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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빛, 바다를 건너다

더 현대 서울 6층 Alt.1 @여의도

by 상상만두 Feb 21. 2025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중 하나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중 하나


인상파라는 이름은 모네의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


한 비평가가 모네의 작품 제목에 빗대어서 조롱의 의미로 붙인 이름이 바로 인상파였다. 그런데 이런 조롱이 인상파라는 새로운 유파를 탄생시킨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알아보는 눈은 드물다. 인상파는 새롭게 등장한 미술 시장의 의미를 가장 빨리 이해하였지만, 그 혜택을 받지는 못하였다. 가장 오래 산 모네 정도나 살아 있는 동안 성공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 뿐이다. 시슬리처럼 가난에 시달리다가 병마로 세상을 떠난 인상파 화가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어려움을 대면해서도 결코 자신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파리에서 인상파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인상파가 알려주는 또 다른 삶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인상파 화품을 배운 미국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인상파 화풍을 발전 시켰을까? 실용적인 문화를 중시하는 미국은 어떻게 인상파 화풍을 발전 시켰는지 궁금해진다.

이걸 이해 하는게 오늘 전시의 중심 메시지인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미국 우스터미술관의 엄선된 인상파 유화 원화를 통해 프랑스에서 시작된인상주의가 미국에서는 어떻게 발전되었는지에 대한 전시입니다.


인상파하면 우리는 프랑스를 떠올리게 되다보니 미국에서 활동했던 인상파 화가들은 낯설수밖에 없고

이번 전시를 통해 미국 인상파 작가를 소개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티아스 바색, 우스터미술관장마티아스 바색, 우스터미술관장

평일 전시 오픈하자마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품을 가리기도 하고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거꾸로 보기로 작전을 세웠습니다.

순서가 꼭 중요한 전시가 아니니 괜찮을듯 합니다.


덕분에 맨 마지막에 있는 우스터미술관 관장님 '마티아스 바색'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전시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인터뷰중 추천했던 그림은 아무래도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역시 예술품은 아는만큼 보이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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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의 설명도 좋았습니다.

가급적이면 영상을 꼭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보기는 뒤에서부터 봤지만 작품은 전시 순서대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전시 카테고리는 벽색을 기준으로 파악 하시면 쉽습니다.

총 6가지 카테고리로 전시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전통에 도전하다

2. 파리와 인상주의 화가들

3. 인상주의의 세계적 확산

4. 미국 인상주의

5. 인상주의 너머 미지의 풍경

6. 개척의 지평


책에서 목차를 먼저 보고 상상을 하고 책을 읽으면 확실히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듯이

전시도 기획자의 의도를 파악하며 작품을 감상 하시면 더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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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모네에서 미국으로: 빛,바다를 건너다


2024년은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지 15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인상주의가 미술사에 끼친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깊이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활동한 소수의 선구적 예술가들은 새로운 회화 양식을 제안하며 전통적인 미술의 경계를 넘어섰다. 이들은 실내 작업실을 벗어나 자연광 아래에서 직접 대상을 관찰하며 야외에서의 작업을 선호했고, 철저히 계획된 구도와 표현보다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직관에 의존했다. 웅장한 역사적 서사 대신 일상적이고 친숙한 장면을, 영원성을 강조하던 기존 미학 대신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며, 유럽 미술의 수백 년 전통을 전복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인상주의를 탄생시킨 급진적 원동력과 그 끝없는 적응 가능성에 주목한다. 당시 파리로 모여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은 이 새로운 양식을 학습한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독창적인 방식으로 변형하여 인상주의의 지리적, 문화적 확장을 이끌었다.

우스터미술관은 설립 초기부터 인상주의를 수용하며 새로운 예술적 비전을 제시했던 선구적 기관이다. 특히 프랑스 및 미국 인상주의 회화로 구성된 소장품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 요소로, 오랜 세월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감동을 선사해왔다.

초대 관장들은 파리의 저명한 화상 뒤랑 뤼엘을 통해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구매했을 뿐 아니라,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수집하여 우스터미술관을 미국에서 인상주의를 동시대 미술로 적극적으로 수집한 최초의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시켰다.

지난 125년간 성장해온 이 컬렉션은 인상주의의 프랑스적 기원과 그 형성 과정은 물론, 미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으로의 세계적 확산까지 아우르며, 전 지구적 맥락에서 인상주의의 진화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메리 카사트, 차일드 하삼, 막스 슬레포크트를 포함한 30여 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인상주의의 국제적 매력을 조명한다.

모네의 지베르니 연못에서부터 그랜드캐니언의 웅장한 자연경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와 장소를 통해 인상주의가 지닌 독창성과 적응력을 탐구하는 장을 마련한다.




1. 전통에 도전하다

Challenging Tradition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 유럽과 미국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탐구하며 독창적인 예술을 모색했다.  프랑스에서는 약 50년 동안 이어진 혁명과 정권 교체 이후, 19세기 초반 사실주의 화가들이 농촌과 외곽 지역을 주제로 삼아 산업화되지 않은 프랑스의 모습을 담았다. 이들은 신화나 성경 같은 전통적인 주제 대신, 평범한 일상을 표현하며 아카데미 예술의 기존 위계를 뒤엎는 혁신을 보여주었다. 


