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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Mar 14. 2022

엄마의 쌀조리

살림잼병 엄마에게서 기억나는 살림살이

아이유의 가을 아침에 이런 가사가 있다.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 구수하게 밥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중학교를 다닐 즈음 그만 일어나라는 엄마의 다그침에 부스스하게 거실로 나가면 엄마는 항상 파란 손잡이에 노란체망의 쌀조리로 쌀을 살살 일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급식을 하기 전까지 엄마는 아빠 도시락 1개, 야자까지 하는 오빠 도시락 2개, 그리고 내 도시락 1개를 매일 아침마다 준비해야만 했다.

지금 엄마가 된 내가 그때 그 시점을 떠올려보면 당시 친정엄마는 정말 노랫말처럼 분주하고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심지어 엄마는 요리잼병이다.


“주말에 와~ 엄마가 맛있는거 사줄게! 해주는 건 못해~”

지금도 엄마는 너무도 당당하게 집밥은 못해줘도 사주는 건 가능하다며 주말에 함께 식사하기를 청한다.

그 파워당당함에 살림잼병인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았다.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열일워킹맘이다.


가끔 이른 나이에 결혼해 살림도 육아도 너무 서툴렀던 시절, 친정엄마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야속했다.

살림에 경험도 체계도 없는 내가 닥치는 대로 엉망진창 부대끼며 배워온 얄팍한 실력으로 육아까지 해내야 했다.

살림잼병 엄마에게서 배운 살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싱크대 앞에서 쌀조리로 쌀을 일고 있는 모습은 불쑥 선연하게 떠오른다.

왜일까.

엄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워킹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 살림을 하고 ‘요리 잼병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4개를 6일 동안 싸며 그 시간들을 버텼던 것이다.

매일 아침 쌀조리로 쌀을 일어내며 엄마는 이 고단한 시간이 언제 지나가나 수없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당연하게 급식을 하고 외부 체험학습을 할 때도 카드나 현금을 챙겨 점심을 사먹는다.

집에서 싸가는 도시락의 개념이 아예 없을 정도다.

아주 간혹 김밥을 싸야 할 때도 아침 일찍 동네 김밥집에 가면 아는 얼굴 여럿이 빈 도시락통을 들고 모여 “여기 담아주세요”라고 입을 모았다.

시대가 변했다.


의아하게 나는 마흔을 넘었다.

엄마는 가끔 “내 딸이 왜 4자를 달았어~?”라며 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나는 엄마의 딸인데 그 속을 마흔을 넘기고서야 더듬기 시작했다.

나의 이른 결혼을 엄마는 무척 안타까워했다.

싱크대 앞에서 동동거리며 견뎌야 하는 그 살림의 무게를 굳이 이르게 경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더없이 철부지였던 내가 그 깊은 속내를 알리 만무했다.


엄마의 쌀조리가 쌀을 일어 돌을 걸러내 듯 나는 17년 살림 내공을 쌀조리 삼아 마음을 일어 고단함을 걷어내고 차츰 편안해지고 있다.

엄마에게서 배운 살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엄마의 쌀조리는 마음에 품고 퍽 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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