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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제3, 4 전시실

by 상상만두

앤서니 브라운 :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

Anthony Browne Exhibition: A Master of Storytelling



전시를 여는 글

A Foreword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문자와 그림 같은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기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 오래된 서사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책, 뉴스, 미술, 영화, 음악, 공연, 과학, 요리, 광고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게 쓰이며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좋은 이야기는 감동과 웃음을 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가치와 영향력을 지닙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고릴라 할아버지' 앤서니 브라운은 지난 50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습니다. 그의 책은 재치 있는 유머로 미소를 자아내고, 때로는 깊은 감동을 전하며, 어른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야기 짓기를 좋아했던 그는 글과 그림의 조화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해 왔습니다. 종종 그림만으로도 서사를 전개하며, 글이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뛰어난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유머와 아기자기한 이스터에그(작가가 그림 속에 숨겨 놓은 작은 장치들), 그리고 배경 곳곳에 숨겨진 초현실적인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는 한 편의 명작을 완성하는 그의 고유한 비법이자, 그림책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번 앤서니 브라운: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에서는 <거울 속으로>부터 <고릴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제부터 변할 거란다>, 꿈꾸는 월리>, <우리 아빠>, <숲 속으로>, 그리고 최근작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 <우리 할아버지,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에 이르기까지-앤서니 브라운이 펼쳐온 특별한 이야기의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큐레이터 유 제 승






앤서니 브라운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을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Tip!


1. 그림 속의 '숨은 그림'을 찾아봐! 한 번에 못 찾을 걸~

2. 이미지로 그림책을 읽어봐. 그럼, 글이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거야!

예를 들어 빨간색, 파란색 그림은 어떤 기분이 들어?

3. 내가'오마주'한 그림과 이야기의 원작은 어떤 작품일까?

4. 그림을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때?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굉장히 실용적인 팁인 것 같습니다.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앤서니 브라운 표: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롤로그

1. 도전은 계속된다

2.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3. 글과 그림의 커뮤니케이션

4. 우리 할아버지, 우리 가족

5. 새로운 시대의 시작

6. 특별 초청 작가, 한나 바르톨린

7. 옛날 옛적 책 속에서

8. 고릴라 할아버지

에필로그








Section 1

도전은 계속된다


앤서니 브라운이 첫 번째 책을 펴낸 지 어느덧 5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창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노련한 거장은 안주하지 않고, 매일 펜과 붓을 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실험적인 기법을 시도하며, 일상 속에서 영감을 포착해 내는 그의 작업은 지금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브라운은 영국 켄트 주의 바닷가 마을 위트스터블(Whitstable)로 이주해 반려견 알버트와 함께 하루 두 번 해변을 산책하며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림책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로 이어졌습니다. 이 작품에는 어린 시절, 형 마이클과 놀고 싶었지만 형이 친구들과 나가버렸을 때 느꼈던 실망감도 녹아 있습니다. 2024년작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는 아들과 손녀가 반대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얻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 가족을 주제로 한 최신작 <우리 할아버지>까지, 브라운의 최신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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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

Big Gorilla, 2024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는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흰 얼굴 카푸친원숭이 등 다양한 영장류가 등장하는 반대말 그림책입니다. 슬픔과 행복, 무거움과 가벼움, 혼자와 함께, 크고 작음처럼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반대말을 주제로 한 책으로, 브라운은 이 반대말들을 영장류 친구들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영유아들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반대말 그림책에 영장류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점은 작가의 영장류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또한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는 털 한 을까지 정성스럽게 그려낸 세밀한 그림과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브라운이 최근 즐겨 사용하는 표현기법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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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리지널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화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섬세한 터치가 그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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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

My Grandad, 2024


<우리 할아버지>는 2000년 출간된 <우리 아빠>로 시작된 가족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브라운은 <우리 아빠>와 <우리 엄마>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동경하는 자식의 시선으로, 넌 나의 우주야>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 그렸습니다. 이번 <우리 할아버지>에서는 손주들이 사랑하는 한아버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할아버지들이 등장해, 서로 닮은 듯하지만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손주와 할아버지 사이의 애틋한 관계를 가볍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담아낸 것도 이 책의 특징입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전 가족 시리즈를 과 마찬가지로 사방으로 햇살이 퍼지는 듯한 배경 속에서, 소년이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장면을 통해 가족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적 서사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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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

A Boy, His Dog and the Sea, 2023


주인공 대니는 반려견 스크러피와 함께 해변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형 마이크와 놀고 싶지만,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바닷가는 그저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러던 중, 대니는 해변을 거닐다 자갈 속에 숨은 형태를 발견하고, 스크러피와 물어오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점점 해변 풍경에 녹아들던 대니는 바다 한가운데에 누군가 빠진 것을 발견하고 스크러피를 보내 데려오게 합니다. 대니와 스크러피가 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책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브라운의 형 마이클에게 바치는 헌정 작품이기도 합니다.

