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립미술관
오션 07-1
Ocean 07-1, 2002
printed 2003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30×102 cm
구본창 작가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진의 시작과 전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가 작가이자 기획자로 개최한 《사진 새시좌(포)》 (1988.5.18.-6.17. 워커힐미술관, 서울)에 출품된 작품들은 '연출 사진(making photo)'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한국 사진계와 미술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사진이 객관적 기록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예술 세계라는 인식은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며 한국 현대 사진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아 용기 내 먼 항해를 떠났던 1979년에서 4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구본창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었고, 전시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그간 작업을 위해서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고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녔으며, 원하는 대상을 만나기 위해서 수년에 걸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하지만 기꺼운 여정 끝에 다다른 눈부신 결과입니다. 그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기획자로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 사진의 세계화에 이바지했고, 한국 사진계의 선배, 동료, 후배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렸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작품활동으로 사진을 현대미술의 장르로 확장해 온 구본창 작가의 회고전은 여러모로 유의미한 전시입니다.
'구본창의 항해'를 따라 너와 나,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1877-1962), 데미안 (1919)
일 분간의 독백
One Minute Monologue, 1980 - 1985
printed 1985
CE Cibachrome print
11 x 17 cm (4) (x 2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MMCA Collection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정지된 시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지된 시간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정지된 물건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시선은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그래서 정지된 현실적인 상황이 담긴 사진은 기이하게 보인다.
그 기이한 모습이 찰나적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매우 편협한 사고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사진을 작가는 4컷의 사진을 통해서 좀 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개념은 점점 더 후기로 갈수록 과감하게 시도된다.
재미있는 시도인 것 같다.
단순한 것도 반복되어 뭉쳐 있으면 의도가 살아난다.
사진에 질감을 더하는 시도 역시 무척 과감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토대로 새롭게 콜라주를 한 느낌이 든다.
이 당시 이런 시도는 무척 파격적이었을 듯
평면에 입체감을 더하는 작업에 영감을 얻는다.
요즘 더 소중해진 듯하다.
태초에 10-3
In the Beginning 10-3, 1995 - 1996
종이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와 바느질
Gelatin silver photograph with thread on paper 177 × 480 cm
무엇보다 스케일에 놀라웠다. 게다가 바느질로 이어진 사진이라니,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다.
1995년에 이런 작업을 했다는 상상을 해보니 더 놀라웠다.
전체 이어진 느낌은 부감의 형태로 마치 자기 자신의 팔과 다리를 보는 앵글이다.
제목에 '태초에'라고 지으신 걸 보면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일까?
굉장히 압도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는 부패하고 사라지고 재생되고 순환한다. 그리고 그 시간과 삶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와 흔적이 남는다. 나는 이 자국들을 더듬어 의미를 찾아내고 싶다.
단순한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와 생명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다.
나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렌즈 너머로 펼쳐진 화폭 안에 시적인 함축을 담으려 한다.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순간들에 인위적인 파격을 가하지 않고 스트레이트 하게 찍지만, 오히려 추상에
가까워진 단순화된 이미지 속에는 더 깊은 공간과 많은 이야기와 흔적들이 담긴다."
-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컬처그라퍼, 2014)
하나의 세계
구본창은 1992년 『조선일보 기사 「나비학자 석주명 () 유고집 완성』을 접하고 나비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이후 작업의 대상을 보편적 인간에서 곤충, 동물 등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로 확장해 <로스트 파라다이스>(1992), <굿바이 파라다이스〉(1993)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어 그즈음에 접했던 전쟁, 재난을 반영한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1994-1995)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포토그램 기법을 사용하거나 인화지를 불에 태우고 그을리는 등의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해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특히 숨> (1995)
시리즈는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아버지 몸에서 서서히 근육이 사라지고 수분이 빠져나가는 모습, 눈도 뜨지 못한 채 가느다란 가까스로 내쉬는 숨, 생명의 안간힘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죽음으로 관념에 머물던 죽음이 실체로 다가온 이후, 깊은 침잠의 시간을 보낸 뒤 제작한 작품 <시간의 그림> (1998-2001), <리버런> (1998), <오션> (1999-2005), <화이트> (1999-2007), <자연의 연필〉(2000-2001), <스노> (2001, 2011), <비누> (2004-현재) 시리즈는 오히려 자연과 삶의 순환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굿바이 파라다이스 Blue, 1993
숨, 1995
굿바이 파라다이스 Box, 1993
탈, 1998-2003
현장에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들이다. 우리나라 탈이 이렇게 멋졌나 싶다.
흑백이라 더 강하게 느껴진 것도 같다.