한편, 1800년대 초 미국 예술가들도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기 위해 주변 지역을 주제로 삼았다. 

이들은 사실주의와 낭만주의를 결합해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풍경을 표현했다. 이러한 풍경화는 단순히 지역적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기존 전통 예술에 도전하는 매개체가 되었고 이 움직임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으로 이어지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번 장에서는 인상주의 이전에 

전통에 도전하며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했던 유럽과 미국 화가들의 작품과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풍경화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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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콜 <피렌체 근처 아르노 강의 전망)1837년, 캔버스에 유채, 84.5 X 135.3 cm


영국 출신 이민자 토머스 콜에게 뉴욕 남동부의 캐츠로 산맥을 방문 한 경험은 풍경화에 대한 평생의 열정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가 탄생시킨 허드슨 리버 회피는 유럽 전통미술에 대한 이해를 미국 풍경에 적용시킨 화풍이다. 세일한 사실주의, 장업한 전망, 그리고 때로는 이상화된 표현이 이 화파의 특징이다. 

콜은 직업적인 성공으로 이탈리아로 여행 갈 기회를 얻었다. 이 작품은 그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문화와 목가적인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담고 있다.


멋진 순간을 담아낸 작가의 시선을 상상해 봤습니다.

전형적이라고할만한 모습이지만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너무 멋졌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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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비르질 디아즈 드 라 페냐 <보헤미안의 하강), 1844년경, 캔버스에 유채, 61 X 44.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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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스탕 트루아용 <마을 길>, 1840년대, 캔버스에 유채, 38.1 X 27.9 cm




바르비종파

Barbizon School


바르비종은 파리 근교 퐁텐블로 숲 근방에 있는 작은 마을의 이름이다. 19세기 중반, 이 마을의 야생과 자연을 그리겠다는 열망으로 화가들이 바르비종을 찾았는데, 이들을 가리켜 바르비종파라고 한다.

그들은 자연을 이상화하거나 감정적으로 과장하는 종래의 전통적인 아카데미 미술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표현 하려 했다. 그들은 산업화된 도시의 풍경이 아닌 퐁텐블로 숲의 고요한 길, 햇빛이 드리운 풍경에 관심을 가졌다. 나뭇잎, 나무껍질, 바위 등 자연의 디테일한 요소를 표현하길 즐겼으며, 하루 중 다른 시간대나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처럼 상세한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전원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던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화가들 중에는 밀레, 루소, 코로, 뒤프레, 드라 페냐, 트루아용, 도비니가 있다. 그 중 카미유 코로는 특유의 은회색의 부드럽고 우아한 색조와 탁월한 빛 표현으로, 훗날 인상파의 선구적인 존재가 되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빛을 표현하려 했던 점과 소박한 일상을 예술적 주제로 삼았다는 접근 방식에서 바르비종파의 예술적 실험은 인상주의가 등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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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 <고양이와 여인), 1864년, 캔버스에 유채, 78.3 X 57.2 cm


조명이 인간보다는 고양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심지어 인물은 고양이의 발을 피하려고 하는지 갑자기 머리를 틀어서 일부러 왜고을 시킨듯 합니다.

고양이의 디테일한 표정이 아주 멋집니다.

딱딱한 회화의 주제들이 점차 다양화 되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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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뒤프레 <건초 만드는 사람>, 1886년, 캔버스에 유채, 79.1 X 64.1 cm


졸리앙 뒤프레는 장프랑수아 밀레와 카미유 코로를 이어받아, 프랑스의 시골 풍경을 탐구했다. 

뒤프레는 이전 세대의 냉절한 사실주의에 기반한 농민 묘사와는 달리, 이상화된 농촌을 묘사했다.

이를 통해 현실보다는 산업화되기 이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아 냈다.




2. 파리와 인상주의 화가들

Paris and the Impressionists


1874년 4월, 인상파 화가들의 첫 전시회가 파리 카푸신가 35번지에서 열렸다. 이들은 자신들을 '무명예술가협회'라고 소개하며 새로운 예술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등이 참여한 이 전시회는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연례 살롱 전시회와 같은 시기에 열렸다. 

인상파 화가들은 기존의 혼합된 색조와 정교한 붓질을 거부하고, 즉흥적이고 생생한 표현을 추구했다.


이 전시회에서 '인상파' 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는데, 이는 미술 비평가 루이 르로이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를 두고 "단지 '인상 에 불과하다"고 조롱하며 붙인 이름이었다.