브라운은 어린 시절 형과 세이프게임을 하거나 스포츠를 즐기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강아지는 작가의 반려견 알버트를 모델로 했으며, 배경이 된 해변 역시 그가 실제로 살고 있는 영국 위트스터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작품 속 건물, 해변가의 풍광과 자갑, 바다 위 수평선 등은 모두 브라운이 반려견과 산책하며 직접 목격한 장면들입니다.

이처럼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 환경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실마리를 얻곤 합니다.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의 배경이 된 위트스터블 해변을

반려견 알버트와 함께 산책 중인 앤서니 브라운




아이디어는 어디에서든 떠오릅니다.
제 이야기 중 일부는 어린 시절 겪은 일에서 비롯되지만,
그 경험들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저는 셰이프게임을 하듯, 이야기를 변형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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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







Section 2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앤서니 브라운은 그림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자신이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린이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브라운은 대학 졸업 후 병원에서 수술 장면을 그리는 의학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고, 이후 고든 프레이저 갤러리에서 연하장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림책에 흥미를 느껴 여러 출판사에 자신의 그림을 보내기 시작했고, 글과 그림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첫 번째 그림책 <거울 속으로>부터, 글과 그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고릴라>-이 작품으로 그는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에서 특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돼지책>, 그리고 성격이 정반대인 남매의 신비한 모험을 다룬 <터널>등, 1970~1980년대에 발표된 그의 작품들을 조명합니다. 이제는 시대를 초원한 명작이 된 이 작품들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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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으로

Through the Magic Mirror, 1976


<거울 속으로>는 앤서니 브라운의 데뷔작으로, 20세기 체코 시인 미로슬라프 홀루프의 시 「문」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따분한 일상에 싫증이 난 소년 토비는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마법의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의 캔버스 속에 또 다른 캔버스가 반복되고,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거리에는 장미 모양의 가로등이 늘어서 있으며, 하늘에는 오렌지 태양이 떠 있습니다.


일상을 주제로 한 셰이프게임을 보여주는 <거울 속으로>를 통해, 초현실주의 미술의 영향이 짙게 드리운 브라운의 초기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창작할 당시, 그는 이야기보다 먼저 그림을 그렸다고 전합니다. 일반적인 작업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욱 독특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앤소니 브라운의 표현은 참 대단합니다.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도 동화가 가능하군요.

역시 고정관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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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을 만난 꼬마곰

Bear Hunt, 1979


<사냥꾼을 만난 꼬마곰>은 꼬마곰을 주인공으로 하는 첫 번째 작품이자 앤서니 브라운이 세 번째로 발표한 책입니다. 수채화 대신 잉크를 사용했고 이전 작품에서 두드러졌던 초현실주의 경향과는 달리 만화적 스타일에 가깝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당시 출판사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브라운의 초기 작품이 지나치게 예술적이고 아이들보다는 어른을 겨냥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좀 더 대중적이고 아동 독자에게도 친근한 그림책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런 요청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좀 더 넓은 독자층에 어필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연하장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때 만들었던 꼬마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창조해 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꼬마곰의 이야기는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서는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사냥꾼을 만난 꼬마곰>은 앤서니 브라운이 지키고자 한 예술적 고집과 상업성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했던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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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브라운의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지만 여러 군데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어우러져 독자적이면서도

아주 개성적인 작품으로 정리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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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Gorilla, 1983


