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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15. 2023

부모님을 보지 않고 지낸 세번째  어버이날

5월만 되면 아빠는 이상하게 늘 화가 나 있었습니다.

'가정의 달인데 이것들은 여전히 지들밖에 모르지. 부모 생각은 하나도 안하고 밖으로 나돌 생각이나 하고. 하여튼 애새끼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니까. 에이, 거지같은 새끼들. 내가 지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평생 고마워해도 모자를 판에...' 


5월 내내 아빠는 이런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는 했어요. 돈을 줘도 선물을 줘도 늘 탐탁치 않은 얼굴.. 가족과 연락을 끊기 전에는 부모님을 보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습니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분노가 차오르는 아빠를 보면서 저는 어서 빨리 내 할 도리만 다하고 집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즐겁게 지내.



부모님을 뵙지 않고 어버이날을 보낸지 벌써 세번째 해가 지났고 올해는 유독 엄마의 문자가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버이날이지만 저는 집에 가지 않고, 엄마에게 간단히 문자만 보냈습니다. 일부러 더 밝게 보내려고 단어를 골랐습니다. 이제는 선물을 보내려고 고민하거나 용돈을 보내려고 엄마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건데 뭘 해도 마음은 그대로 불편하고 엄마는 여전히 공허할 테니까요. 참 못된 딸이죠? 


가족과 연락을 끊은 첫 해는 돌아오는 어버이날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죄책감때문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했죠. 살면서 한 번도 아빠 말을 거역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혹시나 전화가 울릴까, 문자 폭탄이 날라오는 건 아닐까, 내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 그 날은 회사일을 바쁘게 하면서 어버이날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두번째 어버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은 줄었지만 죄책감은 여전했습니다. 지인들이 가족모임을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착잡한 기분을 감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굳이 내 얘길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나도 부모님을 뵙고 온 것처럼 적당히 거짓말을 둘러대다보니 5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엄마의 문자를 바라보며 따끔거리는 목과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있었습니다.

시댁에는 어버이날 전 주말에 미리 다녀왔습니다. 시부모님을 뵙고, 용돈을 드리고, 외식도 하고, 하하호호 웃었지만 내내 엄마 생각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었습니다.


시부모님도 제가 친정을 가지 않는다는 걸 모르십니다. 누구도 쉽게 이해해줄 상황이 아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잘 계시는지 여쭤보실때마다 그저 그렇다고 대답할 뿐입니다.

시부모님께 대단한 효도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찾아뵐때마다 엄마 생각에 마음이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 무겁습니다. 


이게 뭐라고, 우리 부모님은 이런 것도 못 누려볼까. 

그저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먹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사소한 기쁨도 느껴보지 못하는 걸까. 

참 자식복도 없는 분들입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한 뒤로는 친척들도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다더군요. 

한 달에 한두번 골프를 같이 치던 몇 안되던 지인들도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고 있고요. 

아빠 성격에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연락을 하지도 않겠지요. 그저 괘씸하다고 욕을 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를 향해 억울하다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다 저들이 배은망덕한 것들이라고 소리없이 울부짖겠죠.  


아빠는 고요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원하던 바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버이날, 가족 생일, 명절 같은 날들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과연 이 기분이 조금은 누그러질 날이 올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생 어차피 혼자라곤 하지만 이런 날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 또한 제가 감내해야하는 감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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