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하지 않게, 나만의 시간 보내는 법
2월 17일 월요일 낮 1시
주말 내내 미세먼지로 흐렸다가 어젯밤부터 맑아진 공기.
우리 집 베란다에선 남산타워의 뾰족한 꼬리(윗부분)가 살짝 보인다. 날씨가 흐린지 확인하려면 베란다를 보면 된다. 어제까진 안 보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보였다. 나는 연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청소를 시작했다. 베란다 창을 열고, 설거지를 하고, 솜이불과 침대 커버를 빨래했다. 아기가 있을 땐 쓰지 않는 종이 인센스도 오랜만에 꺼내 피웠다. 거실이 나무 향으로 채워지면서 진짜 혼자가 된 것 같은 몽롱한 기분. 나는 식탁 앞에 앉아 에스프레소빵과 두유를 먹으며 빨래가 다 되길 기다렸다. 아이패드를 꺼내 추성훈 유튜브도 봤다. 영상에서 추성훈은 자기가 좋아하는 단골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지저분한 집을 구경시켜 주고, 셀프 세차장에서 숨 가쁘게 부인의 포르셰를 세차한다. 이게 뭐라고 계속 보게 된단 말이지.
둘째 아이 출산이 백일 앞으로 가까워오면서, 나만의 시간을 풍요롭게 쓰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라도. 지금 내게 '시간의 풍요로움'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간표를 세워서 시간을 한 톨이라도 더 짜내 생산성 있는 일로 채우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그래서 빈 시간이 생기면 일이나 공부로 채웠다. 첫째 출산 한 달 전에는 토익 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이에게 쓰는 시간을 아까워하면 아이는 귀신같이 눈치를 챈다. 내 시간과 공간과 에너지와 사랑을 쏟아부어야 한다. 아이를 잘 먹이고 싶다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군'이라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함께 먹는 게 좋고, 아이를 어서 재우고 싶다면 내가 먼저 잠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스스로 되뇌어 본다. '흐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자.' '생산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죄책감을 갖지 말자.' '시간을 잊어버리듯이 몰입하자.'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심 없이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바닥을 닦았다. 이게 중요한 일인지 하나마나한 일인지 그것도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해야 하는 집안일을 우습게 여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한 다음에, 아이의 하원 시간 전까지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