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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IU May 25. 2016

부부라는 게..

포개고 누운 발

사람 마음엔 자리가 딱 하나 있나 보다, 생각하며 살았다. 연애 말이다. 온 시선이 다 가는 곳에 자리 딱 하나 두고 사나 보다, 생각했다. 그 한 자리에 사람을 계속 바꿔 앉힐 수는 있겠지만(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왜 웃지? 하하하하하하), 여튼 난, 어딜 봐도, 거기에 여러 자리 두고, 똑같은 사랑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만 같다.


예컨대 이런 것이지. 내가 남친이 A야. A를 좋아해. 근데 B랑 우연히 썸 타. 그 썸 타는 중엔, A는 깜빡 잊을 걸? 다른 층위의 자리로 옮겨지는 거지. 옮겨지면 썸이 되는 거고, 안 옮겨지면 썸이 안 되는 거고. 손에는 떡을 나란히 들고 있을 수 있지만, 마음에는 두 사람을 나란히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은 왕창씩 밖에 못 움직인다... 는 게 내 지론인데...


음... 나이 들면서 보면,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남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담론으로 그러한 걸지, 내 체험적으로 그러한 걸지,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내 보기에 남편은 어딘가 특별한 제 자리를 따로 트는 것 같다. 절대 움직이지 않는 제 자리.


그 자리에 온통 쏠렸던 내 시선이 슬쩍슬쩍 흐트러질 수는 있어도, 여튼 내 시선이 닿는 어디에 대체 불가로 제 자리를 틀고, 옮긴 시선에 흰자위로라도 항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어른어른, 언제나. (호러 느낌? ㅋ) 여튼, 좀 더 쓰자면 곤란한 일들도 딸려나올 수 있을 테니 이쯤에서 각설하고, 남편에게는 언제나 쓰게 되는 '큰' 맘이 기저에 있더라... 정도로 급히 마무리. ^^;


이 (불리한?) 얘기를 시작한 것은 이 그림 때문이다. 가제, 부부. (지겨워서 여기서 일단락했지만, 한 번쯤 더 손을 봐서 마무릴 해야 하는 미완성 그림이다) 아카이브 발 사진을 레퍼런스로 두고 그린 것이지만, 작심은 우리 부부를 그리는 것이었다. 부부란 게 이런 거 아닐까 싶어서.


남편은 잘 때 발을 얹을 데가 없으면 허전하고, 나는 발이 묵직하게 눌리지 않으면 허전하고, 사는 동안 우리는 그렇게 됐다. 맘 속에 제 자리 가진 것 마냥, 몸에도 제 자리를 만든 모양인데, 그게 맘 속 제 자리의 현시마냥 느껴진다. 그러니, 부부는, 혹은 남편과 나는, 포개고 자는 발로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미운 날의 남편도 잘 때 되어 침대로 발을 포개고 들어오면, 나는 언제나 마음이 누그러진다. 미안한 날의 내게 남편이 발을 포개고 자면, 나는 슬쩍 안심한다. 발 포개고 누웠을 때 남편과 나는, 밉다 곱다 당장의 감정 다 걷히고 그냥 원안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물론 자는 동안 발은 풀리고, 아침 되면 다시 전투 개시!)   



남편과 25년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줄 몰랐던, 내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는 줄 몰랐던, 그런데 살기는 미치게 바빴던 그런 시간이었다. 안타깝고,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지금 와, 이해되고, 미안하고, 애틋하고, 결국 사랑스럽다.


잘 해줘야지. 사랑해 줘야지. 나중에 또 아쉽다 생각하지 않게, 잘 갚고 살아야겠다.


안타깝게도, 나 이렇게 '성숙'하는 동안 우리 남편은 성숙은 개나 줘버려 하신 바람에, 나의 이런 고귀한 뜻을 읽지 못하고, 이 안마는 웬 떡인 거냐 하고 계시지만, 그런 모습에 흔들리지 말고, 온 힘으로 마음을 다 잡아, 술 마신 야밤에 언듯 갖게 되는 친애의 마음을 애써 유지해서, 열심 잘 해줘야지! 하하하하하하하




pn. 저 그림, 원래는 배경 묘사 없이, 비비드한 색감의 바탕을 깔 생각이었는데, 음.. 여전히 주변의 권고를 사양할 수 없는 신입이라서 (그래도 이번엔 투박한 내 톤을 지켜냄), 이렇게 전면 묘사적 그림이 되고 말았다. 조만간 화구를 집에 가져와서, 남들 몰래 바탕 한번 갈아엎어봐야겠다. 아무래도 지금 저건, 좀 너무 설명적이라서 말이다. 의도하는 모호한 뉘앙스를 담기에 좋지는 않은 것 같아서.

연습은 이렇게 하고, 그림은 저렇게 됨. ㅡㅜ 여튼, 저 그림도 이런 식의 배경으로 덮어볼 계획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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