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홍대화실 입실기
내가 원래부터 그림이 그렇게 아쉬웠던가? 잘 모르겠다. 옛날 일은 옛날이니 명확치 않다. 그저, 그림에 관해 좀 윤색된 장면 몇 개가 기억 속에 있긴 하다.
국민학교 시절에 (아, 씨. 언뜻 국제시장 분위기야 ㅋ)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온 동네 애들 다 다녔지 뭐. 피아노 하나, 미술학원 하나. 과하면 주산학원 정도? 그런 걸로 애들 방과 후를 채우던 시절이었다. 나는 미술학원이 좋았다. 가끔 기술 그림으로 칭찬받는 것도 좋았지만, 대체로는 그 찹찹한 공간에서 어슬렁 거리는 시간이 좋았다. 물 뜨는데 30분, 붓 늘어놓는데 30분 그러면서. 이 시기에 기억 하나로, 원장 선생님이 나 끼워 3명 애들 불러 세우고 너넨 미대를 가라 '훈화'하던 장면이 있다. 나는 거부했고, 예한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지금 화가이고 (십 수년 전 비엔날레에서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나머지 하나는 미대 나온 애엄마가 되었다. 액면가로는 혼나는 상황이었는데, 내게는 뭔가 자부심 비슷한 걸로 남았다.
두 번째 기억은, 고등학교 미술부 선생님의 편애다. 독설로 정평 난 그분이 내게, 배운 그림은 아니다만 개념이 들었으니 쓸만하다, 그랬었다. 우리 학년 수업 안 하실 때도, 따로 불러서 내 그림을 궁금해해 줬었다. 미술로 대학 안 간다니, 공부라도 미술실에서 해라 하면서. 이 기억은, 일과 집만 있던 오랜동안에 내게 위안 같은 것이었다. 나도 따로 잘 하는 거 있다, 뭐, 입 씰룩거리면서 떠올리는 기억.
세 번째가 대학 때. 난 대학이, 전공이, 수업이, 화사한 애들이 싫었다. 어쩌면 그런 걸 싫어해야 쿨하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여튼 겉돌 던 대학 시절 중에 한번 한국일보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한 달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이다. 난 이제 시작했나 싶은데, 3시간 지났으니 집에 가라고. 정말로 눈물이 났다. 이만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내 미래를 걱정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학교 마저 다니고, 회사 가고, 결혼하고, 애 키우고, 회사 다니고, 그렇게 수십 년 동안, 그림은 내 인생에 없었다. 아쉽고 그런 마음도 없이, 그냥 잊었었다.
그러다 두어 해 전에, 아이도 자라고 자란 아이는 친구랑 어울려 밖으로 돌고, 집을 지켜주는 일이 크게 중요하지 않겠다 싶었던 그때, 문득 일주일에 한 번쯤 화실에 가보자 싶었다. 등록을 하고 두어 주는 스케줄 꼬여 미루고, 그러다 처음 가는 날, 주차장 나가다 불현듯, 그날이 아이 만10년 생일날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친구들하고 생일 파티하러 나간 덕에 내가 화실 가는 거였다. 그 각성 끝에 딸려서, 수십 년간 눌려있던 뭣이 확 올라왔다.
그동안 나 수고했구나. 일하고 애 키우는 동안, 나 쳐다보지 않고, 내가 놓아야 하는 것들 애써 눈길 주지 않으며, 안간힘으로 살았었나 보다 (이 타이밍에서, 우리 남편 진하게 반성 들어가시나?) 그 화실은 두 달을 넘기지 못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나는 조금 풀어진 것 같다. 풀어졌다 해도, 나 놀다 올게 혼자 (혹은, 둘이) 알아서 해 그런 건 안됐었지만, 사전 예고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저녁 운동 정도는 갈 맘이 되었었다, 매번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들어오긴 했지만.
그리고 아이도 일도 잘 떼어내고 (아이는 아이가 나를 떼어낸 거고, 일은 내가 일을 떼어낸 거고) 물리적 심리적 여유가 생긴 두어 달 전부터, 다시 화실을 나가게 된 것이다.
이건, 처음 입실 테스트 같은 걸로, 숙제받아 그린 그림이다. 젯소니, 오일이니, 네이버 지식인에서 배워 간 것들, 처음 실행해 보면서. 내가 기본을 할 수 있을까 간 떨면서. 지루한 것 참고 교과서적인 그림 하나 그려낸 덕에, 난 선긋기 연습 그런 거 없이, 물감 만져도 되는 권리를 얻었다. 고마운 그림인 거지. 하지만 이런 그림, 아마 다시는 안 그릴 것 같다.
ps. 자꾸만 물으시니 덧붙여 놓는데요, 이런 그림 따분하거든요, 그래서 다시 안그린다고.. 뭐 달리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