오 카리스마~
백자, 2004-2006
다양한 시도 끝에 이른 사진인 것 같았다. 더 이상 군더더기가 없고 망설임이 없어졌다.
단아한 자기의 모습처럼 시선도 단아하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황금> GOLD 2016-현재.
구본창은 2016년에 <황금>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는 2004년 3월, 호주 외무부, 산하 재단으로 설립된 호한재단(Australle- Korea Foundetion, 1992) 요청으로 호주의 사진가 조지 로스(Ceorge Rose, 1861-1942)를 기념하는 사진집 『호주 사진가의 눈을 통해 본 한국 1904』(교보문고)를 감수하면서 시작됐다. 조지는 호주 빅토리아 주 금광 마을 클툰스(Clunes)에서 입체사진을 촬영해 판매하던 사진가로 1904년 서울을 방문했다. 1904년은 러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하는 굴욕스러운 한일 의정서를 맺은 해이다. 로스는 일본인 역사와 서울, 서울 근고, 제물포, 부산, 평양을 다니면서 전통적인 한국 사회와 함께 개 이후 밀려드는 근대화의 표상을 스테레오스코프 (stereoscope) 기법으로 촬영했다. 이 사진을 엮어 사진집을 출간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호주 작가가 교류 전시를 하게 되면서 구본창은 2015년 호주 《클룬스 북타운 페스티벌 2015(Clunes Booktown Festlval 2015)》 (2015.5.2,-5.3, 빅토리아)에서 클툰스를 촬영한 사진 작품을 전시했다. 이를 위해 1850년대 골드러시 (gold rush) 전성기를 지나 쇠퇴한 금광 마을에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북타운 중 하나가 된 클룬스의 역사를 공부하고 옆 도시 밸러(Ballarat)의 황금박물관 (Gold Museum)을 방문하면서 금에 관심을 두게 됐다. 다음 해 2월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 있는 사진 학교인 이미지 센터(Centro de la Imagen peru) 초청으로 특강을 진행하고, 페루 황금박물관(Museo Oro del Peru)을 접촉해 황금 유물을 촬영하면서 <황금> 시리즈를 시작했다. 페루는 15세기부터 중앙 안데스 지역을 지배했던 잉카제국이 16세기 초까지 번성했던 곳으로,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고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고대 페루인들은 수 세기 동안 그들의 신과 태양의 상징을 금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금은 시장 가치가 아닌 상징적 가치로, 이는 하늘의 세계, 인간의 세계, 그리고 죽은 조상들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스페인 대항해시대인 1592년 에스파냐 왕의 지원으로 프란시스코 피사토(Franclsco PIzerro, C.1475-1541)가 잉카제국을 정복했다.
이후 여기서 생산된 금 대부분이 수달 돼 에스파냐 왕가의 수입원이 됐다. 황금박물관은 미 무히카 가요(Miguel Mullce Gello, 1910-2001)라는 실업가가 사재로 40여 년간 수집한 페루 고대의 황금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약 6,00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에스파냐가 수해 간 황금 유물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의 유산이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황금의 나라는 신라였다. 신라는 4세기 중반 마립간(麻立干)이라는 지배자를 중심으로 고대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경주 시내에 남아있는 거대한 무덤들은 바로 마립간 시기의 왕과 왕비 그리고 귀족의 무덤들이다. 마립간과 그 일족은 금관 등 금·은 금동으로 화려하게 세공을 한 여러 가지 장신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였다.
황금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황금 문화는 처음에는 경주에만 한정되었다가 황남대총 남분이 만들어지는 시점에는 지방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신라의 화려한 황금 문화유산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파헤치기 어려운 고분의 돌무지덧널무덤 구조 덕분이었다.
6세기에 접어들자, 신라는 지방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겪었다. 이에 따라 장례 의식도 바뀌면서 더 이상 무덤의 규모를 크게 만들지 않았고 금 공예품을 비롯한 부장품의 양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구본창은 천마총 발굴 황금 유물을 촬영하고자 7년을 기다린 끝에 2023년 5월 경주 천마총 발굴 50주년 특별전시 천마, 다시 만나다》 (2023.5.4.-716, 국립경주박물관)를 위해 천마총 금관, 금제관모, 금제관식을 촬영한 천마총 황금 시리즈를 제작했다. <황금> 시리즈는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 원소인 금으로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 귀한 유물로 남은 대상을 담되, 금색 지를 배경으로 빛을 정교하게 조절함으로써 고대인들의 바람처럼 그들의 영혼이 내세에도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나씩 다시 크게 보니 정말 달리 보이네요.
액자 프레임도 금색이란 게 역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비무장지대> DMZ, 2010-2019
구본창은 2010년, 1990년대 초중반의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시리즈처럼 전쟁, 수탈과 같은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사물을 대상으로 촬영한 작품 시리즈를 시작했다.
