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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IU Jun 16. 2016

초상 혹은 허상

남편 초상화


두 주가 넘도록 남편 얼굴을 촘촘히 들여다보고 있다.


...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 근데, 남편 얼굴, 오래 두고 보면...

... 치고 싶다? ㅋㅋ (농담!!! 정말 농담!!!)


난감해서 하는 농담이다. 난감할 때 실없는 소리하는 게 내 버릇이다. 남편을 그려놓고, 남편에 대해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다. 원래, 대상을 너무 자세히 알면 뭐라 말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남편이 그렇다. 남편한테, 푸우라는 별명을 준 것도, 상남자스탈이라고 정의해 준 것도, 다 내 친구들이다. 두어 번 스쳐 만나거나, 내가 늘어놓는 남편 뒷담화를 잠깐 듣는 것으로, 친구들은 단박에 그런 규정을 내려주는데, 나는 듣고 나서야 아! 하고 격하게 공감할 뿐, 혼자서는 그렇게 명료하게 정리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우리 둘은 일종의 풍파를 지나고 있는 터라, 요즘의 나로서는 그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더 어려울뿐더러,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감으로 침잠하게 되는 곤란이 있다. 하여, 남편에 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대신, 이 그림에 집어넣은 의도 두어 가지만 짚어 두기로 하자.


남편은, 텅 빈 시선과 그 시선에 이어진 깊은 空間으로 표현되는 사람이다.


이번 그림은 남편의 초상이다.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가로로 긴 구도를 잡고, 남편의 빈 시선을 따라 깊은 색의 여백을 이어서, 빈 곳 - 공간(空間)을 크게 두었다.  


내게 남편은, 저 공간(空間)으로 이해되는 사람이다. 말도, 사람도, 아무것도 담지 않는, 단단히 혼자만인 공간(空間)을, 그는 갖고 있다.


그 공간(空間)은 과묵함으로 표출되어, 일견, 뭔가 있을 것 같은 신비감을 준다. 무심한 시선 너머, 심연과 같은 빈 곳에, 남다른 사고와 감성이 출렁일 거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상상 끝에 악수 둔다고 (이런 말 없다고? ㅋ) 다수의 젊은 아가씨들이 과묵한 남자와 결혼하는 낭패를 보는 것은, 다 그런 상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케이스는 그렇다. (낭패에 방점?! 하하하하하)


살다 보면... 그 공간(空間)에 대한 팬시한 상상은 옅어지고, 그 공간(空間)으로 인한 관계의 허허로움이 진해진다.  


(오른쪽 위, 초벌 칠을 한 그림을 본 아이가, 망했구나?라는 평을 주었었다)


더불어, 그림 속 남편의 무표정에도 나름 의미를 담았다. 텅 빈 시선의 무표정은 그가 자신의 공간(空間)을 대하는 얼굴이기도 하지만, 보다 쉽게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의 대표 얼굴이기도 하다. 그는 얼굴로도 과묵해서, 내색도 표정의 변화도 별로 없다. 간간이 터지는 그의 웃음은 소리 없고 짧다.


예전에 나는, 무표정 중에 간간이 터지는 그의 부끄러운 웃음이 좋았다. 선해 보였다. 포사 웃기겠다고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주나라 유왕마냥, 그가 웃는 것을 보면 맘이 놓이고 그랬다.


요즘은? 음... 그의 무표정과 참는 웃음은, 이제 그저, 우리 집 단골 놀림감이다. 아이와 나는 남편 사진에, 무한도전식 박장대소 말풍선을 넣어준다거나 하면서 놀려 먹는다. 왜 웃음을 참냐며, 대놓고 구박도 한다. 기다리지 않고 요구하는, 진취적 여성상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하


....


할 말 없대 놓고, 말이 길어졌다. 여튼 남편을 그린 이번 그림의 포인트는, 그의 텅 빈 표정과, 이어지는 깊은 색 여백이다. 치킨집에 소금이 맛있다더니, 이번 그림에 나는, 여백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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