1983년작 <고릴라>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과 커트 메러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앤서니 브라운을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주인공 한나는 고릴라를 무척 좋아하지만, 늘 바쁜 아빠는 딸을 한 번도 동물원에 데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 한나는 생일날, 작은 고릴라 인형을 선물로 받습니다. 밤이 되자 인형은 진짜 고릴라로 변신하고, 고릴라는 아빠의 코트를 걸친 채 한나를 동물원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고릴라가 등장하는 영화를 함께 보고, 풀밭 위에서 행복하게 춤도 춥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책을 작업하던 시기에 첫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많이 고민했고, 한나의 아빠 같은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한나가 아빠와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아빠가 펼친 신문이 두 사람 사이의 단절을 상징하는 벽처럼 표현됩니다. 배경 역시 차가운 색감과 경직된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통 부재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합니다. 반면, 고릴라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같은 구도를 따르면서도 따뜻한 노란빛과 풍성한 음식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고릴라>를 통해 앤서니 브라운은 배경의 그림과 숨겨진 디테일을 활용해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완전히 익숙해졌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자신의 그림책 세계를 본격적으로 확립한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간된 지 벌써 30년이나 되다니, 그럼에도 전혀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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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쌓아두고 먹는 모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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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출한 음식과 메마른 분위기

이건 같이 사는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이 있지만 혼자 있는 거나 다름없죠


저는 고릴라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한 번 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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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Piggybook, 1986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라면 어렵지 않게 <돼지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Mr. Piggott)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아무런 집안일도 하지 않고 가사 노동은 오로지 엄마의 몫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너희는 돼지야 (You are pigs)'라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가버리고 피곳 씨와 두 아들은 돼지로 변하고 맙니다. 이 작품에서 브라운은 책의 곳곳에 돼지로 변하게 될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숨은 그림들을 배치했습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 벽지, 꽃병 등등 '돼지'들은 그림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이런 돼지의 이미지와 상징들은 엄마가 돌아오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브라운은 자신이 아는 한 가족에게서 피곳 씨네 가족에 대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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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메시지와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그림책의 고전 반열에 오른 『돼지책』

『돼지책』은 2001년 국내 출간 당시 어린이책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가사 노동 문제, 성 고정관념 문제를 다루어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군더더기 없는 글,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 구성, 작품 전반에 흐르는 유머와 위트는 진지한 주제를 설득력 있고 쉽게 전달한다.

『돼지책』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지 36년, 국내에 소개된 지는 2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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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The Tunnel, 1989


앤서니 브라운은 일상 속 어디에서나 영감을 얻지만, 특히 유년기의 경험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1989년작 <터널>은 어린 시절, 형 마이클과 함께 어두운 터널 속으로 기어들어 갔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남매가 등장합니다. 오빠 잭은 외향적이고 운동을 좋아하는 반면, 동생 로즈는 내성적이며 책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두 인물은 작가 본인과 형 마이클의 어린 시절 관계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재구성한 캐릭터입니다. 실제로 브라운의 형은 신체적으로 더 강하고 외향적이었지만 섬세한 면도 지녔으며, 브라운 자신은 내성적이면서도 럭비 같은 거친 운동을 좋아하는 모습 또한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야기에서 로즈는 오빠를 따라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그 끝에는 미지의 숲이 펼쳐집니다.

빨간색 코트를 입고 숲을 헤매는 로즈의 모습은 마치 빨간 모자>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며, 신화와 동화적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교차합니다. 로즈는 숲 속에서 돌로 변해버린 오빠를 발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신비로운 사건 앞에서 슬픔과 공포를 느낍니다. 오빠가 돌로 변하는 장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모티프를 차용한 것입니다.


늘 티격태격하던 남매였지만, 로즈의 따뜻한 포옹은 결국 잭을 돌에서 풀어주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터널>은 갈등과 화해, 공포와 상상, 그리고 유년의 기억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상징성과 감정 묘사가 깊이 있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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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터널을 만들어 놓다니 너무 좋네요. 언뜻 놓치기 쉬운 아래쪽에 두어 더 재미있어요.







Section 3

글과 그림의 커뮤니케이션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에서 그림은 단순히 글을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헨젤과 그레텔>과 <고릴라> 이후, 글이 설명하지 않는 부분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방식은 그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습니다.


