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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여행가 Jan 23. 2024

전체를 보는 눈, 디테일을 챙기는 힘

욕망노트 10 

새벽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정말 뚝뚝 떨어졌다.

감정의 동요를 조절할 나이는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나는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처럼 서럽게 운다. 


나는 워킹맘이다. 일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항상 아킬레스건이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에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을 때에도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를 데리러 갈 때에도 미안하다.


더 해주고 싶은데, 

더 함께 하고 싶은데,

항상 부족한 것만 같아서 미안하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살면 뭐 해, 얘랑 시간을 못 내주니까 아이가 너한테는 이야기를 안 하는 거야."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폭발했다.

'왜 나 때문인데? 내가 놀아? 너는 뭐 했는데?'

속에서 아우성치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해서

인정되지 않는데 인정한 꼴이 됐다.

 

내가 미안해해야 할까?

남편에게? 혹은 아이에게?

아니, 난 나에게 미안했다.

 

우리 아이는 외동딸이다. 외동이지만, 외동같이 키우지 않으려고 나는 칭찬에 민감했다. 먹고, 자고, 싸는 것만 잘해도 칭찬해 줬던 영아기를 지나서 5세가 된 시점부터 나는 더 아이에게 집중했다.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려고 내 급한 성질도 많이 죽였다.

 

5세 아이는 대인, 대물, 대상의 관계가 처음으로 인식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그래서 인사, 감사, 사과와 같은 관계의 시작에는 특히나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것도 부족하다 할 정도로 민감했다. 

 

아이가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유독 나한테만 짜증이 심하고 아빠랑만 잘 노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남편의 비난에 아무런 말도 못 한 꼴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남편은 육아에 책임이 없는 걸까?

정말 나는 아이와의 시간이 부족한 걸까?

정말 우리 아이가 날 싫어하는 걸까?

 

오늘의 코칭에서 나는 이 부분을 코치*에게 눈물 뚝뚝 흘리며 물었다. 

 

"엄마입장에서 말고 주하입장에서만 봅시다. 주하는 할머니와 아빠에겐 자기가 지킬 것은 지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하는 아이, 엄마에게는 지킬 것을 안 지켜도 되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아이. 상당히 균형 잡히게 관계를 이쪽저쪽 잘 관리하는 아이인 것 같은데요? 혹시 주하입장에서 다시 고려해 볼래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코치의 말에 다시 멍해졌다. 매일 높은 시선에서 나를 바라봐야 한다고 책에서 읽으면서 막상 내 삶에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지식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지식을 소유해서 재사용하거나 거기에 몰두하고 빠져듭니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어떤 사람은 그 지식의 내용을 소유하고 정해진 효용성에 매몰되기보다는 그 지식 자체의 맥락과 의미를 따지고, 그것이 세계 안에서 벌이는 작동과 기능을 보려고 합니다. 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후자가 더 철학적 시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내가 그랬다. 5세 아이의 특별한 발달주기를 맥락으로 주하를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가족 안에 누구에겐 이렇게 누구에겐 저렇게 하는 주하만 본 것이다. 맥락과 의미를 커다란 세계 안에서의 작동과 기능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남편의 말에 인정이 안되면서 인정해 버린 꼴이 된 것이 혹시 '시간을 못 내준 엄마'라는 것 때문인가요? 과연 시간이 문제인 것이 맞나요? 그렇다면 기러기아빠는? 주말부부는? 그런 부부의 아이들은 모두 다 나쁜 방향으로 자라야 하나요? 진짜 시간이 문제인 건가요?”

 

나는 '시간'이라는 요소, '시간의 부족'이라는 측면, '시간의 배분'이라는 지엽적인 부분만 살핀 것이었다. '아이와 나와의 문제'로만 이 증상을 바라보고, 실제 질병의 원인이 아닌 증상 없애기에만 급급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더 큰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아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관계가 다 '시간'과 같이 유한한 것을 배분해서 수정, 조절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관점이다.

 

코칭을 통해, 아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적으로 내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는 증상들의 궁극적인 원인은 '전체적인 시각에서 디테일을 챙기는 힘의 부족'이었다. 

 

이 원인을 해결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원인을 해결하면 결과는 해결된다. 그래서, 집중해야 할 것은 '원인'이다.

시선을 높이고, 디테일까지 챙기면 보이는 것이 많아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코치님의 사유의 시선에 감탄하면서, 코칭을 마무리했다. 


일단 일상에서 '전체적으로 보되, 디테일을 챙기는' 연습해 볼 수 있는 것 하나를 목표로 설정했다. 하루아침에 이런 깊이를 갖게 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욕심부리지 않고, 매일 조금씩 이해하고 성장하는 태도를 갖기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내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신념(이 글에선 욕망)이 생겼다. 



욕망노트 10 : 전체를 보되, 디테일을 챙기자. 





(주)최진석, 탁원한 사유의 시선, 21세기 북스

* SSWB-ACT Coching 개발 및 마스터코치 :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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