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노트 09
하늘이 시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있는 곳
나무가 곳곳에 사람보다 더 많이 자라고 있는 곳
아파트와 빌딩숲을 벗어나 치앙마이에 오니 자연이 더 간절해진다. 막연하게 정원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올해 초에 서울에서 경기도 덕양구로 이사했다. 마당 있는 집을 찾아보려고, 참 많이 돌아다녔는데 결국 출퇴근 시간 때문에 아파트 1층으로 만족해야 했다. 회사까지의 거리가 아이와 출퇴근을 같이하는 나에게는 가장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결국 그런 결정을 했지만 새집은 금세 답답해졌다.
한 달 살기 중인 치앙마이 숙소는 대부분 원룸이다. 한국의 우리 집과 비교하면 사분의 일도 안 되는 공간에서 지내고 있지만,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마당과 하늘 덕분에 훨씬 더 큰집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수영장과 그보다 더 작은 잔디밭이 주는 풍요로움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여기 와서 내가 가진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데는 많은 물건이 필요 없다. 출발 하루 전에 짐을 싸면서, 간소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들이 벌써 한 가득이다. 가방은 왜 3개나 들고 왔으며, 그나마 옆으로 메고 다녀야 할 그 가방은 왜 무거운지, 모자도 2개씩 필요 없고, 옷도 위아래 5벌이면 충분했다.
언젠가 사용하겠지 하고 쟁여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 한국의 집에 있는 물건들은 내가 한 달을 쓰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지금 우리 세 가족이 필요한 모든 짐이 캐리어 2개와 배낭 2개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필요 없는 것들을 빼고 나면 캐리어 1개에 배낭 2개면 충분할 것 같다) 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거지?
아이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난감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이에게는 자연이, 부모가, 경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여기와 서야 다시 느낀다. 그 많은 장난감들은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의 미안함으로 채워진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발이 닿는 풀장에도 겨우 들어가던 아이가 여기 와서 어른들이 들어가는 깊은 풀장에 들어가고, 제대로 된 수영을 하게 되었다. 치앙마이 온 지 불과 3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아이와 같이 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덩달아 아이 수영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챙겨 왔던 구명조끼와 튜브도 필요 없어졌다. 팔튜브 하나면, 이제 앞으로도 뒤로도 누워서 자유롭게 물속에서 논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입술이 퍼렇게 될 때까지 돌고래 같은 비명을 지르면서 논다. 아이는 참 이렇게 놀아야 한다.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떠오른다. 더는 보지 않을 책들은 중고서적에 팔거나 누군가에게 줘야겠다. 그리고 다시 봐야 할 책들은 온라인 서재에 넣어두고, 안 읽은 책들은 내년에 다 읽어버려야지. 책장에 채워진 책들이 내 지식의 양이 절대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찾을 수 있게 잘 디지털화해 두는 것이 더 중요한데,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이것도 내년에는 다 완료해야지!!!!
생각해 보면 물건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다. 쓰지 않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알게 모르게 오는 스트레스와 잘못 산 물건들도 그렇고.. 몇 년 전에 샀던 명품백을 에코백처럼 들고 다니다가 안에 펜 자국이 생겼는데 그걸 또 볼 때마다 신경이 쓰여서 동생을 줘버리고 나서 아주 개운해졌던 기억이 있다. 물건을 살 때는 왜 이걸 사야 하는지에 대한 그 '본질'에 충실한 그런 물건을 사고, 나의 단순한 삶에 방해 주지 않을 물건인가를 고민해 보고 사자.
여행지에 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무심결에 사게 되는 물건들이 참 많다. 특히나 이렇게 저렴한 물가에 매일 야시장이 열리는 나라라면 더욱더. 이번 여행에는 물건을 거의 사지 않고 있는데, 그 빈 공간이 경험과 대화로 채워지고 있다. 비워낸 자리는 무엇이든 채워지기 마련이다. 비워내고, 채워보자. 좋은 것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