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알려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직한 지 한달이 막 지났을 무렵 파트장이 나에게 말했다. 불만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내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다.
전임 팀장은 내가 입사하기 한달 전 퇴사를 했다. 한달 간의 팀장 공백기를 거친 팀원들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당연히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지만 게의치 않았다. 일은 하면서 익히는 스타일이었고, 이 회사에 5년 이상 다닌 팀원이 3명이나 됐다. 익숙치 않은 프로세스는 그들에게 물어보면서 업무 파악을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백통이 넘는 메일과 시도때도 없는 회의, 그 사이 회사 중진들 앞에서 PT까지 하며 나 또한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인 것처럼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에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나름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팀원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팀원이 새로운 팀장에게 호의적인 기간은 딱 한달까지다. 그 기간 동안 팀원들은 그가 빨리 적응하도록 최대한 협조적으로 팀장을 돕는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팀장이 적응 속도가 느릴 때 누구보다 냉정하게 돌아서는 것도 팀원이다.
- 왜 이것도 모르지?
- 왜 똑같은 걸 또 물어보지?
- 전 팀장님이 하던 걸 왜 새로온 팀장은 날 시키지?
서서히 불신이 싹트고 순식간에 오해가 거대한 파도처럼 팀 전체를 덮친다. 팀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는 팀원이 정리해서 가지고 와야지.' 반대로 팀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것도 못하면서 무슨 팀장이야?' 다시 팀장은 생각한다. '그런거까지 다 하면 팀원이 왜 필요해?' 팀원도 생각한다. '그럼 팀장은 컨펌만 하는 사람인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의 사슬은 끊을 수 없다.
팀장과 팀원은 서로의 입장을 100%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서로가 추구하는 팀원, 팀장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팀원은 팀장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오직 팀장의 몫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 역시 팀원의 입장일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결정을 못하는 팀장이 우유부단하고 답답하다고 여겼는데, 팀장이 되고 보니 팀장의 권한이 멸치 똥만큼이나 작고 보잘것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만든 자료로 보고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낱장짜리 PPT에서 임원을 설득할 논리와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 걸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100% 이해할 수 없다.
가장 빠르게 팀원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업무 장악이다. 업무의 디테일까지 알아야 장악이라고 볼 수 있다. 직접 실무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소한 그 업무가 돌아가는 프로세스와 현황파악은 되어야 업무 컨트롤이 가능하다. 업무에 대해 파악이 끝나면 그 팀원의 실력까지도 금새 파악된다.
이직 후 3개월 내로 모든 팀원의 업무 파악을 마쳐야 한다. 그 기간 동안 팀원들과의 불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시해도 좋다. 어차피 업무 장악이 끝난 뒤에는 불화는 저절로 잦아든다.
팀원이 팀장을 무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팀장의 입장에서는 굳이 세세한 것까지 알 필요가 없을 수 있지만 이직한 경우라면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챙기는 것이 좋다. 물론 파악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스텐스대로 팀을 끌고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