일부 인상파 화가들은 파리 중심부에 거주했지만, 다른 이들은 자연과 가까운 농촌 마을을 선택해 작업했다. 모네는 처음 아르장퇴유에 살다가 후에 지베르니로 이주했고, 시슬레는 퐁텐블로 숲 근처 모레 쉬르 루앙에서 활동했다. 당시 철도의 발달 덕분에 이들은 교외에 살면서도 파리 도심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파리는 박물관, 갤러리, 전시회, 카페, 미술학교 등이 모여 있어 많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장소였다. 이곳에서 유럽과 미국에서 온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현대적인 예술을 탐구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이번 장에서는 인상주의의 시초가 된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당시 현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영향력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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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시슬레 <빨래터>, 1876년, 캔버스에 유채, 38.4 X 55.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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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외젠 부댕 <트루빌 항구, 항구 수리>, 1890년, 캔버스에 유채, 36.2 ×58.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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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 <디에프의 듀케인 분지와 베리니 분지, 흐린 날씨>, 1902년, 캔버스에 유채, 52.1 X 64.8 cm


카미유 피사로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핵심 인물로, 파리에서 열린 인상주의 독립 전시회 8회에 모두 참여했던 유일한 화가였다. 그는 폴 세잔과 폴 고갱의 멘토로 활동하기도 했다. 1800년대에는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와 함께 점묘법을 실험했다. 피사로의 후 기 작품은 인상주의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완성한 것으로, 부드러운 구름 묘사에서 인상 주의의 표현 방식이 보인다. 그는 부드러운 대기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해 없이 은은하고 흐린 날씨를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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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벌거벗은 아기를 안고 있는 렌 르페브르 (어머니와 아이)>, 

1902-1903년, 캔버스에 유채, 68.1 X 57.3 cm


메리 카사트는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파리에 정착했다. 파리에서 에드가 드가와 친구가 된 그녀는 드가의 초대 로 1879년 인상주의 네 번째 전시회에 참여했다. 카사트는 유일한 미국인 참여자였다. 느슨한 붓질, 밝은 색채, 공간적 실험, 그리고 모성을 주제로 한 화풍은 카사트가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발전시킨 화풍이다. 카사트는 화가 이외에도 수집가와 친구들을 위한 전문 자문가로도 활동하여, 인상주의의 수용과 정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시품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었습니다.

색감, 구도, 그리고 인상파의 흐릿함을 적절한 선에서 수위 조절을 했다는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에게 예술적 감각으로 감동을 주었고, 그들은 사랑과 삶을 느꼈습니다. 예술가로서 그 기쁨에 비견할 만한 것이 있나요?
I have touched with a sense of art some people-they felt the love and the life.Can you offer me anything to compare to that joy for an artist?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





메리 카사트의 판화

Mary Cassatt's Prints


메리 카사트는 1890년에 10점의 다색 판화 연작을 시작했으며, 이것은 1891년 파리의 영향력 있는 뒤 뤼엘 갤러리에서 열릴 전시회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이 중요한 판화 연작은 일본 채색 목판화가 그녀의 주제와 기법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그녀는 일본 판화의 기본적 특징에서 영감을 받아 색, 패턴, 형태와 같은 형식적 요소로 일상 생활의 친밀한 장면을 묘사했다.

카사트는 인물과 가구를 단순화되고 평평한 형태로 다룸으로써, 가구와 벽지의 꽃무늬와 같은 장식적인 

인테리어 요소에 시선이 집중될 수 있게 했다.

카사트의 피사체는 가정의 실내와 파리 시내를 오가는 여성들이다.


*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판화 12점은 우스터 미술관의 소장품 원본을 기초로 하여 재제작한 복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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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판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인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딘가 서양 느낌이 있어서 무척 묘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이랄까요?

다들 와우~ 한 번씩은 외치고 지나가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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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닐 휘슬러 <장미와 은을 위한 스케치: 도자기 나라의 공주>

1863-1864년, 하드보드에 유채, 61.3 X 35.1 cm



미국 출신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국제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 었다. 그는 동시대 미국 화가들보다 약 10년 일찍 유럽 예술계에 진출했다. 휘슬러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파리 현대 에 술계와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인상 주의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1863년, 당시 보수적이었던 아카데미 예술에 반란하는 작품들을 모아놓은 살릉 데 레퓨제에 참여하기 도 했다. 장미와 은을 위한 스케치>에서는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대담한 붓질이 드러난다. 휘슬러는 서구 예술가 중에서는 선구적 으로 일본 판화의 미학을 작품에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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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수련>, 1908년, 캔버스에 유채, 94.8 X 89.9 cm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은 오늘날 인상주의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 다. 이 연작에서 모네는 인상주의적 

풍경화를 추상의 경지로 끌어올 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생애 후반부에 파리의 근교 지베르니에서 정원을 가꾸며 작품을 그렸다.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들은 풍경을 통해 내면의 감정 을 표현했는데, 〈수련> 연작 또한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몽환적인 색채와 잔잔히 떠있는 수련은 초현실적인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준다. <수련>은 1910년 모네의 거래상인 뒤랑 튀멜로부터 우스터미술관이 구입했던 작품으로, 이 싱징적인 연작 가운데 미술관이 처음으로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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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계약서를 보는것도 흥미롭군요.언제 보겠어요...ㅎ

처음 구입을 하는것이라 그런지 무척 고심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3. 인상주의의 세계적 확산

