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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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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일 Feb 23. 2022

사무치다

목소리에


맛대가리 없는 병원밥을

2주 가까이 하루 세끼를

낫기 위해 꾸역꾸역

입에 욱여넣고 있는 중,

전화 올 곳이 없는 내게

뜬금없이 전화가 울리는데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 대신

어두운 액정에서 날 봐달라는 듯

기다란 전화번호가 깜빡인다.


단번에 알아챘다.

이제는 기억에서 무뎌진,

그렇게 믿고 싶었던

그대였다.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는데

방금 잠에서 깨어난 건지

잠긴 목소리로

그대가 인사한다.


“응. 잘 지냈어..?”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지금 밥 먹고 있으니까 다 먹고 나서

내가 다시 전화할게.”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불쑥

다소 딱딱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그런 헛헛한 마음 때문일까.

무거운 몸을 이끌며 병실을 나와

병원 복도 벤치에 걸터앉아

그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도 같이 무거웠던 것 같다.


“응.. 오래간만이네”


아까처럼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하고 요양 중이라 말하니

그대가 잠깐 동안 말이 없다.


답답한 마음을 내비치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에 답을 했지만

그대는 나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나가는데

자신의 가족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원을 했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자신의 집안 사정에 관한 얘기였다.




참으로 비참했다.

지금의 내 상황은 우스울 만큼.

그저 고개만 저으며

한참을 듣기만 했던 것 같다.


“고생 많았겠네..”

라는 내 대답에

“목소리 듣고 싶어서 연락했어..”

라고 그대가 말한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생각을 하던 와중에

복도 창문 밖을 바라보니

붉은 노을이 지고 있는 풍경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미 머릿속에서 그대는

잊힌 줄 알았지만

정작 그대의 전화번호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지는 노을과 함께

오랜만에 몇 시간을 통화하며

나는 그대 목소리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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