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무민(Moomin)

철학이 있는 캐릭터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by 일상여행가

왜 어떤 캐릭터는 오래 살아남고, 어떤 캐릭터는 잊힐까?

이 연재는 '사랑받는 캐릭터의 비밀'을 찾는 여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첫 번째 사례로 무민(Moomin)을 다룬다. 귀엽기만 한 캐릭터는 많다. 하지만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브랜드가 되는 캐릭터는 드물다. 무민은 그 드문 예외다.



1. 캐릭터의 탄생

무민(Moomin)은 1945년, 핀란드의 화가이자 작가인 토베 얀손(Tove Jansson)에 의해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불안정한 현실과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얀손은 도피처이자 위로가 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무민과 가족들이 사는 '무민 골짜기'다.


하얀 하마처럼 생긴 이 캐릭터는 단순히 귀엽고 친절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기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관계 속에서 갈등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Moominland Midwinter』에서는 무민이 가족 없이 홀로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이 낯선 계절 속에서 그는 외로움, 두려움, 분노를 겪으며 점차 자립을 배워간다. 이 시기의 무민은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직면하고 해석할 줄 아는 주체로 변화한다.


“He stood quite still and listened to the snow falling. It fell with a soft whispering sound, a little at a time, in no hurry. That was the way everything ought to be done.”
– Tove Jansson, Moominland Midwinter, 1957
"그는 가만히 서서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조용히 속삭이듯 조금씩, 서두르지 않고 내렸다. 모든 일은 그렇게 이뤄져야 한다고 느꼈다."



2. 콘텐츠로의 확장

무민의 시작은 출판이었다. 1945년 첫 소설 이후, 무민은 곧 신문 연재만화로 확장되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로 재해석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핀란드를 비롯해 일본 등에서 각국의 스타일을 반영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브랜드 확장도 폭넓다. 핀란드의 무민월드(Moominworld)와 일본의 무민밸리파크(Moominvalley Park)는 테마파크이자 무민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출판, 애니메이션, 전시회뿐만 아니라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인 아르텍(Artek), 이케아(IKEA), 아라비아(Arabia) 등과의 협업은 무민을 감성적이면서도 상업적인 브랜드로 안착시켰다.


특히 핀란드 도자기 브랜드 아라비아(Arabia)와의 협업 제품은 매 시즌 무민의 특정 서사나 감정, 자연 속 정서를 담은 삽화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장면 삽입이 아니라, 각 제품이 무민 캐릭터의 감정이나 성장 서사를 상기시키는 장치로 작동해 소비자에게 감성적이고 사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무민은 철저히 원작의 세계관과 철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확장을 시도해 왔고, 그 일관성은 브랜드로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5년에는 무민 탄생 80주년을 기념해, 북유럽 모더니즘 가구 브랜드 아르텍(Artek)과의 협업도 이루어졌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스툴과 캐비닛에 무민 드로잉이 레이저로 새겨졌으며, 실내에 감성과 이야기를 더하는 오브제로 주목받았다. 특히 이 협업은 실용성과 서사를 동시에 담아내며, 일상적인 가구에도 캐릭터 세계관이 녹아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https://www.artek.fi/en/collections/artek-moomin



3. 일상 속의 무민

무민은 오늘날 더 이상 동화 속 캐릭터에 머물지 않는다. 디자인 오브제, 카페 브랜드, 문구류, 패션, 홈 인테리어 등 다양한 형태로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무민이 국가 브랜드 자산처럼 활용되며, 관광 안내소나 기차역 디자인 등 공공 서비스 홍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북유럽 감성'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으며 감성 소비의 대표 아이템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감성은 단순한 귀여움에만 기대고 있지 않다. 무민 브랜드의 톤은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사색적이며, 제품에 종종 삽입된 문장들은 독자에게 깊은 정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든 것이 아주 조용했지만, 나는 그 침묵을 사랑하게 되었어" 같은 문구는 제품 그 자체가 철학적 정체성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민밸리파크는 단순한 놀이공간이 아니라, 무민의 내면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몰입형 공간이다. 예를 들어, 『Moominvalley in November』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방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Moominpappa at Sea』 속 무민 아빠의 외딴 등대를 모티프로 삼은 전시가 구성되어 있어, 관람객은 무민 서사 속 감정과 상징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Moominpappa at Sea』는 무민 캐릭터의 감정적 성장을 가장 깊이 있게 다룬 작품 중 하나다. 무민은 외딴섬에 머물며 외로움과 감정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차가운 존재로 보였던 그로크(The Groke)를 두려워하지만, 반복되는 만남을 통해 그녀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결국 감정적 유대감을 느낀다. 이 작품은 단순한 유아용 콘텐츠를 넘어, 타인의 고통과 외로움을 인식하고 포용하는 존재로 무민을 그려낸다.


“He realized that one couldn’t be angry with someone who was unhappy.”
– Tove Jansson, Moominpappa at Sea, 1965
"그는 불행한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4. 그래서 무민은 왜 지금도 사랑받는가?

무민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귀엽고 친숙한 외형 때문이 아니다. 무민은 철학적 서사를 지닌 캐릭터다. 그는 불완전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Moominvalley in November』에서는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지만, 부재를 통해 남겨진 이들은 각자의 정체성과 감정을 돌아보게 된다. 특히 토프트(Toft)는 무민 가족을 기다리는 동안 상상 속 완벽한 가족상에 의문을 품고, 결국 그들의 결점조차 이해하며 진정한 성숙을 경험한다.


“Toft, left alone to wait for the return of the Moomins, finally realises how the view of the family which he had developed in his imagination is too perfect to be real...”
– Tove Jansson, Moominvalley in November, 1970
"무민 가족의 귀환을 기다리던 토프트는, 자신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가족상이 현실과는 너무도 다르며, 지나치게 완벽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독자는 이를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도 이상화보다 수용과 이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이러한 철학은 무민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감성적인 디자인, 은유적 문장, 정서적 분위기, 체험형 공간 등을 통해 일관된 세계관과 철학적 메시지를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무민이 콘텐츠를 넘어 브랜드로서 살아남는 이유다.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 철학적 메시지는 방향성이 된다. 철학이 없는 브랜드는 감성 소비의 유행에 편승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체 가능한 것으로 잊히기 쉽다. 반면 철학이 있는 브랜드는 시대가 변해도 일관된 메시지와 태도로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다. 무민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철학은 브랜드가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중심축이자, 지속 가능한 정체성의 핵심이다.


무민은 콘텐츠와 브랜드의 경계를 허물며, 철학과 감성을 함께 전달하는 보기 드문 사례 중 하나다. 그는 반복 가능한 이미지와 일관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제품군으로 확장되었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핵심 메시지를 잃지 않았다. 감정의 복잡성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보다 내면적인 울림을 전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무민은 세대를 초월해 지속적으로 소비되고, 깊이 있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콘텐츠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질문

이 콘텐츠에는 반복 가능한 정체성과 세계관이 존재하는가?

감성 소비 이상의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확장할수록 오히려 정체성이 선명해지는가?

지금 당장의 소비보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을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매주 목요일,
좋아하는 것을 브랜드로 만드는 캐릭터 이야기
《사랑받는 캐릭터의 비밀 – vol.1 유럽 편》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andlike-me

감성과 전략이 만나는 순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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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 Unsplash의 Anastacia D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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