Impressionist Networks


20세기 장작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수학했던 많은 예술가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현대적 회화 기법을 전파하며 독창적인 예술적 방향성을 모색했다. 이들은 특정한 양식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며, 인상주의의 요소를 각자의 목적에 맞게 변형하여 느슨한 붓질과 밝고 경쾌한 색조, 현대 도시 생활이라는 새로운 회화 방식을 각국의 문화와 정체성에 접목했다. 이로 인해 인상주의는 프랑스를 넘어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다른 해석과 형태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시도는 프랑스 풍경 중심이었던 인상주의의 주제를 확장시켰고,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는 인상주의의 전파를 가속화했다. 그 결과, 인상주의는 프랑스를 방문한 적 없는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폭넓은 예술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번 장에서는 다양한 문화와 결합되어 새롭게 재해석된 인상주의의 세계적 매력과 그 진화의 출발점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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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닐 휘슬러 <장미와 은을 위한 스케치: 도자기 나라의 공주>

1863-1864년, 하드보드에 유채, 61.3 X 35.1 cm


미국 출신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국제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동시대 미국 화가들보다 약 10년 일찍 유럽 예술계에 진출했다. 휘슬러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파리 현대 예술계와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인상주의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1863년, 당시 보수적이었던 아카데미 예술에 반란하는 작품들을 모아놓은 살릉 데 레퓨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미와 은을 위한 스케치>에서는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대담한 붓질이 드러난다. 휘슬러는 서구 예술가 중에서는 선구적으로 일본 판화의 미학을 작품에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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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이스라엘스 <모래 언덕에서>, 1890년 이후, 패널에 유채, 19.8 X 17.9 cm


요제프 이스라엘스는 암스테르담과 파리에서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린 시골 풍경을 접했으며, 바르비종으로 여행을 가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 그는 한동안 북해 연안의 작은 어촌 마을 잔드보르트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어부들과 그들의 가족 구성원들의 노동을 주제로 한 그림을 제작했다. 이스라엘스의 초기 작품에는 학문적 훈련이 반영된 세밀한 마감이 드러난다. 그러나 <모래 언덕에서>와 같은 후기 작품은 거친 붓질과 혼합되지 않은 색채 때문에 전반적으로 스케치와 같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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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소른 <오팔>,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00.3 X 69.5 cm


안데르스 소른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 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작품에 정통했으며, 파리에 자주 오래 머 무르기도 했다. 소른은 스웨덴 모라 주변 풍경에서 누드화를 그릴 때, 파리에서 익힌 기법을 활용했다. 모라 주변 부지를 구입한 그는 1891년부터 여성 목욕객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짧고 단절된 붓질, 다양한 색조, 섬세한 빛의 묘사 등은 인 상주의의 영향을 뚜렷이 

드러낸다.


굉장히 특이한 구도에 눈길이 갔습니다. 주제에 잘 맞는 기법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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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어 사전트 <물을 나르는 베네치아 여인>, 1880-1882년, 캔버스에 유채, 64.5 X 70.6 cm


존 싱어 사전트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처럼 국제적인 성장배경은 사전트가 폭넓은 예술적 교류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그는 클로드 모네, 제임스 맥닐 휘슬러 등과 교류했다. 휘슬러와 사전트는 베네치아라는 장소에서 상징적인 건축물 대신 고요한 풍경을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에서 사전트는 현대 수도시설의 발전으로 이제는 사라진 풍경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블렌딩된 붓질, 그리고 부드러운 가장자리 처리는 인상주의적 요소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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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어 사전트 <캐서린 체이스 프랫>,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01.9 X 76.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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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메릿 체이스 <윌리엄 클라크 부인>, 1915년경, 캔버스에 유채, 60.8 X 43.3 cm


윌리엄 메릿 체이스는 뮌헨이 파리보다 창작에 집중하기에 더 적합한 환경이라고 판단했다. 

뮌헨에서 체이스는 고전 거장들의 작품에 심취하여 극적인 키아로스쿠로(강렬한 명암 대비)와 깊고 풍부한 \

색조를 단련했다. 이후 벨기에 화가 알프레드 스티븐스와 우연히 만나서 느슨한 붓질과 외광 회화와 같은 

인상주의적 요소를 작품에 적용 하게 되었다. <윌리엄 클라크 부인>은 체이스가 과거의 예술 양식과 인상주의를 혼합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최종 초상화를 위한 예비 스케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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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어 사전트 <코르푸 섬의 오렌지>, 1909년경, 캔버스에 유채, 55.9 X 71.1 cm


존 싱어 사전트는 1876년 클로드 모네를 만나 평생 주기적으로 교류했다.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사전트는 모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인상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사전트의 야외 작업 방식을 볼 수 있다. 사전트는 밝은 색채와 활기찬 붓질을 통해 흩어진 빛과 따뜻하고 아련한 대기를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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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광 회화

en plein air


외광회화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회화 방식을 의미하며, 불어로 '야외에서'라는 뜻의 "en plen air"(앙 플레네르)로 불리며, 영어로는 "inthe open air로 표현된다.

