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시에서 기사님과 주로 만담을 즐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인데, 지난 주말에는 택시에서 69학번의 기사님을 만났다. 서울의 어느 문과대학에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다닌 대학 시절을 이어가셨다. 안암에서 국립묘지까지 교내 마라톤을 한 이야기부터, 대학 때 살던 정릉이 어떻게 변했는지 마치 작년의 일처럼 이야기하셨다.
그 대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목은 데모에 참여한 경험이었다.
"우린 그 때 공부보단, 데모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아 시위에 참여하셨었어요?"
"그 때, 삼선개헌때문에, 반대한다고 시위에 나갔죠...공부를 할 수 없었지. 휴강하고 다 나가고 그랬으니까"
"...두렵지 않으셨어요? 잡혀갈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스크럼을 짜고 같이 있었으니까"
학교 정문에서 대오를 만들었지만, 안암오거리까지 가서 막혀버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참여의 대가는 가혹했다. 당시에는 혜화에 있던 대공분실에 잡혀서 강도 높은 취조를 받고,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셨다고 했다. 그 시대에는 비일비재했다고 덧붙이셨지만, 덤덤한 말 속에 오랜 시간 침식된 작은 응어리가 보였다.
그 때 그들이 '같이' 모여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며" 지금에 까지 왔다. 바위는 깨졌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깨진 계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같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어느 시대에서든지 필요로 하는 순수한 '연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