〈비무장지대〉 시리즈는 2010년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사진가의 눈으로 6•25 전쟁의 상흔을 기록해 달라는 국방부의 요청으로 제작됐다. 평소 작업방식과도 부합하는 전쟁 관련 사물을 촬영하기로 하고 전쟁기념관을 찾아 전쟁 당시 참혹함을 간직한 수많은 유품과 잔해를 본다. 이를 둘로 나눠 하나는 전쟁 당시 사용된 총탄, 단검, 지뢰 등 살상 무기를, 다른 하나는 참전 군인이 사용했던 철모, 군화, 회중시계 등 유품을 촬영했다.
젊은 나이에 국가를 위해 가족과 미래, 두려움을 뒤로하고 전장에 나서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영혼과 그 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고,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으로 여전히 비무장지대가 유효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일깨운다.
어떤 물체는 그저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생긴다.
하나하나의 물건들이 현장을 연상하게 단서를 제공해 준다.
사진으로서의 기록은 그저 물체를 잘 보이게 찍는 게 아니라 작가의 눈으로 물체가 전달하는 진실된
메시지를 포착하는 순간을 담는 연속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6.25의 상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콘크리트 광화문〉
CONCRETE GWANGHWAMUN 2010
구본창은 2010년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경복궁을 찾았다가 야외에 놓인 콘크리트 광화문 부재를 발견하고 이를 촬영했다. 조선 개국과 함께 1395년 (태조 4년) 경복궁 정문으로 세워진 광화문 (*AP9)은 '빛이 널리 비춘다'라는 뜻으로, 1426년(세종 8년)에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이름이 지어졌다. 광화문은 1592년 (선조 25년)에 발발한 임진왜란(1592-1598) 때 소실됐으나, 1865년(고종 2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도 새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때는 경복궁 흥례문 주변에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을 지으면서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 북쪽으로 이전되었다. 당초 일제는 광화문을 없애려고 했는데, 국내 지사(志士)가 반발하고, 일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柳宗悅, 1889-1961)가 일본 잡지 『개조 (改造)에「사라지려 하는 한국의 한 건축에 대하여」(1922)라는 글을 기고해 "어떤 민족(民族)이 이런 위엄 있는 건축을 만들었느냐"면서 광화문 유지를 적극 옹호했다. 그의 글은 영어로 번역돼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마침내 일제는 계획을 바꾸어 이를 이전 건축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문루 (門樓, 아래에는 출입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가진 건물) 부분이 소실됐다. 이후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문화유산 복원 사업을 적극 추진했던 박정희 군사독재 시기인 1967년 광화문 복원을 추진, 1968년 남아있던 광화문의 석축을 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으로 이전했는데,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목조가 아닌 철근 콘크리트로 문루를 복원했다. 다만 전체를 일체화해 타설 하기 어려워 부재별로 제작해 조립하는 전통 목구조 방식으로 세워졌다.
이후 1991년 경복궁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광화문 역시 2006년 12월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해체됐고, 해체 이후 주요 콘크리트 광화문 부재는 경복궁 경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됐다가 2011년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관됐다. 주요 부재는 주심포, 주간포, 귀공포, 추녀, 여장, 반자, 계단 등으로 구본창은 이 중 여섯 개의 부재를 낮과 밤에 촬영했다. 이번 전시에서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아픈 역사로 점철된 광화문 부재를 담은 <콘크리트 광화문〉 시리즈를 최초로 선보인다.
열린 방
구본창은 1979년 독일 유학을 시작하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투영해 낯선 유럽 도시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은 <초기 유럽> 시리즈를 제작했고, 1985년 귀국해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다시 이방인이 되어 생경하게 느껴지는 서울의 곳곳을 카메라로 기록한 <긴 오후의 미행〉을 제작했다. 이러한 도시 스냅사진이라는 초기작품의 연장선에서 그는 가장 최근 작품으로, 1996년부터 다양한 해외 여행지에서 꾸준히 촬영해 온 스냅사진 중 주요 작품을 선별해 <익명자>(1996-현재) 시리즈를 발표했다.
'익명자'는 '익명의, 미지의, 미행의'라는 뜻을 가진 인코그니토(incognito)의 명사형으로 그 자신을 가리킨다. 그가 익명자로서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며 발견한 대상, 풍경을 포착하는 것은 그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는 행위의 기록으로, 하루하루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될 〈익명자〉 시리즈가 있는 '열린 방'은 이번 회고전이 항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항해의 시작으로 향해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즐겨 읽었던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저서 데미안』 (1919)의 한 구절처럼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이란 게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구나 싶습니다.
사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