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노트 08
치앙마이의 호텔에서 게스트하우스로 이사하자마자 만난 개미떼. 저 작은 개미들은 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하나둘씩 모이는 걸까. 오랜만에 보는 개미떼들이라 처음 만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불에 올라오면 어쩌나, 아이를 물면 또 어쩌나, 개미약을 사러 나가야 하나????
그렇게 요란스러운 첫날을 보내고, 이튿날 새벽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창밖을 보니 이제 막 해가 뜨려고 하는 중이다. 밖으로 나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있는데, 전신주에 청설모가 조르륵 지나간다. 하.. 작게 웃음이 터졌다. 이제야 치앙마이에 온 것 같다.
새벽독서의 일등공신이었던 애플워치를(손목 진동 알람 기능이 매우 강력하다) 인천 공항 화장실에 고이 모셔두고 오면서, 치앙마이에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 보기로 했다. 덕분에 남편과의 대화를 잘 마치고 다시 새벽독서에 합류하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되고,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생체리듬에 맞춰 일어나고 있다.
밖으로 나가 10킬로를 걷다 보면 (일단 남편이 원하는 대로 치앙마이를 대체로 걸어 다니는 중이다) 개미고 모기고 심지어 쥐도!!! 아무렇지도 않아 진다. 일부러 신도심(님만해민)으로는 숙소를 잡지 않았는데, 구도심인 내가 있는 지역은 자연친화적인 숙소와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거기다가 건기라고 해도 후덥지근한 동남아 날씨에, 금방 칭얼대는 세 살 아이와 함께 있으면 뭐.. 진땀 한 바가지를 쏟아내고 숙소로 돌아온다. 이런 날은 먹이고, 씻기고,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리기 일쑤이고, 오늘 같이 조금 여유롭게 일정을 잡은 날은 숙소에서 종일 수영하고 쉬면서 (마사지 좀 많이 받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여행 온 지 일주일 만에 에머슨의 <자기 신뢰 철학>을 꺼내 읽었다. 모든 문장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감정이 들쑥날쑥 거린다. 온갖 새로운 감각들이 날 자극하는 여행지에서는 감정이 날뛸 수밖에 없다. 정신을 붙잡아 와야 하는데, 익숙한 내가 자꾸만 튀어나온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곧,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진실이 된다. 이것이 재능이다." (주)
슬그머니 약해진 의지가 나를 시험한다. 너는 지금 얼마나 너의 생각을 믿고 있냐고. 너는 얼마나 너의 꿈을 믿고 있냐고 묻는다. 나는 항상 쉴 때만 되면 아프곤 했는데. 가령 신혼여행 일주일 동안 이틀은 밤새 화장실에 (물갈이), 이틀은 침대에 (고열로), 하루는 정형외과 (그 와중에 서핑을 하다가 발가락 골절)에 있었던 일은 참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한창 일에 파묻혀서 11시 퇴근을 밥먹듯이 할 때였으니까, 몇 년 만에 주어졌던 일주일의 낯선 휴식에, 몸이 탈이 났었던 것 같다.
항상 꽉 조여있던 것을 풀려고 하면 잘 풀리지 않는다. 매 순간 조임과 풀림의 조절이 자유롭게 되지 않으면, 탈이 난다. 나는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그런 삶을 원한다. 그런 삶은 항상 매 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내가 처음 고심해서 만들었던 아이디 "일상여행가"도 그런 의미로 지었던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이 오늘(present)이 여행지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경험하고, 쉬어가고, 느끼보는 그런 일상으로 내 인생을 채우고 싶다.
이걸 딱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조금 아쉬워 책장을 넘기는데, 지금 내게 필요한 문장을 발견했다.
장미는 존재하는 매 순간 완벽하다. 장미는 온 생애를 꽃봉오리를 피우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꽃이 활짝 핀 상태에서도, 잎이 없는 뿌리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미의 본성은 매 순간 충족되고, 자연도 장미의 존재에 만족한다. 그러나 인간은 무언가를 미루거나 기억한다. 그런 인간은 현재에 살지 않으며, 회상에 젖은 눈길로 과거를 떠올리며 애석해한다. 또는 그를 둘러싼 풍요로움에는 무심한 채 발끝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해 지금 이 순간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는 한 그는 행복하거나 강해질 수 없다. (주)
매 순간 본성이 충족되는 삶,
나의 존재가 자연을 만족시키는 삶,
매 순간 완벽한 그런 삶을 원한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욕망노트 08. 매 순간이 완벽한 삶을 산다.
(주)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 신뢰 철학,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