이 기법은 실내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던 전통적인 방식과 대조적으로, 햇빛 아래 자연의 색채와 빛의 변화를 직접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주로 프랑스의 바르비종파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광 회화 기법을 통해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광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작품에 독특한 생동감을 더할 수 있었다.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빛과 날씨 속에서 작업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기존의 전통적 기법을 넘어선 새로운 표현 방식과 색채 기법을 개발하며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인생은 매우 짧지만 (•) 나는 네 번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Life is very short... but I would like to live four times and
if I could, I would set out to do no other things than I am
seeking now to do.

윌리엄 메릿 체이스(William Merritt Chase, 1849~1916)





4. 미국 인상주의

American Impressionism


1880년대 중반, 유럽 인상주의는 미국의 미술상과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미국 화가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인상주의를 직접 공부했고, 밝고 자유로운 색채를 미국적인 풍경에 녹여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 예술가들은 인상주의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발전시켰고, 이는 미국 전역으로 퍼지며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작품들로 이어졌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와 차일드 하삼은 인상주의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미국 화가들로, 야외 여름 학교와 예술가 공동체를 통해 인상주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 화가들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원칙을 충실히 따랐지만, 다른 이들은 이를 변형하여 미국의 고유한 주제를 담아냈다. 이들은 가정적인 장면이나 시골 풍경의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의도적으로 현대적 요소를 배제하고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그려냈다.

이번 장에서는 미국 고유의 인상주의를 조명하며, 그 발전에 기여한 화가들의 작품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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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H. 그린우드, <녹아내리는 눈>1918년, 캔버스에 유채, 76.2 X 106.7 cm


<녹아내리는 눈>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는 마치 겨울의 한순간을 포착한 스냅사진과 같은 인상을 준다. 

실제로 조셉 H. 그린우드는 매사추세츠 주변의 눈 덮인 풍경을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여 회화 작업의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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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H. 그린우드, 겨울의 개울 근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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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러드 르로이 메트캐프 <서곡>, 1909년, 캔버스에 유채, 91.3 x 99.1 cm


윌러드 르로이 메트캐프는 프랑스 체류 기간 동안 클로드 모네와 친하게 지냈다. 그가 모네의 아들에게 조류학과 식물학을 가르쳤던 것 이 그 계기가 되었다. 1904년, 메트캐프는 뉴잉글랜드 풍경을 인상주의적으로 완전히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코네티컷주의 리츠 섬 시골 풍경의 봄을 묘사한다. 캔버스는 정사각형에 가깝고, 장면은 정적이다. 이 작품을 미국적 특성을 잘 대변하는 작품으로 당시 한 비평가에게 찬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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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 트와츠먼 <폭포>, 1890년경, 캔버스에 유채, 76.2 X 76.5 cm


존 헨리 트와츠먼은 이 폭포를 '호스넥 폭포(Horseneck Falls)'라고 이름 붙인 후, 시내와 폭포를 다양한 계절과 날씨 속에서 자주 그 렸다. 그는 풍경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탐구했다. <폭포>에서는 자신의 뒷마당의 자연 풍경을 사각형 구도와 높은 수평선을 통해 웅장한 장면으로 승화시켰다.


요즘 그림 같기도 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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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H. 그린우드 <사과 밭>, 1903년, 캔버스에 유채, 50.8 X 76.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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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웨스턴 벤슨 <카드놀이를 하는 소녀>, 1909년, 캔버스에 유채, 128.3 x 102.9 cm


프랭크 웨스턴 벤슨은 1898년, 아홉 명의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더 텐(The Ten)'이라는 독립적인 연합체를 결성했다. 이 연합체는 인상주의 수용에 있어서 소극적이었던 기존의 보수적인 미국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들은 뉴욕에서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어서 인상주의가 미국 전역에 널리 수용되게 했다. 

벤슨은 특히 초상화로 유명해졌다. 그는 프랑스에서 연마한 기법으로 빛이 드리운 실내 풍경을 그리고는 했다. 이 작품에서는 익명의 여인이 장식적 존재로서 이상화된 여성상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와 대비 되는 여성의 지루해하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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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하게 묘사한듯 하지만 도리어 더 정교한 감정을 전달해주는것 같습니다. 디테일한 감정 전달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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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텐

The Ten


더 텐(10")은 1898년 뉴욕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던 10명의 미국 예술가 그룹을 지칭한다. 이들은 대부분 1897년에 미국 화가 협회로부터 탈퇴한 화가들이었는데, 이는 당시 인상주의 수용에 소극적이었던 기존 미국 미술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창립회원으로는 프랭크 웨스턴 벤슨과 에드먼드 타벨 등이 있었다. 이들은 보스턴 미술관 대학교를 졸업하고 보스턴을 기반으로 활동한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더 텐은 20년 동안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했다.

