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 빨강 노랑
미끄럼틀 위에
주르륵주르륵
또로록 또로록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른 채
덩실덩실 높이뛰기 중이다
지친 퇴근길
아내가 준비하는 김치찌개를
읊조리며 벌렁벌렁 벌어지는 콧구멍으로
웃음 지는 아저씨
오늘 시험 망쳤다며
친구들과 수다 떠는
사춘기 여고생
비를 피해 요리조리
뛰어가는 발자국들이
번잡스럽던 하루를 거두어 간다
나 잡아봐라 도망가도
바짓단에 운동화끈에
본드처럼 달라붙는
저 투명한 미소들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 젖었어"
"여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 젖었어"
하고 뛰어들어와 콧구멍으로
반기는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에
그제야
평온한 이 집에서
긴 장마의 축축한 냉기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