브라운은 종종 의도적으로 그림 속 일부를 여백으로 남겨두며, 독자가 상상력으로 그 빈틈을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여백은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그의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디테일들은 때로는 엉뚱하지만, 종종 전체 서사나 중요한 플롯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1990년대 이후, 브라운의 작품에서는 글과 그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졌습니다. 두 요소는 서로를 보완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림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이제부터 변할 거란다, 아들 조(Joe)에게 영감을 얻은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수상작 <동물원>, 그리고 장편 영화를 그림책으로 재해석한 <킹콩> 같은 작품들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공원에서>를 작업하던 중 그림책 작가로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일시적인 슬럼프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꿈을 주제로 한, 그리고 스스로 가장 즐거웠던 작업으로 꼽는 <꿈꾸는 윌리>를 통해 그림책이 주는 기쁨을 다시 느끼며 이 시기를 극복했습니다.

창작의 열정을 되찾은 앤서니 브라운은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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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변할 거란다

Changes, 1990


앤서니 브라운은 여러 초현실주의 기법 중에서도 특히 '변형'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단단하고, 차갑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만약 정반대의 특성, 즉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아 있는 짐승으로 변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하나의 사물이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뀌는 상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전개됩니다.


이야기는 주전자가 고양이로 변하면서 시작되고, 주인공 조셉이 앉아 있던 소파는 고릴라와 악어로 바뀌어 갑니다. <이제부터 변할 거란다>는 여동생의 탄생으로 인해 가족 안에 변화가 생길 것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조셉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러한 심리를 반영하듯, 작품 곳곳에는 탄생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조셉의 침실이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방(Bedroom in Arles)>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브라운은 이 작품의 영감을, 지인의 딸 안나가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까 봐 계속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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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Zoo, 1992


<동물원>은 영국의 권위 있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동물원에 놀러 간 한 가족의 하루를 따라가며 가족 간의 소통,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섬세한 글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풀어냅니다.

아빠는 자기감정에만 몰두해 변덕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두 아들은 원숭이 가면을 쓴 채 진짜 원숭이처럼 뒤엉켜 싸웁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인물은 엄마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의 외형에 동물의 특징을 절묘하게 섞어 표현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슴뿔이 머리에 달려 있거나 새 부리가 얼굴에 붙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물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우리 속 실제 동물들의 모습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그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 은유적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책 후반부, 엄마가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곳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러한 주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동물원>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이후 2003년작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에서도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브라운의 세계관을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두 형제가 동물원에 가서 겪은 일을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세밀한 그림을 통해 보여줍니다. Anthony Browne 특유의 풍자에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더해진 약간은 난해한 느낌을 주는 그림책입니다.


동물원에 가는 길은 교통체증이 심해서 모든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트럭 운전사는 동물처럼 으르렁거리고... 동물원 매표소에서 아빠는 유아용 반값표를 사기 위해 동생의 나이를 속이고... 동물원에서 형제는 구경할 생각은 안 하고 먹을 것을 달라고 엄마를 보챕니다... 바분 우리 앞에서는 바분들이 그러는 것처럼 서로 엉켜서 싸우는 형제들,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의 주의를 끌려고 소리 지르고 창을 두드리는 사람들... 동물원에 온 사람들도 동물들과 다를 것이 없는 행동을 동물들 앞에서 서슴없이 합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동물원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습니다. 형은 점심때 먹었던 음식, 동생은 매장에서 산 원숭이 모자, 아빠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저녁식사 때는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봅니다.


마지막 엄마의 독백... "I don't think the zoo really is for animals... I think it's for people"





저기 가방을 메고 계신 분이 아버님이실 것 같습니다.

작은 문 앞에서 포토존이 있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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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에구 귀여워라~





윌리는 꿈을 꿉니다. 독자도 꿈을 꾸고,
작가도 꿈을 꿉니다. 윌리는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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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하자

A Walk in the Park, 1977


<우리 친구 하자>는 앤서니 브라운의 두 번째 그림책으로, 공원에 산책을 나온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강아지들이 가장 먼저 친해지고, 아이들도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며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끝내 어울리지 못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스미스 씨와 스미드 부인의 가족은 서로 다른 사회적 계층을 상징합니다.