더 텐의 특징으로는 눈에 보이는 붓질, 밝은 색채,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빛,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묘사 등이 있다. 이들은 작고 독립적인 개별 전시들을 알리고, 미국 전역에 인상주의가 확산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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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에머슨 반 고더 <공원에서>, 1894년 이전, 캔버스에 유채, 20.3 x 25.4 cm


오하이오 출신의 루터 에머슨 반 고더는 뉴욕에서 윌리엄 메릿 체이스에게 지도를 받았다. 고더의 그림에서 보이는 절제된 색조와 공원 풍경 같은 현대적인 주제는 체이스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인 인상파 화가들은 도시 생활 속 자연적 피난처인 공원에 주목했다. <공원에서>에서 고더는 뉴욕 센트털파크의 푸르른 자연보다는 건축물 과 복잡한 사회 규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뛰어난 원근법 표현과 부드러운 붓질은 아카데믹한 소묘 기법과 인상주의적 요소와 결합 하여 독특한 미국적 스타일을 만들었다. 1892년, 고더는 프랑스로 떠나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예술적 훈련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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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하삼 <애플도어의 실프 바위>, 1907년, 캔버스에 유채, 63.5 X 76.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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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하삼 <브렉퍼스트 룸, 겨울 아침, 뉴욕>1911년, 캔버스에 유채, 63.8 X 76.5 cm


차일드 하삼은 파리에서 수학한 후, 곧 뉴욕에 정착했다. 20세기 초 뉴욕은 고층빌딩, 자동차, 전기 조명으로 상징되는 현대적 대도시였다. 하삼은 중상류층의 가정 실내라는 주제에서 고요한 위안을 발견 했다. 

하삼은 <창문> 연작을 통해 도시 아파트 안에 고립된 여성들을 묘사했다. <브렉퍼스트 룸〉에서는 은은한 커튼이 도시의 소란으 로부터 중상류층의 현대적 삶을 분리시켜준다. 하삼은 미국의 물질 중심주의로부터 눈을 돌려서 일본 미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 영향으로, 이 작품의 여성은 일본의 예술 및 공예에서 영향을 받은 복장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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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하삼 <비오는 콜럼버스 애비뉴>, 1885년, 캔버스에 유채, 43.5 X 53.7 cm


차일드 하삼은 1883년 유럽 그랜드 투어를 통해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했다. 이때 현대 프랑스 회화를 접했다. 귀국 후 그는 보스턴 사우스 엔드의 콜럼비스 애비뉴에 아파트를 얻었다. 이곳의 넓은 대로와 격자형 도시 계획은 하삼에게 인상주의적 양식을 적용할 수 있는 풍경을 제공했다. 톤 중심의 팔레트, 부드러운 붓질, 다양한 대기 조건 등을 통해 하삼은 도시 생활 속 "움직이는 인간 군상"을 그렸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당시 미국 미술에서는 획기적이었다.



큐레이터가 마음에 든 그림이라고 인터뷰했던 그림입니다.

근데 그 이유가 집근처라니요... 하기사 100년전 그 동네의 모습을 본다는건 정말 큰 행운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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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찰스 타벨 <베네치아식 블라인드>, 1898년, 캔버스에 유채, 131.8 X 97.5 cm


에드먼드 찰스 타벨은 보스턴 미술관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프랑스 인상주의를 지역적으로 변형하여 전파시켰다.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은 "타벨파(Tarbelites)”를 형성했다. 보스턴 화파의 핵심적인요소들은 <베네치아식 블라인드〉에서 잘 드러난다. 빛과 풍부한 색감에 둔 초점, 전통적인 모델링, 세부적인 묘사 등이 그 특징이다. 타벨은 17세기 네덜란드 실내화와 스페인식 키아로스쿠로(강렬한 명암 대비) 기법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는 블라인드 틈새로 비치는 햇빛을 활용해 부분적으로 누드 상태인 모델의 몸 위에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게 표현했다. 피츠버그 제6회 국제 미술전에서 3 등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미국 회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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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찰스 타벨 <베네치아식 블라인드 습작>, 1898년, 캔버스에 유채, 61 X 64.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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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보 <헬렌 비글로우 메리먼>, 1908년, 캔버스에 유채, 109.9 X 73.7 cm


미국에서 이미 명성 있는 예술가였던 세실리아 보는 결혼하지 않고 유럽으로 떠나, 사립 아카데미에서 인물화 훈련을 받았다. 보는 형식적 완성도와 리얼리즘에 전념했다. 이는 당시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대세였던 화풍과는 거리를 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종종 외광 회화를 시도했다는 점, 밝은 색조, 가시적인 붓질 등을 즐겨 썼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적 충동을 확인할 수 있다. 우스터미술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메리먼은 품위 있고 당당한 자세로 묘사되어있다. 보는 안경, 숄, 레이스 같은 세부 묘사 사용된 끊어진 붓질과 극명한 명암 대비를 통해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5. 인상주의 너머 미지의 풍경

