학교에서 만나는 주변인들이 너무 스무살들이라서 이제와서 커리어 변경을 하려는 내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게 늦은 것 같은 느낌이 강력하게 들 때가 있다. 그런데 5년을 지나고 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기만 하던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나이들어서, 다른 사회 경험을 하고 왔기 때문에 더욱 자신있게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유학생을 포함해) 외국 친구들이 보통 영국에서 석사 과정에 진학할때 대체로 25살 전후 나이대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돌아온 mature students도 많아서, 그리고 그들이 졸업 이후 experienced 경력을 인정받는 걸 보면서 나는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뒤처진 것도 아니란 자신감을 얻었다. 평생 숙제인 영어부터 시작해, 내 인생 내내 학생일 것까지는 어쩔 수 없겠으나 언젠가 내 인생에도 어른 학생의 매력이 발휘될 순간이, 내가 처음 만난 정재일님의 마흔에 빛나는 음악처럼, 다른 사람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나타날 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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