대학 시절 처음 구상한 이 이야기를 통해 브라운은 여러 가지 사회적 이유로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 문제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의 구조가 너무 단순하고 지루하다고 느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션의 배경에 작고 유쾌한 그림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활쏘기 연습을 하는 로빈 후드, 토마토를 산책시키는 신사, 공을 차는 산타클로스처럼 이야기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이러한 디테일에는 처음부터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마감을 위한 동기부여이자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흥미롭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브라운은, 관련 없어 보였던 그 작은 그림들이야말로 어린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Section 4

우리 할아버지, 우리 가족


2000년 <우리 아빠> 출간 이후 20여 년 동안, 앤서니 브라운은 꾸준히 가족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을 쓰고 그려왔습니다. 2005년 <우리 엄마>, 2007년 <우리 형>, 그리고 2020년에는 딸을 주인공으로 한 <넌 나의 우주야>를 발표했고, 최근에는 개성 넘치는 할아버지들이 등장하는 <우리 할아버지>를 선보였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까지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가족 시리즈는 유사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각 인물의 매력을 간결한 문장과 유머 넘치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상 같았던 아버지를 그린 <우리 아빠,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형에게 바치는 헌사인 <우리 형>, 부모의 시선으로 딸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넌 나의 우주야> 등 각각의 책은 사랑과 존중이 담긴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을 그려냅니다.


특히 <우리 할아버지>에서는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전 세계 다양한 민족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형식의 스토리텔링으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한편 <우리 형>을 제외한 가족 시리즈의 모든 책의 마지막 장면은 '포옹'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는 가족애를 넘어 인류애, 나아가 동물도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브라운의 여러 작품에서 발췌한 다양한 '포옹' 장면을 통해 가족 섹션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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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의 할아버지들을 모아 놓으니 근사하네요. 문화의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들의 손주 사랑은 어느 나라나 같고요~




엔서니 브라운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포용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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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The Tunnel, 1989


감정의 변화를 저렇게 쉽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하게 됩니다. 텍스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숲 속으로, Into the Forest, 2004




숨바꼭질, Hide and Seek,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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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My Mum, 2005


앤서니 브라운은 애초에 <우리 아빠> 이후 가족 이야기를 이어갈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출판사의 제안과 함께 마음속 어딘가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를 다시 책상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우리 엄마>입니다. <우리 엄마>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의 멋진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는 전작에서 아빠의 격자무늬 가운을 시각적 상징으로 삼았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는 꽃무늬 가운과 분홍색 슬리퍼를 통해 엄마의 존재를 이야기 전반에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요소는, 곳곳에 숨어 있는 하트 모양입니다. 하트는 말없이 흐르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브라운은 이 책을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를 유머러스한 인물로 표현했던 것과 달리, 그에게 어머니는 차분하고 위엄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려내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그 차이를 인정해, <우리 엄마>에서는 엄마를 단순히 재미있는 캐릭터가 아닌, 진심 어린 존경의 대상으로 그려내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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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개성을 잘 살린 것 같습니다. 동네 어딘가에는 있을 엄마의 모습이라 푸근합니다.

보는 시선이 따뜻하니 그림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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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

My Brother, 2007


어린 시절 형 마이클과 많은 추억을 공유한 앤서니 브라운에게 <우리 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 본인보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했던 형에 대한 애정과 약간의 질투가 그림 곳곳에 드러납니다. 동생의 눈에 비친 '정말 멋진 우리 형'은 축구를 잘하고, 이야기도 척척 지어냅니다. 노래도 잘 부르고, 무서운 괴물 위에 올라타기도 하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우리 형>은 어렸을 때 함께 운동하고 셰이프게임을 하며, 자주 다투기도 했던 형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이 세상 모든 형제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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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남겨 놓으니 참 재미있네요.

스토리는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약간 왜곡된 기억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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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의 우주야

Our Girl, 2020


브라운은 마음 한편에 늘 가족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을 집필하고자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여자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책을 만들 계획이 있는지 묻기도 했지만, 실제로 여자 형제가 없는 브라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여자 형제 대신 딸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을 구상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넌 나의 우주야>입니다.


이전의 가족 시리즈에서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나 형을 동경하는 동생의 시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지만, <넌 나의 우주야>는 딸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우리 아빠>와 <우리 엄마>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햇살을 연상시키는 무늬가 다시 한번 등장하여 시리즈의 흐름을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모델인 브라운의 딸 엘렌 브라운은 과거 전시 기획자로서 아버지의 전시 준비에도 큰 도움을 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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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5

새로운 시대의 시작


앤서니 브라운은 2000년, 아동 문학에 대한 평생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영예로운 상을 수여한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그를 "비범한 재능과 빼어난 기교, 비길 데 없는 탁월한 상상력을 지닌 예술가로서, 그림책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라고 극찬했습니다.


