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노트 07
치앙마이 도착한 지 벌써 다섯째 날이다. 시간 개념이 없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매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
오늘도 커다란 창에서 어스름하게 해가 뜨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 남편은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내려가고, 이내 일어난 아이와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면서 지난밤 꿈 이야기를 하다가 일어났다.
한달살이 하러 오기 전에 유일하게 예약한 4박 5일은 회사에서 지원이 되는 호텔이었는데, 별생각 없이 예약했던 호텔이 아이와 지내기 참 좋은 호텔이었다. 매일 2회 진행되는 키즈 클래스에서는 목걸이 만들기, 세라믹 페인팅, 천연 재료 페인팅과 같은 수업들이 모두 무료이고, 수영장도 아주 훌륭했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가 금방 지루해하면서 뛰쳐나올 거라 생각한 첫 수업날 초집중한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주변을 보면서 따라 하던 아이를 보면서 나의 고정관념이 또 한 번 깨졌다. 이곳에서 첫 수업부터 만났던 싱가포르 남매들 (4살, 6살)과 계속 클래스에서도 수영장에서도 라운지에서도 마주쳤는데, 이내 친해져서 같이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주하가 어디에서도 잘 적응하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원래 낯을 잘 가리고, 친해지고 나면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인데 영어를 쓰는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도 똑같았다. 처음에는 일부러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숨바꼭질, 얼음땡(?) 같은 말이 필요 없는 놀이를 같이 해줬는데, 함께 놀고 나니 나중에는 언니, 오빠라고 부르면서 다가가 말도 걸고, 자기가 아는 영어 단어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라운지에서는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고 한국말로 말해서 그 아이들이 당황하긴 했지만 ㅎㅎ 신나게 놀고는 아쉬운 듯 꼭 껴안고 헤어졌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저 중국인 남매들은 영어가 유창했다. 4살 아이가 발음도, 문장도, 단어의 수준도 좋았다. 스무 살이 넘어서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공부를 해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가능하지만, 그들의 문화나 특정 표현들을 그곳에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영어권 국가에서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일어났다. 남편과 거의 유일하게(!) 동의하는 것이 아이는 외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것인지라, 서로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디지털 노매드로 해외에서 살겠다는 내 생각이 여전히 남편에게는 허황된 이야기로 들리는지 이야기가 더 깊게 진전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방법에 대한 이야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꿈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것만 찾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아이는 스스로 먼저 움직일 것이고, 그 길에서 우리는 아이의 꿈을 서포트를 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갖추고 있으면 된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능력(재력)을 갖춘 부모가 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의 말투, 행동, 습관, 마인드까지 모두 그대로 습득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부모가 롤모델이 될 테니까. 부모가 먼저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아이를 위해 뭐든지 다해주기만 하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 먼저 스스로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말이다.
나의 꿈에 나는 얼마나 절실한가? 지금 나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치앙마이 두 번째 숙소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고, 그 옆에서는 아이가 열심히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이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아이가 꿈꾸는 곳에서 나 역시 같이 꿈꿀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여기서 잔뜩 이 삶의 충만감을 느끼고 다시 돌아가면, 절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시 그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말이다. 이번 한달살이에서 나의 꿈대로 최대한 살아보자. 돌아가서도 더 생생하게 꿈꾸고 믿을 수 있도록!!!
욕망노트 07. 꿈꾸는 삶을 사는 부모가 되어 아이를 꿈꾸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