The Limits of Impressionism and New Directions


비평가들은 인상주의의 주제가 풍경화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고, 분위기와 시각적 인상을 피상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 후기 인상주의가 등장해 색채, 상징성, 형태 등을 탐구하며 더 깊이 있는 추상적 표현을 모색했다. 독일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표현주의 초기 지지자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는데, 감정과 내면의 생각을 드러내는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 예를 들어, 막스 슬레포크트와 로비스 코린트는 감정과 심리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내며 표현주의의 시작을 보여주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허드슨 리버 화파의 영향을 받은 토널리즘이 인기를 얻었다. 토널리즘은 인상주의의 강렬한 색채 대신 부드럽고 차분한 색조로 보이지 않는 감각과 분위기를 강조했다. 특히, 남북전쟁으로 상처 입은 미국 사회에서 토널리즘의 몽환적이고 그늘진 풍경은 현대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영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이번 장에서는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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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습작>, 1890-1892년, 캔버스에 유채, 32.1 X 35.2 cm


를 세간은 1870년대에 인상주의 전시회에 두 번이나 참여했지만, 인상주의라는 범주에 갇히지 않았다.그는 인상파보다는 인체파의 기초를 마련한 화가로 더 자주 언급된다. "구조적 붓질", 견고하고 각진 공간 구성, 기하학적인 구성 등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잔의 작업 방식을 말할 때, 그의 친구이자 멘토인 카미유 피사로와의 연관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파리에서 벗어난 프로방스 풍경과 농민들 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피사로와 세잔의 공통점이었다. 인상주의의의 즉흥성과는 달리, 세잔은 인물을 묘사할 때 신중한 관찰과 세심한 구성을 바탕에 두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이는 보랏빛과 푸른색의 은은한 조화는 세잔이 피사로가 산탄광을 활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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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시냐크 <골프 주앙>, 1896년, 캔버스에 유채, 65.4 X 81.3 cm


폴 시냐크는 조르주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의 흐름을 이끌었다. 신 인상주의는 후기 인상주의의 한 갈래로, 인상주의의 즉흥적 접근을 넘어서서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시냐크는 점묘 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점묘법은 화가의 팔레트에서 색을 혼합하는 대신, 관람자의 눈에서 색이 섞이도록 하는 기법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인 골프 주앙은 시냐크가 프랑스 남부에서 여름을 보냈던 곳이다. 시냐크는 섬세한 점묘법과 밝고 경쾌한 색조를 통해 이 지역 특유의 햇빛과 공기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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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브라크 <올리브 나무〉1907년, 캔버스에 유채, 37.9 X 46.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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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 코린트 <거울 앞에서〉1912년, 캔버스에 유채, 140 X 93cm


작가가 뇌졸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려 냈다는것에 관장은 감동 받았다고한다.

인상파적인 기법이 이렇게 쓰인다는것에 놀랍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다시 작품을 보니 달라 보이는것 같다.



토널리즘

Tonalism


토널리즘은 19세기 말 미국의 인상파 화가들이 만든 양식이다.

1880년대 미국 풍경화 작가들은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는 일몰, 가을, 야경, 안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에 초점 을 두었다. 밝거나 어두운 또는 강렬한 색을 사용하는 대신 주로 회 색, 갈색, 파란색처럼 중간 톤(tone)의 색조가 사용된 그림들은 부드 럽고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1890년대 미국 비평가들이 '색조의 (tonal)'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토널리즘은 미술 유파를 지 칭하는 말이 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조지 이네스와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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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슬레포크트 <고드람슈타인 정원의 자화상>, 1910년, 캔버스에 유채, 101 X 80cm


막스 슬레포크트는 소수의 베를린 인상파 화가 중 한 명이었다. 슬레 포크트는 같은 뜻을 가진 예술가들과 함께 1898년 베를린 분리파를 결성했다. 분리파는 1910년, 인상파 화가들과 젊은 세대의 표현주의 화가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이 작품에서 슬레포 크트는 41세의 본인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의 배경인 정원과 담뱃불 의 빛과 연기의 일시적이 효과는 인상주의적인 요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빠르고 기교적인 붓질, 두꺼운 임파스토 기법, 조각적인 질감, 강렬하고 역동적인 구성 등은 기존의 인상주의와는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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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크레인 <11월의 풍경>, 1895년경, 캔버스에 유채, 36 X 51 cm


젊은 시절의 브루스 크레인은 단 1년동안 알렉산더 헬위그 와이언트의 지도를 받았다. 풍경의 분위기와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은 스승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크레인은 생애 후반부터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곤 했던 와이언트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흔적이 드러나는 장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1월의 풍경〉은 이러한 작품 중 하나다. 전경에 배치된 그루터기와 장작은 인간 활동의 흔적을 암시한다. 흐릿한 간결함과 우울한 대지 색조는 관객이 사색 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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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이네스 <숲 속 웅덩이>, 1892년, 캔버스에 유채, 56.2 X 69.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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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윌리엄 트라이온 <가을의 일몰〉, 1908-1909년, 패널에 유채, 50.8 X 76.2 cm