1976년 첫 책을 출간한 이후, 브라운은 약 20년 가까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다듬으며 글과 그림의 균형을 완성해 갔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배경 속 상징과 숨은 그림을 활용해, 글이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풀어내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이 한층 더 정교해졌습니다.

작가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작품의 소재와 표현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멕시코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겁쟁이 빌리>와 <나의 프리다>, 이웃의 창문을 관찰하던 습관에서 비롯된 어떡하지...?>, 그리고 한국의 친구에게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만든 <숨바꼭질> 등, 더욱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기들을 선보였습니다.


화풍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주로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화로 작업했으나, 이 시기부터는 과슈(gouache) 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한층 더 밀도 있고 중후한 분위기의 화풍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니콜라스 푸생의 <떠오르는 태양을 찾는 눈먼 오리온>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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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윌리

Willy's Pictures, 2000


윌리는 그림을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미술관에 간 윌리에서는 '모나리자', '바벨탑, '비너스의 탄생' 등 세계적인 명화를 마주한 윌리가, 그림을 자기만의 시선과 감정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그려냅니다. 이 작품에는 윌리는 물론, 앤서니 브라운의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릴라, 여자 친구 밀리, 그리고 악당 벌렁코도 이야기의 일부로 함께 등장합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틀니를 빼놓은 할머니 고릴라의 익살스러운 웃음으로 바뀌고,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윌리를 괴롭히는 악당 벌렁코의 모습으로 재해석됩니다. 이처럼 앤서니 브라운은 위대한 명화들을 재치 있게 변형하며, 마치 셰이프게임을 하듯이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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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The Shape Game, 2003


앤서니 브라운은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의 레지던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어린이들과 함께 고전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 속 장면을 함께 바라보며,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브라운은 1992년작 <동물원>에 등장했던 가족을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미술 작품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했습니다. 엄마의 생일을 맞아 미술관을 찾은 아버지와 두 아들은 처음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가족이 함께 작품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면, 엄마는 화면 안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만, 아버지와 아이들은 화면의 경계 바깥에 서 있습니다. 작품에 몰입한 엄마와 달리, 나머지 가족은 아직 거리를 둔 관람자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구도는 가족 간의 단절과 서먹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미술관을 둘러보며 점차 작품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색감도 점점 밝고 생동감 있게 바뀝니다. 엄마가 먼저 그림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아빠와 아이들은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해 위트 있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이 가족은 작품을 매개로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다시 가까워집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바로 '세이프게임(Shape Game)'입니다. 브라운은 미술관 외관을 그린 그림 속 건물 곳곳에 손가락, 입술, 야구 선수 같은 숨은 이미지를 배치했으며, 책 전체에 걸쳐 명화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패러디했습니다. 작가의 셰이프게임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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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빌리

Silly Billy, 2006


빌리는 걱정이 많은 소년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선물 받은 '걱정 인형'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원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 걱정 인형에게 잠들기 전 걱정거리를 말해주고 배게 밑에 넣어두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걱정이 모두 없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늘 걱정이 많으셨던 브라운의 어머니도 이 작품에 대한 영감이 되었습니다. 온갖 걱정에 시달리는 소년 빌리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걱정 인형 덕분에 걱정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위해 걱정을 대신해 주는 인형들을 위해 또 다른 인형들을 만들어 줍니다. <겁쟁이 빌리>는 극복과 성숙, 보살핌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앤서니 브라운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월리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편집자는 윌리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이미 하나의 고유 명사처럼 되어 버려 이 책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브라운은 이미 그려진 윌리의 이미지 위에 손 가는 대로 덧 그렸고 어느 덧 침팬지 윌리는 인간 소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빌리는 머리 스타일, 커다란 귀, 걸음걸이를 비롯해 많은 점에서 윌리를 닮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겁쟁이 빌리>는 윌리의 새로운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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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진지하게 보고 있군요. 복장이 스위스에서 봤던 아이들마냥 귀티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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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인형들 귀엽네요.



이번 전시는 군데 군데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느껴집니다.

2/3정도 밖에 정리 안했는데 너무 길어진것 같아서 2부로 쪼개야 될것 같습니다.

아이 있는 부모님들은 방문 필수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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