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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Mar 16. 2024

행복 정류소

장날이라 차를 가지고 내려가다가

마을버스 정류소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두 분을 보곤

"장에 가실 거면 타세요" 하고 봤더니

아랫집 할머니다

지난 가을에 할아버지를 여의셨다

조의금을 들고 찾아간 날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반갑게 맞이하던 주름진 손

 다음 날 고맙다며 귤 한 상자를 들고

인사를 하러 들리셨었다

여동생을 불러 같이 사신 다더니

두 할머니는 버스 기다리다가

승용차를 얻어 타게 생겼다며

횡재했다고 좋아라 하신다

그 얼굴엔 할아버지를 사별한 슬픔 따윈

보이지 않으니 조심스러웠던 내가

오히려 무안해졌다

병간호 내내 힘들었다는 얘기를

간간이 입 밖으로 내시면서도 마냥

홀가분해 보이시는 얼굴로

같이 늙어가는 나를 새댁이라 불러대어

곤란하게 만든다

남의 집 가정사야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병자를 간호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밖으로만 보이는 관계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고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인지라

내게는 이른 아침 해가 뜸과 동시에

밭을 갈고 흰 물방울이 포물선을 그리며

무지갯빛을 만들어 물을 주시던

행복한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버스정류소에 앉은 두 할머니의

되직한 삶을 내려놓은

훌훌한 웃음소리 위로

할아버지의 아침해가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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