20세기 초, 드와이트 윌리엄 트라이온은 토널리즘 양식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을의 일몰>에서 절제된 색채, 부드럽고 세심한 붓 터치, 그리고 은은한 빛의 표현은 사우스다트머스의 시골 풍경을 경이롭고 신비로운 "이상적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당시의 많은 화가들이 그랬듯, 트라이온은 외광 회화를 즐겨 그리며 자연의 즉흥적인 인상을 그려나갔다. 도시의 현대적 삶의 경험은 그가 시골 생활의 기쁨을 주제로 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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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헬위그 와이언트 <풍경>, 1860-1892년, 캔버스에 유채, 30.5 X 40.5 cm


알렉산더 헬위그 와이언트는 조지 이네스의 풍경화를 접하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와이언트의 초기 작품에서는 허드슨 리버 화파의 영향이 보인다. 정말한 붓진,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1860년대 중반 이후, 그는 부드러운 풍경 속에 감정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는 이네스로부터 받은 영향이었다.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팔이 마비되었던 와이언트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의 후기 작품은 한 느슨한 태도로 매체를 다루며, 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회화적인 자유와 감정적 깊이를 동시에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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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윌리엄 트라이온 <강, 저녁>, 1892년, 패널에 유채, 36 X 51cm


뉴잉글랜드의 시골 풍경에 매혹된 드와이트 윌리엄 트라이온은 절제된, 거의 단색조의 색조와 섬세한 대기감을 활용하여 초원주의적 관점에서 "시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는 바르비종파의 수정적 구성을 강조하는 전통을 자신의 작품에 접목하여, 종종 풍경에 나무 한 줄을 배치하는 모티프를 사용했다.





6. 개척의 지평

Frontier Lands


인상주의 회화는 정원에서 외딴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경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이를 즉흥적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인상주의의 특징은 주제와 기법적인 모든 면에서 

화가들의 탐구 정신을 자극했다. 휴대가 간편한 팔레트와 물감의 개발, 그리고 외광 회화 기법은 화가들이 

험난한 지형에서도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특징은 19세기 말 북아프리카의 풍경화에서도 나타나지만, 특히 미국 서부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당시 미국 철도 회사들이 서부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전략은 예술가들에게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광활한 미국 서부의 풍경은 실험적인 인상주의 회화 작품의 대상이 되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지형과 국경을 넘어 창작의 지평을 넓힌 인상주의 화가들의 개척정신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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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윗 파샬 <허밋 크릭 캐니언>, 1910-1916년, 캔버스에 유채, 114.3 X 127 cm


색감 참 좋네요. 애니메이션 배경의 기준이 된 스타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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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웨스턴 벤슨, <나탈리>, 1917년, 캔버스에 유채, 76.2 x 63.5 cm


프랭크 웨스턴 벤슨은 1917년 가족과 함께 떠났던 와이오밍 여행 에서 인상주의를 서부로 전파했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야외에서 제작되었는데, 벤슨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냈던 플리 헤밍웨이의 요청으로 그려졌다. 

<나탈리>는 20세기 초반 독립적이고 현대적인 여성상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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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와이오밍주 Bar-B-C 목장에서 나탈리 테이어의 초상화를 그린 프랭크 웨스턴 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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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헨리 트와츠먼 <옐로우스톤의 급류>, 1890-1899년경, 캔버스에 유채, 76.2 X 76.5 cm


존 헨리 트와츠먼은 1895년, 의뢰를 받아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그리면서 장엄한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트와츠먼이 국립공원에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 서부의 풍경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인상주의 성향에 적합했다. 휴대용 튜브물감의 발명은 외광 회화를 더 편하게 만들었다. 

색채와 빛을 꾸준히 탐구했던 트와츠먼은 이 작품을 통해 추상에 가까운 경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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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아랍 여인>, 1882년, 캔버스에 유채, 29.8 X 24cm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 그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화가들이 비서구적인 주제를 이국적, 장식적, 그리고 관능적으로 과장하여 묘사하는 양식으로, 때로는 고정관념에 의존하기도 했다. 이 작품 속 여성처럼, 르누아르는 자신이 만났던 하인과 거리의 사람들을 단순한 복장으로 그림으로써 전 형적인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났다. 투명한 색채, 부드럽고 분산된 붓질이 지중해의 햇빛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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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러드 르로이 메트캐프 <튀니지 거리>, 1887년, 캔버스에 유채, 35.6 X 24.8 cm


윌러드 르로이 메트캐프는 현대 튀니지와 알제리 지역의 강렬한 햇 빛과 독특한 분위기에 영감을 받아서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했다. 메트캐프가 방문했을 당시, 이 지역은 프랑스 식민 지였다. 시장 풍경을 포함한 다양한 장면이 화면에 담겼다. <튀니지 거리>는 말발굽 모양의 극적인 아치와 표백된 복도 벽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서유럽 외 지역에 대한 19세기 말의 강렬 한 관심을 보여준다. 강렬한 햇빛, 건조한 공기, 채도가 높은 색채에 서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인 야외 작업 방식이 드러난다.



그림은 삶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다.
Painting is a way of immortalizing the beauty of life.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 1859~1935)

새로운 인상파 작가들을 알게되어 즐겁네요.

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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