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터의 기쁨과 혼란
나는 퍼실리테이터로 일하며 종종 초, 중, 고등학생 나이의 아동 청소년을 만난다. 아이들을 만나고 올 때면 성인 참가자들과의 만남과는 다른, 훨씬 복잡한 감정이 남는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나를 찾아온다. 그들의 성향과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가정과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찰나의 표정과 반응 속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혹은 어떤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지 유추하게 된다.
얼마 전, A라는 아이를 만났다. 매달 진행되는 정기 프로그램의 참여자인 A는 항상 나를 설레게 했다. "오늘도 A가 오겠지?"라는 기대감을 안고 교육 준비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A는 언제나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수줍음 없이 먼저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선생님, 어제는 이런 걸 했어요!"라며 아기새처럼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A는 내게 스킨십을 자연스럽게 건넸고, 그 따뜻한 손길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교육 중에 A에게 "이해력이 정말 빠른 것 같아"라고 칭찬하자, A는 자연스럽게 "맞아요, 엄마도 제가 룰 북이나 설명서를 빨리 이해한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칭찬을 부담스러워하지도, 과하게 자만하지도 않는 그 태도는 분명 가정에서 긍정적인 관심과 칭찬을 익숙하게 받아온 결과이이다. A의 부모님은 공지방에서도 자주 감사 메시지를 남기는 분들이었다. 분명 부모님의 긍정적인 표현이 A에게 건강한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그러나 B는 조금 달랐다. B는 만날 때마다 부정적인 말을 던지곤 했다. "좋아하는 게 뭐야?"라고 물으면 늘 "없어요"라고 대답했고, "잘하는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도 "없어요, 저는 다 못해요"라고 답했다. 그의 말은 차가운 벽처럼 나를 막았다. 다른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에서도 B는 주로 비하 섞인 농담을 던졌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B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친구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B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면, 내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한 달에 한 번, 고작 2시간 동안 그들의 깊은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가능한 긍정적인 언어로 아이들의 고유한 장점과 아름다움을 찾아주고 싶다. 세상은 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던질지 모르지만, 나는 그 안에서 빛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발견하고 싶다.
사람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알아간다. 서로의 시선 속에서, 그리고 그 시선이 나를 어떻게 비추는지에 따라 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에 만난 한 아이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그룹 활동 중 친구들이 그의 그림을 칭찬하자, 그제야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그 아이는 자신 있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작은 상호작용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자기 인식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때로는 자기 세계에 갇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의 의견에는 귀를 닫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다. 대화란 나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이라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또한 배워야 할 과정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서 나와 다른 시각을 발견하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비록 나와의 만남이 짧더라도, 그들이 소통을 통해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고,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길 기원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작은 관심과 격려의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 말들이 언젠가 그들의 마음속에 씨앗이 되어 자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