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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Nov 09. 2024

산골의 겨울준비

이맘때면 항상 지인의 농장에서 대봉감을 따와서 곶감을 만들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작황이 좋아서 많이 따올 수 있었만  곶감의 숫자를 줄이고 홍시로 만들어 먹기로하고 감용  감들은 서둘러 껍질을 벗겨

꽂이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나머지는 수채화 선생님께도 대봉감을 조금 드리고 학우들께도 나누어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나도 공짜로 얻은 것이라 이런 나눔은 당연하며

널널하지 못하게 살아온 지난날에 비하여 줄 게 있다는 것은 언제나 감사하다.

산골의 겨울준비는 곶감 만들기를 시작으로 김장을 하면 끝이 난다.

이집저집 모여서 하는 김장잔치는 작년부터 없어져버렸고 집집이 단출해진 식구에 먹을 사람이 없다 보니 예전처럼 배추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수다 떨어가며 김이 펄펄 나는 수육에 벌건 김치하나 죽 찢어서 먹어대던 이야기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꼴랑 모종 몇 개 사다가 심어놓은 배추는 기온이 계속 너무 올라서 벌레들의 대환장 파티장이 되어버려 몇 포기나 건질는지 그것도 미지수다.

이곳에선 자연이 주는 대로 감사하게 넙죽 받아먹는 것에도 이젠  익숙하여 나방애벌레, 달팽이. 사마귀까지 달라붙어  배춧잎이 너덜너덜 해 질 때까지 배부른 그들만의 잔치 중인 것을 바라보며 그저 웃을 뿐이다.

먹는 것에 욕심이 없어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저 하루 세끼 살아가기 위하여 의미 없이 숫자를 채운다.

탱탱하게 반짝이던 주홍빛 대봉이 바람과 햇빛 속에 맨살의 핏물을 내어주고 쪼그라들어 또 다른 명품 곶감을 만들어내니 나 역시 피 한 방울씩 짜내며 지내온 살얼음판 같던 세월을 연민하는 몸뚱이로 숙연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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