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던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진다. 1869년 프랑스 북부 캄브레시 출생 후 스무 살 때까지 법률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 1892년 파리로 가서 미술을 공부하고 인상파, 세잔, 신인상주의 등을 잇따라 탐구했다. 프랑스 남부로 떠난 그림여행에서 화가 앙드레 드랭과 함께 혁신적인 회화기법을 발전시켰고, 이후 이들은 '야수파'라 불리게 된다. 여러 공간 표현과 장식적 요소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1932년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를 시도했다. '조화, 순수, 평온이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던 그의 그림은 늘 행복을 추구했으며, '심화된 삶의 이미지'였다. 50년 동안 회화, 조각, 드로잉, 그래픽 아트 작품을 제작한 뒤 1954년 니스에서 타계할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품으로 <모자를 쓴 여인>, <춤>, <붉은 화실>, <폴리네시아 하늘>, <수영장>, <이카루스> 등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스케치를 하며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지내고 싶다.
마티스가 스케치한 그림들은 하나같이 인간적인 라인이 일품이다.
무심한 듯 그리는 그의 라인은 살아있는 야수의 눈빛을 닮았다. 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신없이 쳐다보게 만드는 그림이 많다. 다른 그림들도 라인의 느낌이 매우 고급스럽다.
마티스를 비롯한 일련의 예술가들이 야수파라고 불린 이유는, 색채를 야수처럼 파워풀하게 쓴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본래 사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색을 무시하고, 작가가 느낀 주관적 감정에 따라 색을 마음대로 쓴 것이기 때문. 이것이 모더니즘의 정신인 반항과 일맥상통한다. 작가가 색을 선택한다는 생각을 바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혹자가 여자를 못 그렸다고 말하자,
"나는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실제 세계의 사물을 그대로 옮겨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림으로 그린 것임을 밝힌 것.
그의 자화상을 통해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77세로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은 1941년부터는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기법으로 예술에 활기를 더했다. 그림을 그리는 대신 채색된 색종이로 형태를 만들어서 붙이는 기법이었다.
마티스는 1930년대 초부터 그의 모델이었던 리디아의 보살핌을 받으며, 니스가 내려다보이는 시미에의 레지나 호텔에 있는 널찍한 화실에서 살았다.
화실에 놓인 침대에 누운 채 기다란 장대 끝에 묶은 크레용의 도움으로 벽화 크기의 대형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많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창조력이 약해진 조짐이나 슬픔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 작품들은 그가 평생 동안 그린 그림들 가운데 가장 대담하고 완숙하며 평화롭고 낙천적이었다.
명화를 따라 그려보는 것은 그림에 많은 도움이 된다.
왜 이런 라인을 그렸을까? 색은 왜 이렇게 썼나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사이 화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한걸음 성장하는 기분마저 느끼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좋은 자극을 주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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